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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미국서 가진 스포츠의 꿈, 한국에서 꽃피운다

#미국서 가진 스포츠의 꿈, 한국에서 꽃피운다

# 황민석기자







버지니아 주에서 축구와 함께 보낸 2년이 축구행정가를 꿈꾸게 만들었다. 그곳에서 멕시코, 칠레, 쿠바 등에서 건너 온 난민들과 함께 축구를 즐겼다. 그들은 이유 모를 무시와 괄시를 받았지만, 축구를 할 때면 이를 훌훌 털어버리는 듯 했다. 맥주 캔을 들고 드리블하는 아저씨부터 일을 마치고 축구장으로 온 청바지를 입은 청년까지 모두 축구를 통해 행복을 찾고 있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이들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분들은 축구를 즐길 수 있는가? 축구가 아니더라도 본인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활동이 가능할까?

“이 물음을 가지고 한국에 돌아왔어요”라며 기억을 더듬은 홍시환(24, 경희대학교 국제학과 12)군이 쓴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 온 홍군을 적응시킨 것은 또 다시 축구였다. 초등학교만 여섯 번을 전학 다녔지만 축구만 있으면 모든 게 좋았다. 미국에서도 축구만 있으면 적응했는데,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말이 통하는 한국에서는 축구로 적응하기 더욱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적중했다. 어디든 축구는 교감의 장이 됐다. 하지만 꿈으로 키우기에는 위험 부담이 컸다.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 공부를 포기해야 된다는 소리를 듣게 됐어요. ‘축구선수는 축구만 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연습량에서 밀려 이도 저도 안 된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렇다 보니 축구 혹은 스포츠가 엘리트 선수들의 전유물이 돼 버린 것 같아요. 겁이 나서 누가 축구부에 들어가겠어요. 엘리트 선수만이 아닌, 대중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스포츠 체계가 필요해요”



맞춤 행정 펼치는 축구 행정가로

스포츠를 좋아하는 여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제리 맥과이어(Jerry Maguire)’ 같은 에이전트를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버지니아에서부터 품어 온 물음이 그를 행정가의 길로 이끌고 있다. ‘누구나 축구와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까’라는 물음을 해소할 때까지 행정가의 길을 걸을 것이다. 그리고 대학에서 배우는 세계정세를 읽는 눈이 행정가로써 걸을 길에 네비게이션이 돼 줄 것이라고 믿는다.

대학에서 국제 정치, 관계, 경제 등을 배운다. 국내에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해외서도 견문을 넓힌다. 이미 중국 상하이 복단대학교(Fudan Univ.)에서 중국 정치와 관계를 배우고, 워싱턴 DC 존스홉킨스 대학 국제 관계 대학원(SAIS)에서 미국 입장의 국제관계를 배우고 왔다. 이번 가을엔 네덜란드에서 6개월 간 유럽피안 스튜디스(European studies) 프로그램으로 유럽 상황을 배운다.

“카드 게임에서 상대 패를 알면, 맞춤 전략으로 이길 수 있어요. 행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대외적인 축구 행정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축구 선진국과의 교류가 필요해요. 이때 그 나라의 정치, 경제, 국제 관계 같은 문화코드를 이해한다면 맞춤 전략을 준비해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게 할 수 있어요. 행정 또한 설득 전쟁이죠. 문화코드를 활용해 설득에 힘을 실어 긍정적 관계 형성 및 유지가 가능할 거에요”라며 자신의 경력이 행정가로서의 역량에 도움이 될 것을 확신했다. 또한 “스포츠와 정치는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어요. 정치와 스포츠는 묶여있죠. 같은 맥락에서 축구 강국의 문화-정치적 성향이 각기 달라요. 이것이 축구와 스포츠 정책에도 녹아 들 것이고 저는 이것을 이해하고 우리나라에 맞는 행정으로 깎아 나갈 겁니다. 이를 한국 축구에 환원하는 날이 오길 기다리고 있어요”



예비 행정가의 눈, 닫혀있는 대학 축구

홍군은 축구 동아리 FCIR(Football Club Interational Relationship) 회장이었다. 여기서 대학별 국제학과 축구 대회 개최에 도움을 주기도 하며 끊임없이 행정 관련 일을 했다. 그러다 한국 축구의 가능성을 느꼈다. 남자든 여자든 축구를 즐기는 이가 많다는 걸 깨달았다. K리그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비단 동아리 뿐만 아니라 축구산업아카데미 회식 때는 하루 종일 K리그에 대해 논의하며 한국 축구의 열린 가능성을 느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고객으로 만들지 못하는 한국축구에 대한 아쉬움도 느꼈다. 특히 프로축구의 근간인 대학축구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대학축구가 너무 닫혀있는 것 같아요. 신입생 때 우리학교(경희대학교) 농구부는 엄청난 인기였어요. 물론, 당시 경희대 3인방이라고 불리는 두경민, 김민구, 김종규라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루키가 있었지만, 관중이 모인다는 것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또 그 관중들 중 일부는 프로가 된 선수를 보기 위해 농구장을 찾는다는 소리도 들려요. 대학농구는 팬과 잠재적 팬의 유지 및 생성을 위해 서포터즈 같은 홍보 활동을 벌이고 있어요. 반면에 대학축구는 그런 게 없어요. 그러다 보니 김진수(현 호펜하임) 같은 유망한 선수들이 있었지만 관중이 모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대학축구의 홍보활동 없는 닫힌 운영에 팬들이 모일 것이라는 기대를 하긴 힘들죠. 대학농구처럼 대학축구가 문호를 열 수 있는 프로그램을 친구들과 상의 중 입니다”



행정가의 꿈

미국에서의 2년의 경험을 항상 되새긴다. 난민으로 힘든 생활을 이어가는 그들은 축구라는 매개를 통해 활력과 웃음을 찾았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이들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분들은 축구를 즐길 수 있는가? 축구가 아니더라도 본인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스포츠 활동이 가능할까?

홍군은 이것이 가능한 선진 축구 문화를 우리나라에 도입하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선진 문물이라도 문화와 정서가 전혀 다른 한국에 서양의 문물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따라서 국제정세를 배워 축구 선진화의 이유를 심도 깊게 이해하고 우리나라에 맞게 다듬어 선진 축구 문화를 정착시키고 싶은 것이다. 그 선진 문화는 다름 아닌 모두가 축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다. 나아가 스포츠와 인생이 하나 되는 삶이다. “우리 스포츠 시스템에서 축구를 하려면 엘리트 선수가 되어야 해요. 이것을 바꾸고 싶어요. 공부는 공부대로 하고 축구는 따로 했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를 즐길 권리가 있어요. 버지니아 주의 난민들처럼요”

최근 체육회의 대대적인 통합이 이루어졌다. 현대 스포츠 도입 이후 장기 집권한 엘리트 스포

츠에서 생활 스포츠로 정권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변화에 잡음이 많지만, 스포츠와 하나 된 삶을 위해 대한민국 체육계가 움직인 것은 사실이다. 홍군의 목표와 대한민국 스포츠의 행보가 같은 방향으로 맞물리기 시작했다. 훗날 그의 꿈이 우리 스포츠에 얼마나 잘 녹아들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