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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포항녀, 전주성 원정기 - 경기관람과 관광을 동시에, 스포츠관광!


글/ 권순철(스포츠둥지 기자)



최근 젊은 층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여행이 있다. 바로 ‘스포츠 관광’이다. 유럽의 축구장 투어, 미국의 야구장 투어처럼 스포츠경기 또는 구장과 연계하여 관광 프로그램을 즐기는 것이다. 스포츠 팬들에게는 화려한 경기와 뛰어난 인프라를 경험할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스포츠 관광을 즐길 수는 없다. 왜? 바로 돈 때문이다. 해외로 스포츠 관광을 가려면 상당히 큰 비용이 든다. 국내에서 많은 스포츠 경기와 시설들이 있는데, 굳이 해외로 가야 될까? 이런 생각을 품은 K리그 팬이 직접 루트를 개척해 ‘스포츠 관광’을 떠난 현장을 동행 취재해 보았다.



센트럴 시티 터미널에 나타난 '검빨' 유니폼의 그녀



: 센트럴 시티에 나타난 포항녀. 전주를 향해 출~바알. ⓒ 권순철




10월 18일 오후 4시. 센트럴 시티 터미널에 많은 인파 속 독특한 차림새의 한 여인. 가슴에는 POSCO를 새긴 채, 빨간 머플러를 두른 그녀는 누가 봐도 포항 스틸러스의 팬이었다. 그녀는 왜 저 차림으로 터미널에 나타난 것일까? 바로, 내일 전주에서 FA컵 결승전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포항이 우승하는 현장에 있기 위해서 전주행 티켓을 끊은 그녀에게 다가가 몇 가지 질문을 해보았다. 



 - 전주 원정은 어떻게 가게 된 것인가.


포항이 결승 진출을 확정하는 순간부터 전주원정은 계획되었다. 달력에 10월 19일 동그라미 쳐놓고 오늘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팀 포항 스틸러스의 우승을 향한 걸음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맛있는 음식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전주의 맛집도 돌아다니며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원정을 다녀올 것이다.


- 멀지 않은 원정인데, 주위의 우려는 없었나.


아무래도 여자다 보니 혼자 원정 다니는 것은 부담되었다. 동아리 친구들과 K리그 팬들을 모아 원정대를 만들었다. 주위 친구들은 취업을 앞둔 중요한 시기에 고작 축구 한 경기 때문에 전주로 가는 내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포항이 우승하는 그 순간, 내가 그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국가대표 축구단의 출사표처럼 비장한 각오를 말한 후 그녀는 전주행 버스에 올라탔다. 3시간쯤 달리자 전주 톨게이트를 지나 내일의 격전지 전주월드컵 경기장이 보였다. 환한 보름달에 비친 전주월드컵 경기장을 보며, 그녀는 설레고 흥분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30분여를 달려 전주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다. 터미널 앞에는 내일 경기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현수막을 보고 “전주에서 해서 최강희 감독은 잘 나온 사진이고, 황선홍 감독은 이상한 사진 해놨네!”라며 투정을 부리기도 하였다.




승부는 잠시 잊고, 전주 문화 체험



: 카드 택시가 아니라 당황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한옥마을에 도착한 포항녀. ⓒ 권순철



금세 밀려오는 배고픔에 투정을 멈추고 택시에 몸을 싣고 전주 한옥마을로 향하였다. 전주에는 카드 택시가 많이 없다는 사실을 몰랐던 그녀는 잠시 당황하기도 했지만, 재빨리 현금을 찾아 지급하였다. 미리 예약해두었던 한옥마을 게스트 하우스를 들려, 짐을 풀었다. 그동안 많은 여행을 다녀보았지만 이렇게 아늑한 숙소는 처음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짐을 풀고 바로 전주 먹거리 투어에 나섰다. 한옥마을 내에는 다양한 먹거리들이 있었다. 그중 그녀를 사로잡은 것은 칼국수였다. 늦은 시간임에도 가게 안에는 많은 손님으로 분주했다. 소문으로만 듣던 칼국수를 직접 맛본 그녀는 맛집 소개 MC처럼 맛을 표현하였다.


