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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아이스하키 선수출신의 성공적인 변신이야기’

 

 

글 / 홍의택

 

 

 

   “자세 낮추고, 발목에 힘주고! 시선은 앞쪽 유지해야지!”

 

   지난 29일 밤, 성남 탄천 빙상장엔 구령이 울려 퍼졌다. 아이스하키팀 ‘성남 아이언 이글스’ 전국 코치(26)는 아이들 지도에 여념이 없었다.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학생으로서 자신의 특기를 살려 현장에 나온 것이 어느덧 1년 반. 초등학생의 방과 후 활동으로 아이스하키를 가르치는 그는 “이런 보람을 어디서 찾겠어요.”라며 웃어 보였다.
 
   전 코치가 처음 스틱을 잡은 건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선수 출신 부모님의 영향으로 운동을 시작한 친구들과는 달랐다. 전주 중산초등학교 재학 중 열린 영․호남 친선 교류전이 계기가 됐다. 그는 얼음 위를 내달리던 선수들에 대해 “완전 멋있더라고요. 반했죠(웃음).”라며 아이스하키와의 첫 만남을 전했다. 서울에서 조금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당시엔 아이스하키를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서울행 버스를 타야 했다.

 

   쉬운 길은 아니었다. 일상이 되어버린 선후배간 집합에 그는 굳은 결심을 했다. 그리고 경복고 3학년이 되던 해, 악습의 고리에 정면으로 대항했다. “왜 혼나는지도 모르고 혼났어요. 이 부분만 고쳐도 성적이 쭉 올라갈 거라 생각했거든요.”라던 그는 가족 같은 팀 분위기부터 만들었다. 비로소 팀원 간 진정한 소통이 이뤄졌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이전 해 전국 대회 7개 중 2회 우승에 그쳤던 경복고는 반대로 2개 대회를 빼놓고 모두 우승하는 팀으로 변모했다.

 

   그중 전 코치가 으뜸으로 꼽는 건 2006년에 열린 ’제51회 전국아이스하키 선수권대회’다. 경복고와 경성고, 라이벌 관계의 두 학교가 맞붙은 결승전. 전교생이 운집한 목동 아이스링크장 현장은 TV 중계까지 탔다. 의욕이 넘칠 수밖에 없었다. 서 있는 반대 방향으로 퍽이 날아든 순간, 이를 쳐내기 위해 급히 뻗은 팔이 뒤로 꺾이며 빠져 버렸다. 육체적 고통이 문제가 아니었다. 골키퍼가 이탈한 순간 팀 전체가 흔들릴 수 있음을 우려했다. 급히 무통증 주사까지 맞은 그는 투혼을 발휘해 경복고의 한 점 차 우승을 이끌었다.

 

   고등학교에서의 활약은 한양대 입학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전 코치를 기다린 건 탄탄대로가 아닌 가시밭길이었다. 그는 "경기를 뛰지 못한 게 너무 힘들었어요."라며 이 시절을 회상한다. 심적으로 크게 흔들렸던 스물둘 한창의 나이에 아이스하키와 이별했다. 학창시절을 오롯이 바쳤기에 방황은 더욱더 심했다. 

 

   막막함이 급습했다. 전 코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학업을 등한시해 온 엘리트스포츠 전체의 문제였다. 최근 몇몇 스포츠가 주말 리그를 도입해 학습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이미 성인이 돼 운동을 그만둔 이들은 앞이 캄캄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라고 운을 뗀 전 코치는 “일반 학생들이 공부만 했듯, 저는 운동만 했잖아요. 아는 게 없었어요.”라고 덧붙였다. 프로로 진출하는 숫자는 한정돼 있었고, 빛을 발하는 이는 극소수였다. 지도자 자리가 많지 않자, 가업을 잇거나 사업을 벌이는 이들도 있었다.

 

   군대 문제도 걸렸다. 아이스하키의 경우 국군체육부대 소속으로 군복무를 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운신의 폭은 너무나도 좁았다. 일반 병사로 군 복무를 마친 전 코치는 다행히 스포츠 산업학과 동기들의 덕을 크게 봤다. “정말 고맙죠. 그 친구들이 도와준 덕분에 일반 학생의 삶도 가능했어요.”라고 털어놓는다. 최근에는 ‘한국장학재단 지도자급멘토링’에 선정돼 CJ푸드빌 이명우 고문으로부터 인생의 조언을 듣고 있다. 민들레 국수집을 통한 봉사 활동에도 나섰고, 수익을 기부하는 조건으로 각종 과일 잼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 

 

   전 코치는 더 꿈을 꾼다. 운동선수의 재사회화가 심각한 문제임을 절감한 뒤부터는 늘 후배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고 싶었다. 비단 아이스하키만이 아닌, 스포츠 세계 전반에 희망을 전하려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운동을 그만둔 친구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싶어요. 이명우 고문께서 말씀하셨듯이 운동을 그만둔 선수 중에는 정신력과 열정이 뛰어난 아이들이 있어요. 당장 전문적인 지식은 부족하겠지만, 이들의 장점을 확실히 발휘할 파트는 분명히 있다고 봐요. 영업 파트가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고요. 이를 특화해 기회를 준다면 회사의 경제적 이익에도, 이미지 제고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재사회화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는 것이 제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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