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명수
10살 때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 꿈나무로 발탁 중학교 땐 국가대표 상비군 지내
TV로 본 아테네올림픽 개막식의 기억 강렬하게 남아⋯ 러시아국립체육대학교 입학
무대공연연출 전공, 외국인 최초 수석졸업
브라질 상파울루의 아레나 데 상파울루 경기장. 7만개의 LED 전구로 제작된 거대한 공에서 화려한 빛들이 뿜어져 나왔다. 곧이어 경기장을 가득 메운 660명의 분장한 연기자들이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아마존에 자생하는 갖가지 식물, 다채로운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 32개국을 대표하는 어린이들 그리고 유명 팝스타의 공연까지. ’자연’ ‘사람’, ‘축구’, ‘공식주제가’ 순으로 이어진 개막식은 25분의 짧은 러닝타임이었지만 강렬함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개막식은 브라질과 브라질의 자산인 자연과 사람들, 축구에 대한 헌사"라고 설명한 다프네 코네츠. 벨기에 출신 여성 연출가로서 브라질월드컵의 개막식은 그의
연출로 꾸며진 무대였다.
인천아시안게임 문화행사부 담당관 양정이씨는 어린 시절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을 배우고 14살 이후로는 중국과 러시아에서의 유학생활을 했다. 러시아국립체육대학교 시절 무대공연연출을 전공한 그는 외국인 최초 수석 졸업하며 개폐막식 대형공연 이벤트 연출가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이 꿈이다. ⓒ김명수
한국에도 다프네 코네츠처럼 국제 스포츠대회의 개•폐막식 연출가를 꿈꾸는 이가 있다. 인천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 문화행사부 담당관 양정이(27)가 그 주인공이다. 인천 송도에 위치한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 그는 한 달 여 앞으로 다가온 인천아시안게임 준비로 분주하다. 선수촌 문화행사 프로그램 구성 및 운영과 타 대회(국•내외)선수촌 문화행사 사례 조사와 분석까지 모두 맡고 있다.
양정이는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 선수 출신이다. 10살 때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 꿈나무 선수로 발탁되면서 엘리트 선수의 길로 들어섰다. 방학 때마다 태릉선수촌의 선수들과 함께 운동을 했다. 중학교 시절
국가대표 상비군을 지내기도 한 그는 아버지를 따라간 중국에서 고등학교 3년을 보냈다. 중국에서도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을 계속했다. 20살 무렵, 대학 진학을 위해 러시아와 일본을 두고 고민 끝에 러시아국립체육대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10년 동안 함께한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이 아닌 ‘무대연출’의 길을 택했다. 왜 그는 돌연 ‘무대연출’로돌아섰을까? 양정이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라고 회상했다. 이어 “2004년 당시 TV를 통해 본 아테네올림픽의 개막식을 잊을 수 없었고, 대학
입학 후 무대연출 전공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됐죠.” 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올림픽 개•폐막식 무대연출가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러시아국립체육대학교의 수영장에서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 포즈를 취하는 양정이 사진제공=양정이 ⓒ김명수
◇ 러시아에서도 계속된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
중국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곧장 러시아로 건너갔다. 러시아국립체육대학교에서도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을 하고자 직접 코치를 찾아 나섰다. 무작정 찾아간 수영장에서 중국인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 선수를 발견했다. 당시 중국어는 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에 코치를 찾고 있으니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뒤
수영을 하고 있는데 러시아 사람 한명이 다가왔다. “네가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을 하고 싶다는 친구니?”라며 물어왔고, 그렇게 러시아 코치와 인연을 맺어 여러 공연과 대회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후 러시아에서 참가한 첫 대회는 선수생활 중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됐다. “러시아는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 1위의 강국이다. 러시아 국내대회 자체가 곧 세계대회이기 때문에 자부심이 무척 강하다. 그런 곳에서 대회 중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나를 반겨줬고, 러시아 국기 옆에 조그만 태극기를 걸어주기도 했다.”
