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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2013 Tour de Korea와 함께했던 팀 통역 생활 백서

 

 

글 / 이부영 (스포츠둥지 기자)

 

             투르드코리아(Tour de Korea) ‘팀 통역’은 ‘님도보고 뽕도따는’ 기회였다. 전국 여행을 하면서 외국 선수들을 위해 통역을 했기 때문이다. 대회 시작 하루 전, 영국의 라파콘도르JLT팀을 만나는 날. 처음 본 사람들과 잘 친해지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쉽게 범접할 수 없는 포스가 느껴졌다. 라파콘도르팀과 함께 할 10일간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라파콘도르는 6명의 선수와 2명의 마사지사, 자전거 정비사, 코치등 총 10명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 모두 로드사이클 전문가들이다. 라파콘도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의 컨디션이다. 팀 통역은 주로 팀 버스로 마사지사들과 함께 레이스 중간 보급지점에서 보급을 도와준다. 보급이 끝나면 결승점에 돌아가 선수들과 레이스 내내 선수들 뒤를 따르며 코칭했던 감독차를 기다렸다가 숙소까지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한다.

 

경기는 매일 10시에 시작되는데 경기 시작 한 시간 전 출발지점에 도착해 선수들은 몸을 풀고(라파콘도르팀은 따로 몸을 잘 풀지 않았다. 주로 앉아서 선크림도 바르고 긴장을 푸는 대화들을 즐겨했다), 마사지사들은 레이스 중 사용할 물, 도시락, 얼음을 배급받는다. 경기시작 30분 전 선수들은 싸인보드에 서명을 하는 세레모니를 갖고 준비가 거의 완료되는 시작 15분 전, 마사지사들과 팀가이드를 태운 팀버스는 먼저 보급지점으로 출발한다.


 평균 하루 4시간 이상씩 달리는 선수들을 위해 마사지사들은 선수들이 보급지점에서 먹을 간식들과 경기 후 영양보충을 할 음식을 준비한다. 우리팀 마사지사들은 다른팀에 비해 더욱 간식에 신경을 많이 써 다른팀에 비해 마트를 자주 갔었다. 처음 마트에 간 날 다른팀들은 빵, 과일, 시리얼등을 사느라 바쁜데 우리팀이 찾는건 다른게 아니라 ‘쿠쿠밥통’이었다.  차라리 햇반을 사자는 제안을 했지만 그들의 선택은 밥통! 작년 대회 때 ‘쿠쿠밥통’을 샀었는데 기능도 너무 좋고 선수들 영양보충에 밥만큼 좋은게 없었다며, 대회 내내 흔들리는 버스안에서 우린 밥에 간장, 참치를 넣고 비벼 만든 ‘간장밥’을 준비했다. 예상대로 선수들은 기가막히게 잘 먹었다. 경기 도중엔 에너지바, 초컬릿 등 단 간식만 먹었으니 짭쪼름하고 담백한 간장밥이 그들에겐 꽤 괜찮은 영양보충식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다가가기 힘들었던 팀 식구들과 밥도 같이 만들고 사이클에 ‘사’자도 모르던 내가 경기에 관심을 갖게 되며 선수들의 경기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점점 라파콘도르팀과 친해지게 되었다. 가끔 날씨가 안 좋은날엔 결승점에 선수들이 흙범벅이 되어 돌아온다. 그 모습이 얼마나 대견하고 멋지던지.

 

 역시 스포츠는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 이부영

 

만약 우리팀에서 일등으로 들어온 선수 혹은 전날 레이스에 비해 월등하게 기록이 상승하지 않는 한 도핑 받을 확률이 낮기 때문에 별 일 없는 한 바로 숙소로 돌아가게 된다. ‘원 앤 굳 레스트(‘won and good rest’ 이기고 잘 쉬자)’! 이겼든 졌든 일단 경기가 끝났으면 숙소로 들어가 선수들은 마사지를 받으며 절대 안정을 취한다. 매 레이스마다 지역이 바뀌기 때문에 그 지역 명소, 맛집을 관광할 법도 한 데, 절대 관광이란 없다. 매 레이스가 끝나갈 무렵 팀 모두 경기도중 피곤했을텐데 경기가 끝나고 나서부터는 마사지사들과 정비공의 본격적인 임무가 시작된다. 마사지사들은 선수들의 노곤했던 몸을 풀어주고, 정비공들은 경기내내 선수들과 함께 했던 자전거를 정비한다.

