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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이제 ‘노(老)는 물’이 달라졌다.

 

글/이원희

 

 

 ‘워렌 부인의 직업’, ‘피그말리온’, ‘인간과 초인간’ 등 영국 문학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중에 한 명. 특히 ‘성녀 조앤’을 발판으로 192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 한 아일랜드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조지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했다.

 

‘나이가 들어서 놀지 않는 것이 아니다. 놀지 않기 때문에 나이가 드는 것이다.’   

 

최근 어르신들의 여가 활동이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공원에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장기를 두며 시간을 보내던

예전과 달리 그들은 밖으로 나와 몸을 움직인다. 특히 스포츠에 참여하는 활동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대 사회 속에 개인 스포츠 및 여럿이 활동하는 팀 스포츠를 즐기는 일명 ‘체육형 어르신’이 늘고 있다.

 

 

# 1.

 

현시천(85.남) 씨는 말했다. “패러글라이딩을 할 때면 나이도 잊어버린다오”

 

비행 기록 800회 이상. 각종 패러글라이딩 대회 출전 100회 이상. 85세의 패러글라이더 현시천 씨가 보유한 기록들이다. 18년을 함께 한 세월만큼 패러글라이딩은 어느새 현시천 씨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있었다.

 

현시천 씨는 지난 8월에 춘천에서 열린 국제레저대회 패러글라이딩 실버부급에 참가해 성공적인 비행을 마친 바 있는데 당시 대회에서 최고령 패러글라이딩 선수이기도 한 그의 노익장에 많은 이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현시천 씨는 “날씨의 도움도 많이 받아 앞으로의 기억에도 남을 만큼 좋은 비행이 되었다”며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하늘을 날 때면 그는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인생은 참으로 즐겁다”는 것이다. 때문에 현 어르신은 언제나  "나에게 패러글라이딩은 든든한 친구" 라고 강조했다.

 

현시천 어르신

 

 

‘전우여, 도대체 어디 있니..’

 

 현시천 씨가 패러글라이딩을 시작한 데에는 아픈 사연이 있다. 1950년에 발발한 6.25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그는 설악산 전투에서 189명의 전우를 잃었고 슬픔에 빠졌는데 이후 그는 눈물을 머금고 전쟁으로 흩어진 동료들의 유골을 찾아내 유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심했다. 지옥 같던 한국 전쟁이 끝나고 90년대를 시작으로 현시천 어르신은 매년 설악산에 올랐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전우 찾기는 쉽지 않았다. 현씨는 “산에 낙엽이 지기도 하고 강산이 여러 차례 바뀌면서 어려움이 많았다”며 아쉬움을 밝혔다.

 

그러던 어느 날 현시천 씨에게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하늘을 나는 패러글라이딩을 이용해 보면 어떨까’라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패러글라이딩 역시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전우의 유골을 찾는 일에는 아쉽게 실패했지만 현시천 어르신은 한 가지 얻은 소득이 있었다. 환갑이 넘어 배운 패러글라이딩이 그것이었다.

 

현시천 어르신

 

 이후 그는 패러글라이딩 마니아가 됐다. 1996년부터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하기 시작하여 현재 능숙한 비행 실력을 가진 베테랑이 되었다. 현시천 씨는 패러글라이딩으로 시간을 보내며 한 주를 마무리 한다. 하루 1회에서 2회, 체공시간은 1시간에서 3시간 정도로 비행한다. 장소도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전국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비행을 즐긴다. ‘고령의 나이가 패러글라이딩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25kg 무게의 장비를 직접 메고 활공장까지 오르내리지만 전혀 힘들지 않다”며 “패러글라이딩을 할 때면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라고 말했다.

 

현재 그에게는 작은 소망이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몸이 견딜 때까지 패러글라이딩을 오래 타고 싶다”는 현시천 어르신은 오늘도 비상을 준비한다.

 

#2.

 

유임정(68.여) 씨는 말했다. “늦은 봄을 만끽하는 것 같아요”

 

늦은 봄에 불어오는 바람은 부드럽다. 봄의 절정을 알리려는 듯 바람을 타고 흐르는 꽃내음은 향기롭기까지 하다. 유 어르신도 때 아닌 춤바람을 맞이하기 위해 매일같이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는 그녀의 인생에서 꼭 필요한 요소가 되어버린 차밍댄스. 입가에 피어오른 미소처럼 차밍댄스는 그녀에게 늦은 봄처럼 다가왔다.

