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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소녀의 꿈을 아이스하키로 이룬다!


글 / 김명수


멀리 오륜기가 보이는 올림픽 공원의 공터, 그 곳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며 스틱을 휘두르던 어른들의 모습은 5학년 소녀의 마음을 흔들어 놨다. 직접 부모님을 설득해 인연을 맺은 인라인 하키. 고등학교 시절엔 육군사관학교 진학을 위해 ‘스틱’ 대신 잠시 ‘펜’을 잡기도 했다. 두 번의 대입 실패로 좌절을 맛봤지만, 소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체육학과에 진학하여 이번엔 아스팔트가 아닌 빙판 위에서 다시 스틱을 잡았다. 마음 한 구석에 미뤄놨던 장교의 꿈도 함께.


아이스하키 3년차를 맞이한 이내경(24)은 현재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공격수이다. 지난달 12일 이탈리아 아시아고에서 열린 2014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여자 세계선수권 디비전2 그룹A 대회에서  여자대표팀은  폴란드, 뉴질랜드, 이탈리아, 영국, 호주가 속한 그룹 중 3위를 차지하며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이내경 역시 여자대표팀의 공격상황에서 특급조커로 투입되며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지난해 국민대 ROTC(학군사관후보생)에 합격한 그녀는 군인의 신분으로 이 대회에 출전했다. 경기 전 거수경례와 거친 몸싸움이 특징이었던 그녀를 한 외국인감독은 ‘빙판위의 솔져‘로 부르기도 했다. 


대회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그녀를 25일 오후, 정릉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보았다.


 지난달 25일, 정릉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내경 선수 ⓒ김명수


- 스포츠둥지 독자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현재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의 포워드를 맡고 있다. 지난해 5월 대표팀에 선발된 이후 6개월 동안 상비군을 거쳤다.  국민대학교 체육학과에 재학중이며 동시에 학군사관후보생(이하 후보생)이다.


- 잠깐, 뭔가 맡은 일이 많아 보이는데.

▲그렇다. 사실 몸이 세 개였으면 좋겠다. 어렸을 때부터 하키도 하고 싶었고, 장교의 길도 걷고 싶었다. 아이스하키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했다. 대학을 다니던 중, 졸업 후 장교가 될 수 있는 ROTC제도가 있다는 걸 알고 바로 지원했다. 철저히 준비한 끝에 합격 할 수 있었다. 


- 그럼 대학생인가? 아니면 국가대표? 그것도 아니면 군인? 

▲하하. 아마 학생선수 아니면 군인선수가 아닐까.


지난달 12일 이탈리아 아시아고에서 이내경 선수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이내경 선수 


- 아이스하키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부터 아이스하키를 한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때 올림픽공원을 자주 갔는데 그곳에서 인라인하키를 하는 사람들을 봤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데 하키스틱까지 들고 운동을 하더라. 무슨 생각이었는지 직접 부모님을 설득했다. 중학교 때까지 취미로 하던 인라인하키를 고등학교 진학문제로 잠시 그만 뒀었다. 대학 입학 후, 내겐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가 있다. 내가 신입생일 당시 남자친구는 이미 아이스하키를 하고 있었고, 그의 권유로 아이스하키를 시작하게 됐다. 


- 아이스하키, 여자로서 거칠고 힘들 것 같은데. 애로사항은?

▲현재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과 남녀혼성 클럽팀(동호회)에 소속돼있다. 여자대표팀끼리는 몸싸움이 조금 거칠어도 비슷비슷해서 피하거나 무섭지 않지만, 클럽 팀의 경우 여자 아이스하키 자체가 활성화 돼있지 않기 때문에, 남자와 같이 운동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남자들과 섞여 경기를 할 땐 여자와 부딪히는 것보다 부상 위험이 훨씬 크다. 추가로 운동 외적인 얘기지만, 남자위주의 운동이다 보니 옷을 갈아입거나 무장(아이스하키 장비를 착용하는 것)을 할 때 탈의실이 따로 없기 때문에 많은 불편을 겪기도 했다.


-이번에 처음 여자대표팀에 뽑히게 되었는데. 

▲부담감, 그리고 책임감이 크다. 아이스하키를 시작하고, 빙판 위 첫발을 내딛었던 순간부터 나의 꿈은 아이스하키 국가대표였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곱절의 노력이 필요했다. 낮에는 학과공부를 하고, 저녁엔 아이스하키에 매진했다. 하지만 지난 2년간의 노력을 이 태극마크로 보상받은 것 같아서 후회는 없다. 


태릉선수촌 빙상장에서 여자대표팀의 모습. 사진제공=이내경 선수


-  하루일과는 어떻게 되는지.

▲학기 중에는 후보생으로서 일과를 시작한다. 오전 6시에 기상해서 운동장으로 향한다. 3km 뜀걸음, 윗몸 일으키기, 팔굽혀펴기를 한 후 기숙사로 돌아와 단복을 입고 수업에 들어간다. 전공수업을 모두 듣고 난 늦은 오후에는 다시 기숙사로 돌아와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태릉선수촌으로 향한다. 지하철로 약 1시간이 걸리는데 이때가 나의 유일한 휴식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웃음) 태릉에서는 4시간에 걸쳐 지상훈련과 아이스 훈련(빙상훈련)을 한다. 훈련을 마치면 시계는 어느새 12시를 가리킨다. 기숙사에 다시 돌아와 학과 공부와 과제들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 이번 ‘2014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아이스하키 여자 세계 선수권 디비전2 그룹A 대회’에서 여자대표팀이 3위를 기록했는데 어떤 역할을 맡았었는지. 

