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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국제체육 ]

한국스포츠 속에 내재된 미국 콤플렉스

                                                                                          글 /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 한국 최초의 PGA 우승자 최경주와 최초의 메이저 대회
우승자 양용은, 한국 최초의 LPGA 우승자 펄 신과 최초의 LPGA 메이저대회 우승자 박세리,
동양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서 홈런-도루 20-20을 달성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추신수,
그리고 꿈의 무대인 미국 슈퍼볼에서 MVP를 차지한 한국계 미국인 하인스 워드 등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계) 스포츠 스타들은 모두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 온 영웅들이다. 이들은 모두 세계 최대의 스포츠 시장인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소수민족으로서 편견에 시달리며 그 나름대로의 콤플렉스를 내면화
했다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박찬호 선수가 미국 메이저리거로 처음 데뷔했을 때 그에 대한 낯선 시선들은 그로 하여금
선수로서의 위상과 한국인으로서의 위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메이저리거로
직행했지만, 무명의 선수였던 그를 바라보는 미디어의 시선들, 막강한 실력을 자랑하는
최고 기량의 선수들, 살벌한 주전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정글의 세계, 그리고 멀고 먼
동양의 나라에서 온 한국인이란 정체성, 이 모든 것들이 박찬호 선수에게는 메이저리거로서
겪어야 했던 콤플렉스의 근원들이지 않을까 싶다.

비단 미국 콤플렉스는 비단 박찬호만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한 때 백인들의 전유물이었던
프로 골프의 세계에 뛰어든 한국 골퍼들은 이런 저런 현실의 벽에 부딪치면서 자신도 모르게
콤플렉스에 시달렸을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미국 스포츠 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실력으로
승부해야하지만, 세계적인 경쟁자들이 버티고 있는 엄혹한 현장에서 언제 성공할지도 모르는
압박감과 미국에서 소수민족에 불과한 한국인으로 경기에 서야한다는 부담감 등이 무의식적인
콤플렉스를 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스포츠에서 미국 콤플렉스는 어떤 이유로 발생하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 다음
몇 가지가 중요할 듯하다. 첫째, 미국에 대한 스포츠 콤플렉스는 정치적 헤게모니와 스포츠
헤게모니의 이중 결합으로 인해 그 강도가 훨씬 강하다.
근대 스포츠의 모든 종목들은 거의
모두 미국과 유럽에서 등장했다. 특히 축구, 야구, 농구 등 구기 종목의 경우 해당 종목의
종주국들은 태생적으로 이니셔티브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미국에서 탄생한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 미식축구 종목들이 한국으로 유입되는 과정은 스포츠 종주국으로서의
미국 헤게모니에 대한 동의 뿐 아니라, 해방 이후 한반도에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정치적
헤게모니에 대한 동의도 수반한다. 군사적, 정치적 헤게모니 지배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에서 건너 온 야구나 농구 같은 스포츠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과 열정은 미국에
대한 절대적인 동경으로 전환된다.

둘째, 스포츠 콤플렉스는 근대적 냉전적 유산에서 탈근대적 문화세계화로 이행하고 있다.
먼저 문화의 세계화가 식민지 근대 시대에 형성된 식민지 국가들의 정신적인 콤플렉스를
해체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한국의 경우에도 문화가
국제적 수준에 도달하긴 했지만, 미국문화에 대한 동일시는 여전히 다른 방식으로 재생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한국의 스포츠 스타들이 문화세계화의 시대에 미국 메이저리그나
PGA와 LPGA에 진출했다고 해서 한국의 스포츠문화와 산업이 미국과 동등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글로벌 환경에서 한국 스포츠 선수들의 미국행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지만, 국지적인 스포츠 환경과 시장의 종속을 더 가중시킬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스포츠 콤플렉스는 한국이라는 소수 민족에 대한 자의식이 깊게 반영되어 있다.
박찬호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가능한 것은 그가 거대한 미국 땅에서 많은 고난과 편견을
이겨내고 한국인의 기개를 높인 인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찬호가 높은 연봉을 받고 슬럼프에
빠질 때는 한국국민들이나 현지 교민들은 혹시나 한국인에 대한 미국인들의 시선이 달갑지나
않을까 은연 중 노심초사하는 감정에 빠지기도 한다. 박세리가 US 오픈에서 연장 우승을 할 때
한국의 미디어가 조명한 것은 한국낭자의 위대한 승전보였다. 개인 스포츠 선수로서의 성공이
국민적 국가적 위신과 항상 동일시되는 상황은 소수민족의 정체성을 항상 자신들의 플레이에
대입하려는 콤플렉스를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스포츠 콤플렉스와 연계된 문화자본의 논리를 말할 수 있다. 미국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감은 항상 미국 스포츠 시장에 대한 ‘초연한’ 동경을 갖게 만든다.
LA 다저스에서 보낸 마지막 해 박찬호 선수의 연봉은 990만 달러(한화 129억)였고 그가 데뷔
이래 벌어들인 돈은 총 1000억 원에 육박한다. 이렇듯 미국 프로스포츠에 대한 선수들의 동경은
비단 미국 스포츠 필드에 대한 존경심에서만이 아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시장에 대한 욕망을
숨기고 있기도 하다. 한국의 프로 스포츠 시장과 비교했을 때 상대가 될 수 없는 막강한
자본의 위력을 갖고 있는 미국 프로스포츠 시장의 거대자본의 논리는 미국에 대한 스포츠
콤플렉스를 내면화한다.

미국 스포츠 콤플렉스는 복잡한 발생 원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문제에서부터 대중문화에서의 미국화의 문제, 미국 스포츠시장의 자본의 논리, 그리고
최고의 경기 수준에 대한 한국선수 혹은 한국인들의 복잡한 감정들이 스포츠 콤플렉스
안에 들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콤플렉스의 복잡성도 따지고 보면 ‘동경’과 ‘공포’의 양면성으로
단순화할 수 있다. 미국 스포츠 시장에 대한 동경과 거대한 미국 스포츠 시장에 맞서야하는
공포감이 공존하는 것이 한국인들의 미국 스포츠에 대한 콤플렉스의 실체가 아닐까 한다.
물론 동경과 공포는 스포츠 콤플렉스에 대한 동일하지만 다른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국 스포츠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 가장 먼저 해결할 것은
미국 스포츠 계에서 활약하는 한국인들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이나 과열된 애국심에서 선수나
국민들이 좀 자유로워야 한다. 야구를 즐기고 농구를 즐길 때 그것이 어느 나라에서 만든
스포츠라는 것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한국 선수들의 미국 프로스포츠 진출 역시 한국인의
설움을 해소하기 위한 ‘살풀이’로 봐서도 안 되고 성공의 기준이 역사적, 정치적, 신체적
콤플렉스에서 시작되어서도 안 되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가 미국 중심적인 체제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스포츠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건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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