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배정호 (스포츠둥지 기자)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울퉁불통한 근육과 긴 머리. 그리고 7부 진한 청바지 위에 브이넥 티셔츠. 어찌 보면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일 수도 있다. ‘락’ 음악을 즐길 것 같은 외모를 풍기는 한 사람. 하지만 매일 같이 새벽4시에 일어나, 교회에 가서 하루를 시작한다.
이제는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팀닥터로 그라운드에서 만날 수는 없지만, 은퇴 후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더 많은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사람. 94년부터 축구대표팀 수석트레이너로 일해 왔던 최주영 스포츠재활연구소 소장을 만나봤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그의 친화력은 팀 닥터 시절부터 너무나 유명했다. 현재까지 그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친절한 안내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기성용과 구자철, 그리고 김보경의 유니폼이 걸려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보던 아이들이야. 정말로 순수한 친구들이지. 내가 너무 편하게 대해서 그런가? 다들 나보고 삼촌이라고 부르면서 다녔어”
2주전 에는 기성용이 갑자기 허벅지 쪽이 아프다며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최주영 소장은 그동안 SNS이슈 등으로 많이 힘들어 했을 기성용을 격려차 영국에 다녀왔다..
“이적이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호텔에서 살고 있더라고. 많이 반성하고 있었고 특히 결혼이 큰 힘이 되는 것 같아. 다음 주에 이사 간다고 하는데. 얼른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어”
축구 국가 대표팀 팀 닥터로 지내면서 항상 보이지 않게 선수의 신체능력 관리와 함께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힘이 되어주었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 자신이 오랫동안 수많은 감독이 바뀔지라도 대표팀 닥터로 지낼 수 있었던 요인이라고 말했다. 정확히 트레이너가 갖추어야 할 필수 요소이다.
‘신뢰’ 라는 단어도 그의 인생에서는 빼 놓을 수 없었다. 많이 알려져 있듯이, 이영표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직전 부상을 당했다. 처음에 이 사실을 최주영 트레이너는 모르고 있었다. 당시 히딩크 감독이 최주영 트레이너에게 알리지 않고, 비밀리 외국 트레이너를 고용해 치료를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기분이 나빴어. 당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감독 방으로 찾아가려 했는데. 히딩크 감독이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더라고. 그래서 화가 좀 풀렸어.”
최주영 트레이너는 그 자리에서 히딩크 감독에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이 필요한 선수인 만큼 내가 모든 방법을 써서, 회복 시켜 놓겠다. 그리고 수많은 검사 끝에 초기 진단이 잘못 된 것을 발견했고 결국 이영표가 최고의 활약을 펼치도록 만들었다.
‘경험’ 이라는 단어도 그에게는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경쟁력이었다. 김태영이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코뼈가 부러졌다. 전반이 끝난 후 김태영이 최주영 트레이너에게 거울을 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 저, 코를 만져봤는데. 부러진것 같은데요.” 최주영 트레이너는 알고 있었다. 김태영의 코뼈가 부러진 것을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태영아 너 코 안 뿌러 졌어. 경기 끝나고 치료하면 되. 내가 책임질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뛰어”
너무나 경기가 팽팽했기 때문에 선수를 바꾸는 것은 모험이었다. 경험상 2시간 정도는 더 버틸 수 있겠다 생각하여 김태영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경기의 승리 후 바로 앰블런스를 태워서 보낸 최주영 트레이너.
만약 김태영이 없었다면 한국의 4강도 물거품이 됐을 것이다. “4강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지체 할 수가 없었다. 과거에 마스크를 쓰고 경기를 뛴 선수 자료를 다시 찾아보고 일본에서 급히 마스크를 구해 와서 김태영 에게 전해 줬다. 지금와서 돌이켜 보면 태영이는 나에게 고마워 해야 해. 나 때문에 더 인기가 높아졌잖아”
이렇게 너무나 앞만 보고 달려온 나머지. 가족들에게는 항상 소홀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강인한 아버지의 모습을 가족들은 뿌듯해 한다고 한다. 두 아들 중 둘째 아이가 현재 트레이너 길을 들어서려 한다고 말했다.
“트레이너의 삶은 사람을 다루는 일인 만큼 실력 경험 그리고 ‘사랑’ 모든 게 다 있어야 하는데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모든 부모의 마음은 같은 것 같아.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지”
“너무나 국가대표에 오랫동안 있어서 남아공 월드컵 이후 대표팀 트레이너 직에서 은퇴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선택을 잘 한것 같아. 이제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과, 능력을 부상으로 힘들어 하는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전해주고 싶거든”
은퇴 후 최주영 트레이너는 재활클리닉을 운영하며 재활 선수들과 매일 같이 하루를 보내고 있다. 명지대에서도 후진 양성을 위해 강의를 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살이 안찌고 근육질을 유지하는 이유는 바로 열정적으로 매일 같이 숨을 쉬며 살기 때문이야. 항상 기도하고 웃으며 재활치료를 하다 보니 선수들과 달리기도 같이하고 살이 찔 수가 없어.”
겉 모습은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였던 최주영 소장. 하지만 내면은 실력, 경험 그리고 정말로 선수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남자였다. 앞으로도 더욱더 많은 아마추어 선수들을 위해 항상 건강하게 더 많은 부상 선수들을 위해 행복한 삶을 이어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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