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태권
지난 5월 10일부터 17일까지 8일간 서울에서 세계시각장애인대회가 열렸다.
시각장애인 경기대회 사상 역대 최대규모를 자랑한 이번 대회는 58개국에서 991명의 선수가 참가하였다.
특히 이번 대회는 2016년 리우 장애인올림픽출전권이 걸린 종목도 있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114개의 메달과 함께, 러시아가 종합1위를 차지한 가운데, 우리나라는 금메달 9개를 비롯하여 29개의 메달을 획득하며 종합5위를 기록했다.
장애의 벽을 극복한 선수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전맹부터 저시력까지, 대회에 참여한 선수들은 앞을 보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 장애로 인해 일상생활조차 버거운 그들이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국가대표로 거듭났다. 특히, 이번 대회 유도81kg급에서 금메달을 딴 이정민 선수의 경우, 오른쪽 눈으로만 1m내의 물체를 겨우 볼 수 있는 시각장애 2급이다. 그럼에도 장애에 개의치 않고, 유도에 매진한 결과, 그는 비장애인과 겨뤄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이정민은 지난 해, 베이징올림픽 메달리스트 왕기춘을 꺾으며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한 바 있다.
▲유도 81kg급에서 금메달을 딴 이정민 선수 (서울 세계시각장애인대회 제공)
넘어야 할 현실의 벽
이번 대회에 출전한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는 총 62명이다. 이중에는 시각장애인 선수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운동에 매진 할 수 있는 선수도 있지만, 운동만으로는 생계를 꾸려나가기 힘든 선수들은, 다른 일을 병행하며 운동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서울 이랜드FC의 시축으로 화제를 모았던 시각장애인 축구대표선수들도 후자에 속한다. 이번 대회에서 8위에 그친 선수들은 안마시술소에서 일을 하다가 불과 대회가 40일 남짓 남은 시점에야 합숙훈련을 시작했다. 그마저도 주로 밤에 일하는 안마사의 직업적 특성상 생체리듬이 깨져, 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 시각장애인 축구는 척박한 환경 탓에 축구선수가 되려는 시각장애인 수도 줄어드는 선수부족 현상까지 생기는 악순환에 빠져있다.
비인기 종목 선수의 경우에는 상황이 더욱좋지 않다. 시각장애인 역도대표선수 안동수는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오후에는 경로당, 밤에는 안마시술소에서 안마사로 일을 했다. 피곤할 법도 한데, 오전에는 운동을 한다. 비장애인도 소화하기 힘든 철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한 그는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메달획득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그가 덤벨을 드는 이유에는 그를 응원하는 가족과 혹시나 모를 실업팀의 영입제안과 국제대회 입상으로 받는 연금으로 나아질 생활여건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2% 부족한 사다리
이번 대회에서는 처음으로 시각장애인 관중들을 위한 현장해설방송을 제공하였다. 경기상황을 설명해주는 현장해설방송은 경기를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에게 현장감과 생동감을 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주파수설정을 하지 않고 수신기를 배포해,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주파수 설정을 하냐는 지적도 받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다는 취지는 좋았으나 세심한 배려가 부족해 실효성이 적었다는 비판인 것이다. 장애인 체육에 대한 지원 역시 2% 부족한 느낌이다. 국가에서 장애인체육 진흥을 위해 지원을 하고 있지만, 장애인 국가대표 선수들조차 생계를 걱정하며 운동을 하는 현실을 미루어 볼 때, 지원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벽을 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관심.
대회 개막식에는 시각장애인 오케스트라 ‘하트채임버 오케스트라’와 시각장애인 뮤지션들이 축하 공연을 하는 등 시각장애인들의 축제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개막식이 열린 잠실체육관의 관중은 절반도 채 차지 않아, 그들만의 축제가 되고 말았다. 손병두 대회조직위원장은, 이번 대회의 모든 경기가 무료이니 많이 찾아주시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내는 한편 시각장애인 축제는 남의 이야기라는 풍조가 있다며 시각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나타냈다. 시각장애인이 필요한 것은 관심이다. 비장애인도 살기 고된 현실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특히나, 그들을 향한 냉랭한 시선과 무관심은 그들을 더욱 좌절시킨다.
고무적인 것은 시각 장애인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장애인 체육회에서는2010년부터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실태파악을 위한 보고서를 매년 작성하고 있다. 특히 이 보고서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도 포함되어 있어, 그들이 원하는 체육활동이나, 그들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장애인들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관심이 선행될 때, 장애인 체육에 대한 효율적이고 실속 있는 지원이 가능하다.
시각장애인 축구팀이 서울 이랜드FC경기의 시축을 맡은 날, 시각장애인 축구팀의 장영준은 이랜드FC의 김영광 골키퍼가 지키고 있는 골문을 흔들었다. 김영광 골키퍼는 정말 잘 차서 막지 못했다면서 시각장애인 축구대표팀의 경기를 보러 가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시각장애인 축구대표팀의 경기를 보러 간 서울 이랜드FC 골키퍼 김영광 (출처 일간스포츠)
김영광 골키퍼의 이런 약속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랜드FC가 시각장애인 축구대표팀을 시축에 초청함으로써, 시각장애인 축구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이 시축의 배경에는 공익을 추구하는 구단의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마케팅적 요소도 없지 않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김영광 골키퍼는 일회성 짙은 시축에 그치지 않고, 직접 나서서 시각장애인 선수들의 경기를 관람했다. 장애가 있음에도, 축구에 대한 열정에 감동을 느낀 김영광이 응원 차 방문한 것인데, 이러한 관심은 장애인선수들의 경기력 뿐 아니라 그들의 삶에 대한 응원이 될 수 있다.
장애의 벽을 넘어, 현실의 벽을 넘는 시각장애인 선수들은 사회의 무관심 속에 더욱 외로운 도전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또한, 벽이 그들에게 벅찰지라도, 다른 누군가가 대신 넘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스스로 벽을 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시각장애인선수들의 벽을 대신 넘어 줄 수는 없어도, 그들이 벽을 넘는 것을 도와줄 관심과 지원이라는 사다리는 놓아줄 수 있다. 이번 서울 세계시각장애인대회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장애인 체육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으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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