 

* 차밍댄스= 요즘 유행하는 인기곡에다 에어로빅과 생활체조, 포크댄스 등을 적절히 혼합, 대중적인 댄스로 만든 것이다.

 

‘이전에 하는 게 별로 없었죠’

 

“그저 지인들과 만나면서 이야기하고 걷는 것이 전부였어요” 유임정 씨는 과거의 일상을 꺼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찌 보면 따분하다고 할 수 있는 그녀의 일상에 변화가 필요했다.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에 맞춰 몸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 부여 말이다. 유 어르신의 나이를 염려해 건강을 생각하는 주위의 시선도 많아졌다. 그녀도 이에 동의해 무언가를 찾아 나섰다. 우연이었을까. 때마침 그녀가 다니는 복지관에서 노인 여가 프로그램이 생겼다. 서예, 영어회화 등 다양한 프로그램 중에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한 과목이 있었다.

 

 ‘차밍댄스’

 

 유임정 씨에게 즐거움이 찾아왔다. 작은 변화가 그녀의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발걸음은 가벼워졌고 미소를 짓는 날은 많아졌다. 유임정 씨는 삶의 활력소를 얻게 해준 차밍댄스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처음에는 동작을 습득하는 것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제 자신에게 자신감을 가졌어요. 재밌으니깐 열심히 할 수밖에 없죠. 매일매일 웃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그녀가 찾은 것은 삶의 활력소만이 아니었다. “어렸을 적에는 음악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그 쪽으로 장래를 두고 있었죠. 결국 못하긴 했지만 지금 차밍댄스로 미래를 꿈꿨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거 같고 반가운 향수도 느껴서 기분이 좋네요” 잠시 잊고 살았던, 어찌 보면 가장 소중한 꿈을 되찾은 유임정 씨의 얼굴은 환해보였다.  

 

#3.

 

김영구(70.남) 씨는 말했다. “재밌으니 얼마나 좋아”

 

“게이트 볼 이렇게 치는 거다. 한 번 지켜봐”

 

굵은 한마디를 끝으로 자세를 고쳐 잡은 김영구 어르신이 골폴에 공을 맞춰 점수를 얻었다. 그것을 바라 본 같은 팀은 환호성을, 상대팀은 탄식을 쏟아냈다. 곧이어 미리 조정해놓은 시계가 울리며 경기는 종료 됐다. 김 어르신은 승리의 기쁨을 이야기하며 손가락을 하늘로 가리켰다.

 

*게이트볼= T자형 스틱으로 볼을 쳐서 경기장 내 3곳의 게이트를 차례로 통과시킨 다음 골폴에 맞히는 구기종목이다. (출처=두산백과)

 

 

 처음에 김 어르신은 건강을 이유로 게이트볼을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게이트볼 스틱을 잡는 이유가 달라졌다. “너무 재밌잖아. 그렇게 느끼는 건 나뿐만이 아닐 거야. 게이트볼을 함께 즐기는 사람들 역시 똑같이 생각해” 벤치에 앉아 김영구 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동료 어르신의 고개가 끄덕였다. 김 어르신은 동료 분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10년을 넘게 이곳에 나와 게이트볼을 즐기는 사람도 있어. 오랜 시간동안 같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니 정도 많이 들지”

 

 물론 당최 염원했던 건강도 좋아졌다. “땀도 흘리고 굳은 몸도 풀어주고 몸에는 다 좋은 거 같아” 그에게 찾아온 긍정적인 변화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우울했던 기분도 게이트볼을 하고 나면 싹 달아나지. 기분이 절로 좋아져”라며 김 어르신이 밝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 시작하세요”

 

 현시천, 유임정 그리고 김영구 어르신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늦깎이 유희를 즐기며 인생의 활력을 발견한 그들의 목소리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문득 조지 버나드 쇼가 다시 한 번 떠오른다. 누구보다 인생의 참 된 기쁨과 행복을 알았던 조지 버나드 쇼. 94세까지 살면서 유머와 풍자, 위트를 잊지 않은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자신의 묘비명에 이렇게 남겼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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