  “고소한 통들깨와 김의 조화가 입안을 감싸네요. 거기에 구수한 육수까지. 아! 이게 전주의 맛이구나. 장시간의 여독을 따뜻한 칼국수 국물이 풀어주는 것 같아요. 살면서 이렇게 맛있는 칼국수는 처음이에요. 최고예요.” 



: 허기를 달래 준 B칼국수. 말도 없이 폭풍 흡입 중 / 오목대에서 힐링 중 ⓒ 권순철



속을 든든히 채우고, 한옥마을 야경을 구경하러 나왔다. 아기자기한 조명이 달린 한옥 거리를 지나서 오목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목대에 올라가 내려다본 한옥마을은 더 운치 있었다. 한옥마을을 둘러본 그녀는

 “전주는 어릴 적 자주 갔던 경주와는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한옥마을은 서울의 높은 빌딩 속 화려한 불빛에 쫓기던 나에게, 여유와 운치를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이게 힐링 여행인 것 같다”


며 감성에 빠져있던 그녀는 전주 전통주인 ‘모주’를 사서 숙소로 돌아와 전북팬들과 함께 끝나지 않는 설전을 펼치면 내일 있을 결승전을 준비하였다.



스틸러스 응원가로 잠에서 깨어나다


 아침 8시 알람으로 맞춰놓은 스틸러스 응원가를 들으며 잠에서 깬 그녀는

 “현장에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우승을 맛볼 생각에 잠을 설쳤다.”라는 아침 인사를 보내왔다. 마당으로 나와 따스한 햇볕을 느끼며 한옥마을 한 바퀴를 산책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그녀는 어젯밤과 달리 조용한 아침의 한옥마을 한 바퀴 걸으며 너무나 멀게 느껴졌던 전주에 와있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하였다. 



: 스틸러스 응원가로 기상 한 포항녀. 출동준비 완료.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 권순철



아침 메뉴는 고민 끝에 전주 남부시장의 유명한 순댓국밥으로 정하였다. 포항 머플러를 한 그녀를 보며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대화를 걸어오는 전주시민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축구를 통해 그 지역 사람들과 소통할 수도 있다는 점을 느낀 그녀는 기분이 좋아졌다. 후식으로 전주 명물 초코파이를 맛보았다. 전주는 먹어도 먹어도 맛있는 음식이 계속 나오는 신기한 도시임을 느낀 채 경기장으로 향하는 택시에 올라탔다.




전주성에 나타난, 포항녀


택시에서 내리니, 전주성에서 들려오는 함성 소리가 그녀의 발걸음 재촉하였다. 같이 온 친구들과 경기장 앞에서 기념촬영 후, 포항 팬들의 집결지인 S석으로 향했다. 대규모 응원단이 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경기장에 들어서니 푸른 잔디밭과 함께 S석을 점령한 붉은 물결에 그녀는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경기 시작전 부터 맞은편 매드 그린 보이즈(전북 서포터즈)와 응원을 통해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 FA컵 결승전이 펼쳐진 전주성 도착. ⓒ 권순철



- 원정 응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항상 원정을 가면 느끼지만, 적지에서 내 팀을 응원하다 보면 더 동질감이 생기는 것 같다. 일당 백의 심정으로 적지에서 응원하겠다.”


 드디어 경기 시작! 팽팽하나 경기 흐름 속에서 전반 포항의 선제골이 터지자 전주성은 포항 ’We are Steelers' 응원가가 전주성을 가득 채웠다. 포항의 리드 오래되지 못했고, 금세 동점 골을 허용했다. 그녀는 전주 서포터스의 ‘ㅋㅋㅋ’ 플래카드에 뒷못을 잡으며 잠시 ‘멘붕’이 되었다.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밀리는 경기였지만 응원에서만큼은 밀리지 않았다. 연장전에 돌입하였고, 하나 된 목소리로 더 힘찬 응원으로 강철 전사들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결국, 경기는 승부차기에 돌입하였다. 승부차기 전 거의 탈진 상태인 그녀에게 간단한 질문을 해보았다.


