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임성민
살인자로 추정되는 미모의 금발여인이 어두컴컴한 취조실에 앉아 있다. 살인용의자라고 단정 짓기에는 그녀의 말투와 표정이 너무 도도하다. 형사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진다. 그 순간 태연하게 그녀가 다리를 꼬기 시작한다. 속옷을 입었는지 분간하기 힘든 정도의 짧은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말이다. 아 아찔하다. 취조를 하던 형사들도 그녀의 관능적인 모습에 넋을 잃고 숨을 삼킨다.
샤론스톤을 세계최고 섹스심볼로 만들어줬던 영화 ‘원초적 본능’의 한 장면이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필자는 이 영화를 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해봤지만 미성년자 딱지를 떼기 전까지는 볼 수 없었다. 그런데 막상 성인이 된 이후에는 그 당시에 가졌던 묘한 흥분감은 이미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인간은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훔쳐보기'다. 남의 은밀한 생활을 몰래 보고 싶어하는 마음은 호기심을 넘어 인간이 가진 원초적 욕망이라 할 수 있다. 한때 이경규의 ‘몰래카메라’가 전국민을 TV앞으로 모이게 만든 이유도 아마 이와 비슷할 것이다.
그럼 스포츠에서도 이런 원초적 본능이 존재할까? 대답은 '그렇다'이다. 보고 싶었지만 볼 수 없었던 그 곳. 바로 라커룸이다. 지금까지 미디어는 경기장 안팎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장면을 보여줬다. 그러나 아직까지 금지된 성역이라 여겨지는 라커룸은 제외 대상이었다. 대부분의 스포츠팬이라면 하프타임에 선수들이 무엇을 하며, 감독은 어떤 표정으로 지시를 하는지 한번쯤 상상 해봤을 것이다.
이제 이런 상상이 현실로 이뤄질 듯하다. 작년 4월 미국 최고의 인기스포츠인 미식축구리그(National Football League, 이하 NFL)에서 라커룸에 카메라를 설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NFL은 2012-2013시즌 98%의 티켓 판매율을 기록했음에도 어떻게든 볼거리를 더 제공해 남은 2%까지 꽉 채우고 싶어한다. 이거 참 욕심쟁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다. 단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에서만 영상을 볼 수 있게 해 유료관중수를 최대한 늘리겠다는 거다. 물론 반대의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나왔다. 도대체 라커룸이 볼게 뭐가 있냐고. 그런데 NFL은 밀어붙였다. 역시 자본주의의 천국 미국답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떨까. 아직은 라커룸 카메라설치는 성급하다는 여론이 우세할 것 같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의 공간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은 꺼림직하게 생각하는 분위기일 것이다. 하지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한번 시도해볼만하다고 여겨진다. 만약 라커룸을 몰래 볼 수 있다면 그라운드의 희로애락을 단 한가지 표정으로 표현하는 ‘포커페이스’ 전북의 최강희 감독이 라커룸에서 조차 무표정인지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프로축구는 프로야구에 밀려, 프로농구는 프로배구에 뒤쳐져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상황이다. 새로운 국면전환을 위해 도입을 고려해보자는 것이다. 프런티어 정신으로 선구자가 됨으로써 새로운 스포츠 문화를 창출한다면 그것만큼 보람찬 일도 없다.
프로스포츠는 팬이 있기에 존재 할 수 있다. 남들이 꺼려하는 '짓', 우리가 한번 해보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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