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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1등 없는 자전거 대회, 백두대간 그란폰도



1등 없는 자전거 대회, 백두대간 그란폰도

임건엽기자



자전거 레이스 대회 중 빨리 달리지 않아도 되는 경기가 있다. 비경쟁대회라 부르는 그란폰도(Granfond)다. 이탈리아어로 긴 거리를 이동한다는 뜻이 있다. 일반대회처럼 1등으로 들어가는 게 목적이 아닌 본인이 달릴 수 있는 만큼 정해진 시간 안에 장거리(100km 이상)에 해당하는 코스를 완주하는 게 그란폰도의 매력이다. 그래서 그란폰도를 자전거인의 축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 백두대간 그란폰도 포스터 Ⓒ 국민체육진흥공단



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경정사업본부는 지난 10월 29일 제4회 KSPO 백두대간 그란폰도를 개최하였다. 백두대간 그란폰도는 국내 최대 그란폰도로서 자전거 동호인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 대회 코스는 총거리가 120km이다. 상승고도 3,500m에 6시간 컷오프 조건까지 있으므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할 좋은 기회이다.


완주보다 어려운 백두대간 그란폰도 신청

원한다고 모두가 그란폰도에 참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워낙에 동호인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보니 유명 가수 공연 입장권구매와 같이 접수 시작 시각에 맞추어 빨리 신청해야 모집인원 2,000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실제로 접수 시작이 되자 동시 접속자가 증가해서 사이트 접속오류가 나기도 했다. 참가접수는 10월 1일 토요일 정오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시간에는 대부분 자전거 동호인들이 야외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을 시간이어서 동호인들에게 빈축을 샀다. 온라인 자전거 카페에는 온라인 대리접수 모집 글까지 올라오기도 했다. 토요일 라이딩도 포기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접수에 성공했던 한 참가자는 “자전거로 어떤 령(領)을 넘어가는 것보다 접수령 넘어가는 게 더 어렵다”며 참가접수에 대해 아쉬움을 내비쳤다. 이와 달리 참가권이 이미 있던 참가자도 있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경정사업본부가 5월 5일 광명스피돔에서 개최한 자전거축제에 참가(대회완주)한 인원이다. 자전거축제 완주자는 별도의 참가신청 없이도 백두대간 그란폰도 참가 자격이 자동 부여됐다.




▲ 자전거축제 완주자 그란폰도 신청 안내 문자 Ⓒ 임건엽



기록이 아니라 완주에 의미가 있는 그란폰도

그란폰도는 경쟁대회가 아니기에 순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1등을 위해 다른 참가자와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 경쟁의 대상은 자신뿐이다. 비경쟁이야말로 그란폰도의 매력이다. 코스는 산악구간이 많으므로 코스 정보가 없다면 시간 내에 완주하지 못하여 컷오프(6시간 제한)될 수도 있고, 내리막을 내려오다가 사고가 날 수 있다.




▲ 백두대간 코스표 Ⓒ 국민체육진흥공단


산악구간은 모두 6개(옥녀봉, 윗원터 고개, 귀내기 고개, 저수령, 직치재, 죽령)다. 올라갈 때는 덥지만 내려올 때는 땀이 식으며 급격하게 체온이 낮아질 수 있으므로 참가자들은 간편하게 입고 벗을 수 있는 보온제품을 준비해야했다. 출발선에서는 참가자들 사이에서 자신이 챙긴 보온제품이 탁월한 선택일까 하는 걱정스러운 말들이 오고 갔다.




▲ 백두대간 그란폰도 출발선에서 대기하는 참가자들 Ⓒ 임건엽


출발신호가 떨어지고 모든 참가자가 동시에 출발했다. 2천 명에 가까운 인원이 동시에 출발하다 보니 인파에 막혀 처음부터 자기가 원하는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출발하고 나서도 아래로 꺼진 도로에서 미끄러져 넘어질 뻔한 참가자와 비경쟁이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해 위험하게 참가자들 사이로 이동하는 사람들로 인해 대회 초반에는 아수라장이었다. 심지어 첫 산악 구간이 옥녀봉에서는 인파에 막혀 진행이 어렵게 되어 정상에서 대기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 옥녀봉에서 나아가지 못 하는 참가자들 Ⓒ 임건엽


출발이 어수선했지만 이내 옥녀봉을 지나고 그룹이 많이 나누어졌다. 자전거 타기에 쾌적해져서 체력이 좋은 사람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좀 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풍경이 좋은 곳에서 잠깐 멈춘 다음에 일행들과 사진을 찍으면서 즐거워했다. 특히나 어떤 댓가도 없이 재능기부 형태로 전문적인 대회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작가들이 주요 코스에서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그 앞에서 자신이 원하는 자세로 최고의 사진을 찍는 것 또한 이날의 묘미였다. 각 산악 구간 정상에서는 보급소가 있어서 완주를 위한 에너지 보충은 힘들지 않았다. 보통 그란폰도에서는 간편히 배분이 가능한 초코바를 보급식으로 나누어지지만, 백두대간 그란폰도에서는 직접 꽈배기를 만들어서 나누어 주었다.



▲ 인기가 많았던 저수령 꽈배기 보급 Ⓒ 임건엽


내년을 기약하는 참가자들

이번 대회에서 정해진 6시간 이내에 완주한 인원은 총 2,000명 중 1,060명이다. 참가자 반 정도가 완주를 못 할 정도로 비경쟁이지만 그란폰도는 경쟁대회만큼 힘들고 어렵다.




▲ 회수차를 기다리는 참가자들 Ⓒ 임건엽


백두대간 그란폰도는 매년 추워지기 전인 10월 말에 개최하다 보니 동호인 사이에서는 그해의 마지막 대회인 셈이다. 자전거와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하는 특성도 있어서 참가자들은 다른 대회에 비해 백두대간 그란폰도만은 완주를 하고 싶어 한다. 필자의 일행 중에서도 체력이 부족해서 결승선을 지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을 던지니 “내년에는 더 착실하게 준비해서 꼭 완주하겠다.”는 다짐을 들을 수 있었다. 항상 다음에도 재도전할 수 있는 백두대간 그란폰도가 지속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