- 이렇게 90분 이상 응원하면 힘들지 않나.


“포항이 승리할 수 있다면 전혀 힘들지 않다. 보통 한 경기를 치르고 나면 며칠 동안 목소리가 안 나와 고생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알지만 어쩔 수 없다. 나의 응원에 포항 선수들이 조금이라도 힘을 낼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 오늘 경기에서 불만인 점은.


“심판 판정. 포항에 너무 불리한 판정을 계속 하고 있다. 누가 봐도 편파적이다. 황선홍 감독이 퇴장당했을 때 ‘정신 차려 심판’ 소리가 전주성이 떠나갈 정도이면 말 다했지 않나. 이제 승부차기가 남았다. 정정당당하게 승부차기에서 이길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응원하겠다.” 



: ‘신화용 막아줘. 포항 이겨라.’기도 중인 그녀 ⓒ 권순철


그녀는 주위의 모르는 사람과 포항팬이라는 이유만으로 어깨동무하고 승부차기를 응원하였다. 마지막 키커 김태수 선수의 승부차기가 성공되자 그녀는 미친 듯이 날뛰었다. “날아갈 것 같았다. 몸이 증발하는 줄 알았다. 구름 위를 걷는다는 느낌이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녀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선수들이 서포터석으로 다가와 우승 뒤풀이를 하자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이런 역사적인 현장에 내가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이 맛에 포항 응원하지.”라는 말을 되풀이하였다. 


이렇게 요란한 우승 뒤풀이가 끝나고 전주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하는 그녀는 격양된 어조로 많은 말들을 쏟아 내었다.


- 90분이 아니라, 120분 응원이었다. 힘들지 않나


“경기가 끝나니 힘들다. 서포팅을 한 나도 이렇게 힘든데, 120분 뛴 선수들은 더 힘들 것이다.”


- 눈물을 보인 이유는.


“선수들과 함께 ‘스~틸러스’ 외칠 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올해는 어려운 상황에서 팀 스피릿이 있었기에 좋은 성적을 거둔 것 같다. 내가 포항 스틸러스 팬이어서 큰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이 감정을 마음속에 새기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잘 지낼 것이다.”


- 처음 방문한 전주의 느낌은.


“전주는 정말 신세계다. 특히 먹을 것이 너무 많다. 예전부터 꼭! 와보고 싶은 여행지였는데, 축구 덕분에 오게 되어 좋다. 나의 첫 전주 여행은 정말 값지고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 원정계획을 짜면서 힘들었던 점은.


“ 스포츠경기에 맞춰서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많은 제약이 있었다. 특히 효율적인 루트를 계획하는 것이 어려웠다. 축구 팬들을 위한 관광 루트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이번 원정을 통해 경험했던 루트도 많은 사람에게 알려서, 전주 원정을 오는 스포츠 팬들이 전주를 잘 즐기고 갔으면 좋겠다. 전주의 먹거리가 진짜 많으니 놓치지 말고 다 먹고 오길 바란다.”


 이렇게 우승 뒤풀이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서둘러 터미널로 이동해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열정적이다 못해 열광적인 서포팅을 한 그녀는 정신없이 잠들어 버렸다. 


서울 터미널에 도착한 그녀는 한마디를 남긴 채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였다.


“ 2013년 10월 19일, 전 세계 축구팬들중에 가장 행복했던 팬들은 포항 팬들이 아니었을까요 라는 포항 페이스북 관리자의 말이 떠오른다. 맞다. 나는 포항 스틸러스 팬이라서 행복하다.”


 축구 경기 덕분에 전주라는 곳을 새롭게 체험해 본 그녀. 축구가 아니었으면 그녀의 전주 여행은 언제쯤 이뤄졌을지.


스포츠 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봤을 스포츠 관광. 해외도 좋지만, 국내에도 스포츠 관광을 즐길만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다. 루트가 없어서 못 간다고? 직접 루트를 개척하고 만들어 보아라. 누구나 국내 스포츠 관광 루트의 콜럼버스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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