▲지난 3월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아시아 챌린지컵에서도 3등을 했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국제랭킹이 결정되는 대회였기 때문에 경험이 적은 내가 뛸 것이란 생각은 못했다. 감독님은 딜레이페널티(반칙 후 심판이 손을 들고 있는 동안 수비팀이 퍽을 건들지 못하고 수비만 하게 됨)상황마다 골리(골키퍼)를 빼고 나를 투입했다. 쉽게 말하면 조커 공격수인데 우리 팀이 골을 넣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뛰었다. (웃음)다만 내가 골을 넣지 못한 것은 아쉽다.


-이번 대회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폴란드, 뉴질랜드, 이탈리아, 영국, 호주 그리고 우리나라가 속한 2A그룹의 대회였다. 6개 나라가 리그를 치렀다. 우리대표팀은 폴란드와 뉴질랜드를 이기고, 이태리와 영국에 져 2승 2패를 거둔 후 호주와의 마지막 경기만 남아있었다. 승점제도였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호주를 잡고, 남은 폴란드와 뉴질랜드의 경기에서 뉴질랜드가 꼭 이겨야 우리나라의 3위가 확정이 되는 상황이었다. 먼저 경기를 치른 우리는 2:1로 호주를 꺾었고, 폴란드와 뉴질랜드의 경기는 기적적으로 뉴질랜드가 역전승을 거뒀다.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우리대표팀은 3위 소식을 듣고 얼싸 안고 뛰었다.


인터뷰 중인 이내경 선수.  ⓒ김명수

-그럼 다음 질문...

▲아, 더 기막힌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다. 이건 지난 3월에 중국 하얼빈 대회에서 있던 얘기다. 거기서 북한이랑 경기를 했었는데, 내가 군인신분이기 때문에 경기 전에 나오는 애국가에 거수경례를 했다. (웃음)그 모습을 유심히 본 한 북한코치가 “남한에서는 군인을 데려왔나?”라고 말하면서 대회가 끝날 때 까지 경계를 했던 적이 있다. 한국 측에서 가져온 음식을 나눠먹을 기회도 있었지만, 나 때문에 먹지도 않고 테이블을 떠났던 일도 있다. 


- 앞으로도 남은 대회가 있는지.

▲올해 8월에 개최 예정인 ‘2014 여자아이스하키 summer 리그’를 앞두고 있다. 이번에 여자대표팀에 뽑히면서 전지훈련과 세계대회를 다녀왔기 때문에 조금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골을 많이 넣고 싶다. 


- 아무래도 3가지를 동시에 하다 보니 힘든 일이 많을 것 같다.

▲남들보다 늦게 아이스하키를 시작했기 때문에 따라가는 입장으로써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도 부담이 컸다. 교과시간이 끝난 후엔 오로지 아이스하키였기 때문에 학교생활도 잘 하지 못했다. ROTC는 방학마다 훈련을 가는데, 훈련일정과 아이스하키 대표팀 훈련이 겹친 적이 있었다. 어느 한 쪽에 오롯이 집중을 하지 못할 때가 생겨 미안한 상황이 더러 있었다.


대학생,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그리고 학군사관후보생의 모습을 가진 이내경 선수 ⓒ김명수


- 기억에 남는 학교생활이 있다면.

▲아무래도 과가 체육학과이기 때문에 운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스하키 외에 ‘한마음 레이디스’라는 축구동아리와 ‘나래’라는 태권도 동아리에 참여하고 있다. 1학년 때는 전국대학생 여자축구대회에도 참여 한 적도 있고, 태권도 대회에도 나간 적이 있다. (웃음) 여자대표팀에 뽑히기 전에는 참여했었지만, 현재는 잘 나가지 못하고 있어 미안하다.


- 앞으로의 목표는.

▲국가대표로서는 현재 4번째 옵션에 있지만, 경기에 항상 출전하는 최소 3번째 옵션 까지 올라가는 게 목표다. 대학생으로서는 체육학 전공이기 때문에 단순히 일반사람들도 대답할 수 있는 지식을 갖은 체육학도가 아닌, 다른 사람을 나의 논리로 설득시킬 수 있는 지식을 습득하는 게 목표다. 마지막으로 학군사관후보생으로서는 장기적으로 나의 전공을 군대에 접목시키고 싶은게  꿈이다.


-오늘 인터뷰 소감을 물어보고 싶다.

▲이정도로 나에 대해 끝까지 얘기해 본적이 없던 것 같다. 나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뒤돌아보면 마냥 잘한 일만 있던 것은 아니다. 되짚어보고 노력해서 더욱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아이스하키’란?

▲나에게 아이스하키란 산소와 같은 존재다. 정말로 없어서는 안 될 존재. 며칠만 안해도 몸에 병이 나는 매력을 가진 운동이다. 정말이지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클럽(동호회)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부터 대학교에 와서 까지 영향을 미쳤고, 자신 있게 내가 “나 아이스하키 하고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내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로서 기회를 준 운동이다.


인터뷰를 마친 후 이내경 선수는 곧장 클럽운동이 있는 고려대학교 빙상장으로 향했다. 그럼에도 불평하나 없던 그녀의 뒷모습은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자신의 꿈을 위한 길에서 좌절을 겪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는 열정이 있었기에 현재의 그녀를 만든 것이 아닐까.



ⓒ스포츠둥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