 

모래알만한 크기의 자갈도 다 잡아 빼내는 James!! (좌),  라파콘도르팀과 함께(우) Ⓒ 이부영

 

마사지와 자전거수리가 끝나면 석식시간이 돌아온다. 모든 팀들이 한 장소에 테이블별로 나눠 앉아 저녁을 한다. 저녁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며 오늘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며 웃고 떠들며 긴장을 풀기도 한다. 하루는 선수들에게 궁금한 점이 생겼다. 4시간 이상씩 레이스를 할 때 용변은 어떻게 해결하냐는 질문에, 선수들은 그냥 길에서 용변을 볼 수 밖에 없다는 충격적인 답변을 해줬다. 혼자 용변을 해결하기 어려워 뒤에서 등을 한 대 툭 쳐주면 그 힘에 시원하게 볼 일을 본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스스럼없이 해준다.

 

매 코스가 너무아름다운 절경인데, 혹시 구경은 하냐는 질문에 그들은 솔직히 직선구간(스프린트)에서는 여유가 없지만 굽이진 구간에서는 여유가 있어 한국의 아름다운 절경을 감상하며 경기에 임한다고 한다. 하지만 절대 경기기술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7시반쯤, 전략회의를 통해 선수들의 부족했던 점을 지적하며 내일의 레이스를 준비한다. 물론 본 경기때는 감독차(팀카)에 자리가 없어 경기를 가까이서 볼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선수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한번만 봤으면 좋겠다는 나의 간절함이 감독에게 전해졌는지 TTT(Time trial test. 단체구간독주;특별경주)때 팀카를 탈 수 있도록 허락이 떨어졌다.

 

자전거 정비를 맡고있는 제임스(James)는 레이스 중 자전거 타이어의 문제가 생기면 단 20초 내외로 교체 한 후 선수들이 레이스 페이스를 되찾아 경기를 할 수 있게 돕는다고 한다. 타이어 교체시간은 단 20초 내외. 영화배우로 착각할 정도로 잘생긴 라파콘도르팀의 코치 탐(Tom)은 시작과 함께 평소때와 다른 매서운 눈빛으로 변한다. 레이스 중 좀처럼 선수들이 힘을 내지 못할 땐 쓴 소리도 서슴지 않게 내 뱉었지만, 오르막길처럼 힘든 코스에서 선수들이 포기하고 싶어질 때는 목청껏 힘내라고 응원해주던 진정한 멋진 코치. 고단했던 레이스를 끝내고 돌아온 선수들에게 다가가 “오늘 잘했다고, 우리팀이 최고였다”며 자신감을 힘껏 불어넣어줘 선수들의 사기진작을 충족시킬 줄 알았다.

 

 선수들의 자전거를 세세하게 정비해줬던 제임스와 선수들의 피로를 풀어줬던 팀(Tim)과 롭(Rob)덕분이었는지 평균 6위쯤 하던 우리팀이 5일째가 넘어가는 레이스부터 껑충 상위권으로 뛰어들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결국엔 영국의 라파콘도르팀이 프로컨티넨탈팀들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거머쥐었다. 선수들의 땀, 경기에 대한 부담감과 좌절감, 성취감을 함께 느꼈기에 그들의 1위는 곧 나의 1위기도 했다.

 

우리팀 의젓한 귀염둥이 마이크가 시상대에 올라가 개인 종합우승을 나타내는 옐로우저지를 입었을 때 여전히 식지 않은 그들의 땀 만큼이나 뜨거운 눈물이 내 눈에서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대회 종료 후 다음날 떠날 영국 라파콘도르 팀을 위해 한국팬들이 2013 콘도르 바비큐 파티를 준비했다. 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팀과 함께 숙소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마이크는 대회가 끝나고 난 후의 허전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물론 레이스 뿐만 아니라 경기 후 쏟아지는 인터뷰 세례, 도핑 등 피곤한 점들이 많았지만 정신없는 일상에서 내일이면 다시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서글프다고 털어놨다. 그들이 떠난 후 페이스북 등을 통해 연락을 주고 받았다. 여전히 다음 대회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다는 라파콘도르팀.

 

 

경기가 시작되면 마음으로 선수들과 함께 달렸던

2013 투르드코리아 팀 통역 식구들, 대교CSA, KSPO식구들과 함께. Ⓒ이부영

 

 

팀 통역. 단순한 통역이 아닌 레이스를 위해 팀과 함께 달리고, 응원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때로는 쳐진 분위기를 웃음바다로 만들 수 있는 나는 라파콘도르 팀의 7번째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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