고 회상했다. “비록 그 대회에서 성적을 내진 못했지만, 타국에서 태극기를 본 그 때의 감정은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 순탄치만은 않았던 대학생활, 그 과정에서 느낀 즐거움
러시아국립체육대는 우리나라의 한국체육대학교와 비슷했다. 러시아의 거의 모든 운동선수들이 이
학교 소속으로 김연아를 꺾은 소트니코바도 이 학교 소속이었다. 학과명은 인문학부 무대연출학과로 올림픽 전 종목을 연극으로 연출했고 콘서트, 뮤지컬, 마임, 시상식, 개폐막식까지 모두 배울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이벤트와 무대공연 연출학 교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러시아국립체육대학교 학부생 시절 초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실습무대를 꾸민 후의 모습. 사진제공=양정이
ⓒ김명수
졸업공연과 실습도 있었다. “졸업공연은 학교에 다니는 중국인들을 직접 찾아가 섭외를 부탁했다.
의상, 음악, 구성까지 모두 혼자 처리해야 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즐거움을 느꼈기 때문에 열심히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습도 마찬가지였다. 모스크바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을 이끌고 꼬박 한달 반을 준비했다. 나름대로의 철학은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연출을 하면서 어린이들에게 기준을 맞췄지만, 나는 무대를 보는 관객들에 모든 것을 맞췄어요.”라고 했다. 결과는 통했다. 대학교에서 마련된 발표회에서 1등을 차지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문제는 논문과 시험이었다. 러시아어로 출제되는 시험 하나하나가 어려웠기 때문에 긴 시간을 준비해야 했다. 3년을 준비한 끝에 시험을 만점으로 통과하며 학부와 석사를 수석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인천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와의 인연
석사 졸업을 앞둔 2012년,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란 생각은 못했다. 2년 후 아시안게임이 인천에서 개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길로 “국제행사는 ‘무조건’ 참여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나 자신보다는 인천아시안게임에 도움이 되고자 지원 했죠.”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2013 인천실내무도아시아게임의 의전부 의전담당관으로 입사했다. 실내무도아시아게임이 끝난 2013년 8월, 인천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의 문화행사부 담당관으로 발령 받아 현재까지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과거’와의 뜻밖의 조우
그는 2013년 인천실내무도아시아게임의 의전담당관으로 우즈베키스탄에 다녀왔다. 러시아어 통역을
위해 들른 수영장, 불현 듯 그의 머릿속에 10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중학교 2학년 주니어로 출전한 우즈베키스탄의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 국제대회가 열렸던 그 장소였다. 단체부분에 참여해 2등을 했었기에 그에게는 더욱 뜻 깊은 곳 이었다. 그는 “살다보니 그런 일도 있더라고요. 저의 새로운 꿈을 위해 경험을 쌓아가는 중이었는데 감회가 무척 새로웠어요.”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꿈 그리고 목표
최근에는 체육인재육성재단에서 운영하는 ‘여성스포츠리더 육성과정’에 참여하여 얼마전 수료식을
마쳤다. 아시안게임 준비에 여념이 없지만, 토요일을 반납해가며 여성스포츠리더가 되기 위한 교육을 이수중이다. 양정이는 “인천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데 모든 힘을 쏟을 생각이에요.” 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제 꿈은 굉장히 많아요. 러시아국립체육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면서 ‘개폐막식 대형공연 이벤트 연출가’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이 분야에서만큼은 세계 최고가 되려고 해요. 좀 더 경력을 쌓아 언젠가는 제가 직접 연출하는 올림픽 무대를 꾸미는 것이 제 꿈이에요. 그리고 십 년 가까이 운동한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은 지금도 제가 좋아하기 때문에 여러 방면으로 재능을 기부할 생각이에요.”라고 한 후 “9월에 열리는 인천아시안게임에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라는 말도 건넸다.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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