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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감독님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글/ 임성민




# 2009년 12월, 허탈함


2009년 겨울 동대문으로 쇼핑을 하러 갔었다. 학창시절 6년을 동대문에 있는 중. 고등학교를 다녀서 그때나 지금이나 가끔 들려 물건을 구입하곤 한다.   

       

그날도 나는 쇼핑몰 4층 남성복 매장의 익숙한 구조를 재빠르게 확인하며 겨울옷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성민아”.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데 다시 한번 “성민아, 임성민”. 낯선 사람이 내 이름을 불렀다. 


난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휙 돌리며 “저 아세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 성민이 아니야? 축구부 주장 임성민 맞지?”


“어 맞는데. 그런데 누구…?


“야 나 너랑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 이었잖아. 이야 정말 반갑다. 이게 얼마만이야. 거의 10년만인가?”  


난 “아 그래 너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얼굴은 기억나는 것 같아. 잘 지냈어?”라고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사실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단 1%도 그 친구의 얼굴은 내 기억 속에 없었다. 그 친구가 너무나 내 존재를 확실하게 알고 있었고 아예 모른다고 말해버리면 약간 어색한 상황이 연출 될 까봐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 친구는 학교 졸업하고 동대문에서 옷장사를 하고 있었다. 어차피 옷 사러 왔는데 오랜만에 만난 동기녀석 매상 좀 올려주자 라는 생각으로 약 30만원 어치의 옷을 기쁜 마음으로 구입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고맙다며 티셔츠 한장을 서비스로 챙겨줬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갑자기 마음속 어디에선가 알 수 없는 허탈감이 밀려왔다. 내 인생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 그 친구에게는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난 고등학교 3년 내내 도대체 뭘 했단 말인가. 운동하느라 학업뿐만 아니라 정말 중요한 인간관계도 잃었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WBC 1, 2회 한국야구대표팀 사령탑을 지냈던 김인식 감독은 이런 상황을 꽤 뚫어 보고 있는 듯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선수들을 수업시간에 보내는 것은 꼭 공부를 하라고 보내는 것은 아니야. 수업에 들어가서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얼굴을 익혀 앞으로 사회 생활을 하면서 뭔가 도움이 되라고 하는 거야. 매일 운동만 하고 담임 선생님이 누구인지, 동창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선수생활을 하면 결국은 자신만 불행해져”. 


딱 내꼴이 아니던가. 아마 나뿐만 아니라 많은 운동선수들의 가슴을 찌르는 비수 같은 말일 것이다. 



# 2013년 11월, 조범현 감독의 푸념


신생팀 KT야구단의 조범현 감독은 지난 11월 모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요즘 아이들이 너무 힘들게 산다.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해 큰 일"이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조범현 감독은 왜 이런 푸념을 늘어놨을까? KT선수단은 남해에서 전지훈련 중 이었다. 하지만 KT선수단의 절반이 아직 졸업을 하지 않은 고등학생 및 대학생 신분이었다. 기말고사를 봐야 졸업을 할 수 있는 선수들의 학사일정상 시험을 보러 학교로 돌아갔다가 다시 전지훈련장인 남해로 복귀해야 하기 때문에 훈련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 이라는 이유였다. 이어 조감독은 "훈련을 하려고 하면, 시험이 있다고 빠지더라. 무슨 시험이 그렇게 많은 지. 중간고사, 기말고사, 졸업시험 거기에 졸업평가도 있더라. 요즘 애들이 힘들게 산다고 들었는데, 진짜 그런 것 같다. 어쩌겠나. 졸업을 하려면 꼭 시험을 봐야한다고 하니 안보낼 수 없는 노릇 아닌가”라고 말했다. 


과연 조감독의 발언은 적절한 것일까? 학생신분의 선수가 운동과 학업을 병행 하는 게 힘들게 사는 거라고 평가 할 수 있을까? 그럼 어떻게 살아야 힘들이지 않고 편하게 사는 것 일까? 


조감독 같이 프로선수와 감독으로서 성공한 사람은 학업의 중요성이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대부분의 직장인 같으면 은퇴하고도 훨씬 지났을 나이인 53세에 천문학적인 몸값인 15억(3년간 계약금•연봉 포함)을 받는 조감독.


