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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사회봉사를 덕목으로 삼은 아마추어 야구단장

 

 

글/이원희

 

  일요일 오전 8시.

주말 아침이면 여지없이 한 남자가 현관문을 나선다. 주인공은 김상호씨(54). 

 

그가 도착한 곳은 강원도 화천의 한 야구경기장이다. 문을 열고 그라운드에 발을 딛자 그의 주변에 많은 선수들이 몰렸다. 여러 선수들이 “단장님 덕택에 마음 편히 야구를 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직함은 화천 그린 베이스볼 단장이다.

 

화천 그린 베이스볼은 창단 2년 만에 ‘춘천 시장기 사회인 야구대회’ 준우승에 오른 신흥강호다. 어려운 과정

속에 이룬 결과라 의미가 더 깊었다. 조직력에 문제가 있었고 팀이 추구하는 방향을 놓고 고심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굳은 시련이 있었기에 더 멋진 야구팀이 되었다고 김상호 단장은 생각한다.

 

<김상호 단장>

 시 작

 

“저쪽에 걸면 더 잘 보이려나”

 

 동(冬)장군이 맹위를 떨쳤던 지난 2013년 겨울. 김상호 단장이 얼은 손을 비벼가며 ‘화천 그린 베이스볼 선수

모집’이란 현수막을 걸고 있었다. 한 정비 공업사의 사장인 그가 야구단을 창설하기로 결심 한 것은 쉽지 않았다. 혹시나 생업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걱정도 됐고 가족들의 반대도 있었다. 하지만 김단장은 “야구에 꿈을 가진사람들에게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랬다. 한 야구단이 창설되는데 그 이유 하나면 족했다.

 

 처음 한 일은 선수 모으기였다. 김단장은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경기장 펜스마다 초록색 현수막을 걸었고

화천 도로가의 웬만한 장소에도 선수모집 글을 내걸었다. 입소문을 내기 위해 틈만 나면 주위 사람들과 야구 이야기를 했다. 김상호 단장의 노력 덕분이었을까. 2013년 2월, 20여명의 선수들 앞에서 김단장은 ‘화천 그린 베이스볼’ 창단 개회사를 할 수 있었다.

 

구단주의 일

 기대했던 첫 훈련, 그라운드에 나타난 선수들이 모자를 눌러 쓰고 배트를 손에 쥐었다. 보통 시민 야구단의 장비나 도구들은 선수들이 회비를 걷어 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화천 그린 베이스볼은 달랐다. 김상호 단장이 직접 장비를 구입하고 선수들을 지원했다. 김단장은 “야구 선수가 장비걱정하면서 어떻게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겠나”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물심양면으로 돕겠다”고 이야기 했다. 선수들이 운동에만 전념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가 생각한 야구단장의 첫 덕목이었다.

 

<화천 그린 베이스볼>

 

 신생팀의 한계였을까. 그린 베이스볼의 첫 시즌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경기 결과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론 김상호 단장의 마음은 안타까웠다. “개개인 측면에서 보자면 좋은 실력을 가진 선수들이 많았지만 아쉽게 패한 경기들이 많았다”라고 밝혔다.  그는 매주 팀의 훈련을 지켜보며 하나하나 문제점을 체크했다. “어느 날 타자 대기석에서 선수들이 따로 앉아있는 것을 봤어요. ‘이게 문제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죠. 야구는 팀 플레이기 때문에 화합이 정말 중요하다고 믿고 있거든요” 그린 베이스볼의 선수들은 회사원부터 군인, 자영업자까지 다양했다. 게다가 신생팀이라는 이유로 동료들과 초면인 선수들도 많았기 때문에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즉 선수들을 하나로 이어줄 연결고리가 없다고 봐도 진배없었다.

 

 이후 김상호 단장은 ‘팀의 조직력 향상’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팀 훈련을 마치고 항상 식사시간을 가지며 선수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서먹했던 선수들 사이에서 대화가 생겼고 웃음이 피어났다. 동료를 믿고 플레이 하니 자연스레 팀 성적이 올랐다. 다음 해 화천 그린 베이스볼은 ‘춘천 시장기 사회인 야구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김상호 단장 배트를 쥐다.

 

 김단장은 야구를 좋아하지만 직접 플레이 한 적은 거의 없다. 어린 시절 야구공에 맞아 큰 부상을 입은 후 공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우연찮게 배트를 쥐었.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친선 경기 도중

그린 베이스볼에 하나의 악재가 생겼다. 팀의 외야수가 주루 플레이를 하다 부상을 당한 것이다. 곧바로 감독에게 교체 사인을 보냈지만 대기석엔  선수가 남아 있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선수 부족으로 팀은 몰수 패를 당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 때 감독과 선수들의 시선은 김상호 단장이 앉아있는 관람석으로 향했다. “어쩔 수 없었죠. 못 하겠다고 손사래를 치긴 했는데.. 제가 타석에 들어서지 않으면 팀이 지는 상황이니” 그는 배트를 들고 타석으로 향했다. “무섭긴 했어요. 그래도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하려고 했죠. 팀이 원한다면 무엇이든지 해야죠”라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친선 경기>

 

 상대투수와 치열한 기 싸움이 시작됐다. 한 개의 볼을 걸러내긴 했지만 연속으로 스트라이크를 맞은 상황이라 불리한 카운트에 놓여졌다. 이어 4번째 공이 투수 손에서 벗어나고 빠른 속도로 포수의 글러브로 향했다. 이 때 김상호 단장이 배트를 크게 휘둘렀다. 아니 이게 웬걸. 배트에 맞은 공은 1루와 2루 사이를 가르며 안타가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뛰기만 했어요. 그래서 2루에 가까스로 세이프 했죠. 그 전율. 평생 잊지 못 할 겁니다”라고 껄껄 웃었다.

   

야구단장은

 

“선수들을 진심으로 대해 주어야한다”라며 김상호 단장은 말을 이었다. “팀은 하나입니다. 선수들의 팀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연히 내 팀도 아니죠. 모두의 팀입니다. 원하는 바는 다들 똑같잖아요. 팀이 잘 되길 바라는 것.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진심으로 선수들을 지원해야죠”

 

 

 

 현재 김상호 단장은 야구팀뿐 아니라 지역 사회활동에도 노력하고 있다. 지난 4월 강원 화천군장학회와 후원 계약을 맺으며 학생들에게 매년 장학금 지원을 하기로 약속했다.

 

“봉사는 해 본 사람이 그 기쁨을 더 알아 가는 거 같아요. 학생들도 그렇고 야구선수들도 마찬가지고. 내가 진심으로 대했던 사람들이 후에 잘 된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저도 모르게 흐뭇해집니다.” 그의 입가엔 어느새 미소가 번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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