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최선경 (스포츠둥지 기자)
경주마도핑검사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알싸한 화학 약품의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흰 가운을 입은 도핑검사원들이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수많은 도핑검사 기구와 주사바늘... 도핑검사소의 첫 인상은 사실 좀 두려웠다.
“도핑검사소는 굉장히 차분하면서 엄숙한 분위기네요”라고 질문에 한 도핑검사원은 “아무래도 경마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선 이렇게 엄숙할 수밖에 없어요”라는 대답을 했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경주마 도핑검사소는 이처럼 스포츠의 기본정신인 공정성과 투명성을 지키기 위해 단 한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는 자세였다. 과천경마장 내 도핑검사소에서 경주마들의 도핑검사를 담당하고 있는 유준동 차장과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과천경마장 내의 도핑검사소의 모습 ⓒ최선경
도핑검사소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도핑검사소는 공정한 경마시행, 기수와 말의 안전, 그리고 혈통의 순수성을 보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경마에 있어서 도핑검사와 역할은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고속도로 과속감시 카메라와 같습니다. 중간에 길목을 지키고 있음으로 해서 위반을 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말이죠. 부정한 약물사용으로부터 경마의 공정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또 경주마의 망아지가 태어나면 혈통서에 등재하기 전에 친자관계가 맞는지에 관한 유전자 검사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도핑검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합니다.
경마가 실시되는 날에는 경주 전 검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보통 때보다 1시간 정도 일찍 업무가 시작됩니다. 각 경마가 시작되기 3시간 전에는 시료가 도핑검사소에 도착을 합니다. 그럼 먼저 시료를 받아서 봉인상태와 인수인계내역을 확인하고 그 다음 검사에 들어가게 됩니다. 각 시료들은 원심분리, PH조정, 추출, 농축 및 재희석 과정과 같은 과정들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분석 장비로 검사가 됩니다. 1차 검사에서 양성이 의심되는 시료는 2차로 확인검사를 해 2번에 걸쳐 확실히 양성으로 확인 된 시료에 대해서만 양성 판정을 내리게 됩니다. 검사결과는 경주 30분 전에 통보를 하게 되고요. 1경주 시료는 8시, 2경주 시료는 8시 30분…. 이런 식으로 순차적으로 시료들이 도착합니다. 오후에 경주 전 검사가 다 끝나게 되면 기기를 점검하고 다음날 검사를 준비하죠. 마지막 경주가 끝나고 30분이 지나면 경주 후 검사 시료가 도착합니다. 그럼 이 시료들을 받아서 봉인상태와 인수인계 내역을 확인 한 후 그 다음날 검사를 위해 분주와 배양 작업까지 해놓으면 하루가 끝납니다. 경주 후 검사시료는 여러 날에 걸쳐 여유 있게 자세히 검사를 한 다음 그 다음 주 금요일에 결과를 통보합니다.
철문 안에는 시료검사를 위한 경주마의 소변을 받기위해 마사회직원이 말과 함께 들어가 있다. ⓒ최선경
도핑검사를 실시하는 경주마의 기준이 있나요?
네, 검사의 종류에 따라 다릅니다. 경주 전에 실시하는 경주 전 검사는 모든 말에 대해서 실시하고요. 경주 후에 실시하는 검사는 1위, 2위, 3위를 한 말과 그리고 심판위원이 보기에 의심이 간다고 특별히 지정하는 말에 대해서만 검사를 실시합니다.
사람 도핑검사와 경주마 도핑검사의 차이점이 있나요?
대부분은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만 사람 소변보다 말의 소변이 좀 더 탁하고 불순물이 많기 때문에 시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차이가 나는 점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말에게는 진통소염제와 같은 약물이 허용되지 않고 검사에 포함된다는 점이 다릅니다. 사람의 경우에는 ‘부상투혼’이라는 말을 종종 들어보셨을 텐데요. 하지만 경주마에게는 이 말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경주마는 자신이 선수인 동시에 F1레이스의 자동차처럼 기수가 타는 도구이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결국엔 기수와 말의 안전을 위해서 부상이 있는 말이 진통소염제를 투여 받고 경주에 출전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인터뷰에 응해준 유준동 차장이 도핑검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선경
도핑검사를 하면서 생긴 에피소드가 혹시 있으신가요?
어떤 약물에 대해 도핑검사를 하기 위해선 그 약물 자체를 우리 도핑검사소에서 소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외국에서 ‘약물 표준품’ 이라고 하는 약물을 구입하곤 했는데요. 제가 관세관련 법 규정을 잘 모르다 보니 수입신고가 안되었다고 일명 ‘밀수죄’로 관세청에서 한참 조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그 표준품을 저에게 보내준 외국정부기관에서 소명서를 보내주셔서 무혐의로 판정이 났는데요. 이때를 교훈으로 삼아서 외국에서 표준품을 사올 때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도핑검사소가 생기기 전에는 어떻게 경주마들의 도핑검사를 실시했나요?
도핑검사소가 생기기 전에는 아예 도핑검사를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경주마 도핑검사가 시작된 것은 1976년부터이고요. 현재의 도핑검사소는 30여 년 전인 1976년 마필보건소의 작은 부서로 시작되었습니다. 공정한 경마를 위해 도핑검사소의 역할이 점차 중요해 지면서 조금씩 인원과 시설이 확충되다가 10여년 즈음에 도핑검사소로 따로 분리가 되었습니다.
도핑검사를 통해 적발된 사례가 있나요?
점차 감소해서 최근 몇 년은 도핑검사 양성 사례가 거의 없지만 예전에는 한 해에 몇 차례 적발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도핑검사에서 양성으로 적발되면 해당 관계자는 한국마사회법에 의해 징역이나 벌금 같은 형사 처분을 받게 됩니다. 대부분은 고의적으로 약물을 사용했다기보다는 치료약물이나 카페인과 같은 약물이 실수로 투여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정상이 참작되어 형사처벌보다는 가벼운 처벌을 받습니다.
시료검사를 받은 후 마방에서 대기 중인 경주마들 ⓒ최선경
도핑검사소에 입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KRA 신입사원 정기 공개채용에서 합격을 하시면 됩니다. 화학이나 생물학, 또는 약학을 전공하고 상식과 영어 시험에서 어느 정도 점수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면접에서 본인이 가진 전공지식과 포부를 명확하게 말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있어야겠지요. 하지만 도핑검사를 하는 자체가 상당히 희소성이 높은 직업이기 때문에 채용이 자주 있다고 말씀 드리기 어렵습니다.
도핑검사소에서 검사원으로 일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연구한 결과를 가지고 국제회의에 나가 발표를 하고 제가 높게 평가하는 외국의 동료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을 때가 가장 뿌듯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마를 사랑해주시는 경마 팬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세계적으로 경마를 시행하는 나라가 120개국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양한 나라에서 그 나라의 역사와 전통 속에 형성된 경마는 다양한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데요. 그 중에서 우리나라는 공정한 경마를 시행하기 위해 약물투여행위를 막는 것만큼은 세계에서 으뜸으로 노력하고 있고 도핑행위가 없는 깨끗한 경마를 시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과학과 추리의 스포츠인 경마, 이번 주말에 경마장을 놀러 오셔서 그 재미를 꼭 느껴보세요!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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