그는 KT의 모든 신입선수가 자신처럼 성공해 은퇴 후에도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그렇기에 학업의 중요성, 학교졸업장, 은퇴 후 삶보다 훈련 몇 번 더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운동선수들이 은퇴 후 얼마나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박지성, 류현진, 김연아처럼 되는 건 노력이상의 천운이 따라줘야 된다는 건 지도자가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말이다. 은퇴 후 20년 동안 줄곧 프로의 울타리 안에 있었던 조감독은 바깥세상의 냉혹한 현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이 일을 어쩌나. 

 

훌륭한 감독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훈련에 공백이 생기면 그 공백까지 염두해 두고 훈련일정을 짜야 한다. 시험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훈련장소, 방법, 시간을 학사일정에 맞춰 구상해야 되는 게 유능한 감독이 해야 할 일이다. 팀의 주요선수가 경기 중 부상을 당해 팀이 패배하면 특정선수가 갑작스러운 부상을 당해서 졌다고 핑계 댈 건가? 그런 볼멘소리를 하는 게 감독의 몫은 아니다. 물론 감독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그다지 탐탁지 않을 수도 있다.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없고, 그렇게 되면 결국 옷 벗어야 되니까. 


하지만 좀 더 크게 보자. 인생에는 우선순위가 있기 마련이다. 수업에 들어가 시험을 보고, 같은 반 친구와 선생님에게 이제 프로팀에 간다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 게 훈련 몇 번 더하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시간을 다시 돌려 조감독이 “얘들아 이번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 선생님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없을 거야. 너희는 이제 돈을 받는 프로선수니 그 동안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고마웠다며 작은 선물이라도 하면 어떨까?”라고 말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선수도 감독의 넓은 마음에 저절로 존경심이 들 거고, 선수가 학교에 가서 고마움을 표시한다면 그 선수와 팀을 좋아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세상사 다 인지상정이다. 



 




# 2012년 8월, 세계청소년 야구선수권 대회


마지막으로 한가지 좋은 예를 소개하겠다. 운동과 학업 병행에 대한 사례이니 감독님들께서 참고하시길 바란다. 작년 8월 제25회 세계청소년야구대회가 우리나라에서 열렸다. 그런데 미국대표팀에게서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었다. 미국선수들에게는 대회기간에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자율학습 시간이 주어졌다. 아니 대회기간에 웬 공부? 알고 보니 대회참가로 인해 결손 된 수업시간을 보충하기 위해서 내린 조치였다. 만약 자율학습시간에 경기를 하게 되면 저녁에 2시간을 학업보충시간으로 줬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생각할 때는 이해가 안 가는 장면 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선수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펜을 잡고 책을 넘겼다. 해외에서 열리는 대회였음에도 매일 꼬박꼬박 공부를 했었던 미국대표팀. 30년 만에 안방에서 열려 우승이라는 목표로 칼을 갈았던 한국대표팀.


훈련할 시간이 부족했던 미국이 꼴찌를 하고, 운동에만 몰두했던 한국이 우승할 것이라고 예상해도 그럴싸해 보였다. 그런데 웬걸. 결과는 미국이 우승, 한국이 5위였다. 감독님들, 이래도 운동만 시키실 건가요?



# 2014년 새해부터는


UCLA농구팀을 이끌고 88연승의 전설적인 기록을 썼으며, ESPN이 20세기 최고의 감독으로 선정한 존 우든 감독. 그의 제자 빌 월튼의 얘기는 스승의 역할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존 우든 감독님은 이 시대를 통틀어서 가장 위대한 농구감독이다. 하지만 내가 그 분께 배운 것은 농구를 어떻게 하는가 보다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 더 많았다. 나는 아들녀석들에게 감독님께서 선수들에게 해주시던 말씀을 지금도 하고 있다. 나는 우든 감독님에 대해 최고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 밖에는 없다. 감독님, 당신의 희생, 재능, 인내에 감사드립니다”. 빌 월튼이 말했듯이 농구 잘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우쳐 주는 게 참된 스승의 도리 일 것이다. 


우리도 학창시절에 열심히 공부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자. 학교 친구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은퇴 후에 사회의 어엿한 리더가 될 수 있는 교육도 시키자. 선수도 노력하고 선수주변에 가장 가까이 있는 감독님들이 더 많이 노력하자. 앞으로 우리나라의 많은 감독님들이 빌 월튼이  존 우든 감독에게 느꼈던 그 감정을 제자들에게 전달해줬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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