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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도로 사이클 경기의 참을 수 없는 유혹

 

 

글 / 이찬희 (스포츠둥지 기자)

 

           지난 6월 9일부터 6월 16일까지 투르 드 코리아가 열렸다. 총 8일 간 천안에서 무주, 충주, 평창 등을 거쳐 하남까지 약 1,123km를 달리는 이번 대회에서는 영국의 Cuming 선수(MTN‐QHUBEKA)가 홍콩의 Kinglok 선수(TEAM HONG KONG CHINA)를 단 9초차로 제치고 개인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의 두 배에 가까운 거리를 달리는 ‘Tour de Korea’와 같은 도로 자전거 경기는 최근 부쩍 늘어난 자전거 동호인과 자전거 도로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자전거는 직접 타는 게 재밌지 보는 게 무슨 재미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지만 도로 사이클 경기는 100년이 넘게 유럽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스포츠이다.


자전거 대회의 시대적 발전사와 주요 대회, 약물복용 문제 등을 살펴본다.

 

자전거 대회의 등장

페달이 달린 현대적인 자전거가 처음 등장한 1867년 이후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1869년 최초의 페달형 자전거를 만든 미쇼 사()의 후원으로 세계 최초의 자전거 대회가 파리에서 열렸다. 1,200m를 경주하는 이 대회의 우승자는 영국의 제임스 무어였다.

 

파리-루앙 경주에서 우승한 제임스 무어(우) ⒸWikipedia

 

 

 얼마 지나지 않아 파리에서 루앙까지 123km를 달리는 최초의 도로 자전거 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열악한 도로와 불편한 초기 자전거 때문에 백여 명의 참가자 중 3분의 2가 도중에 기권하였다, 이 대회의 우승자 또한 최초의 자전거 대회와 같은 제임스 무어였다.


  한편 파리-루앙 대회는 프랑스의 스포츠 신문 <르 벨로시페드 일뤼스트레(Le Vélocipède Illustré)>에 의해 개최되었는데 대회의 성공으로 많은 스포츠 신문들이 앞다투어 자전거대회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르 벨로시페드 일뤼스트레의 로고

 

 

 1879년 자전거에 체인이 달려 앞바퀴를 크게 만들 필요가 없어지고, 1888년 공기타이어가 발명되자 자전거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많은 신문사들이 자전거 대회 개최에 뛰어들었는데 현재까지도 열리고 있는 파리-루베 대회, 투르 드 프랑스, 밀란-산레모, 지로 디탈리아 등의 유명한 사이클 대회가 1890년대, 1900년대에 걸쳐 개최되었다.

 

투르 드 프랑스 (Tour de France)

 

투르 드 프랑스의 로고

 

 

그랑 투르 대회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유명한 대회로 알려진 투르 드 프랑스는 1903년 첫 대회를 개최한 이후 11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03년 19일 동안 파리에서 출발해서 프랑스 전역을 돌아 2,428km를 달려 파리로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한 투르 드 프랑스는 대회를 주최한 신문사 <로토 벨로(L’Auto Velo)>에게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1910년 투르 드 프랑스에는 피레네 산맥을 타는 스테이지들이 포함되었다. 이전까지 해발 1,700m가 넘는 산들을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당시 선수들은 대부분 피레네 산맥에서 기권하였다.


  산악 경기의 마지막 봉우리인 해발 1,709m의 오비스크 산 정상에 가장 먼저 도착한 옥타브 라피즈는 정상에서 기다리고 있던 대회 관계자에게 “당신들은 살인자야, 당신들 모두! 제정신으로 사람들에게 이런 일을 시킬 수는 없어. (You’re assassins, all of you! You can’t ask such things of mere mortals.)”라며 분노를 드러낼 정도였다.

 

오비스크 산 정상에 도착한 옥타브 라피즈 ⒸPresse Sports

 

 

  1차 대전이 끝난 후 다시 개최된 투르 드 프랑스는 대회의 선두 주자에게 노란색 상의 인 ‘옐로 저지’를 입게 한다. 지금은 투르 드 프랑스의 상징이 된 노랑색 상의는 매 스테이지 마다 나누어서 시간을 재는 스테이지 레이스에서 누가 현재 종합 선두를 달리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게 해준 혁명적인 생각이었다.


  마치 종합 우승 트로피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 노란색 상의 이외에도 투르 드 프랑스에서는 산악 코스에서 가장 좋은 기록을 가진 선수에게 빨간색 물방울무늬 상의를, 평지구간에서 가장 많은 포인트를 얻은 선수에게는 녹색 상의를, 25세 이하의 어린 선수들 중 가장 뛰어난 기록을 가진 선수에게는 흰색 상의를 입게 하고 있다.

 

 

2012년 투르 드 프랑스에서 각 상의를 차지한 선수들 Ⓒ A.S.O

 

 

그 후에도 7월의 프랑스의 강렬한 태양을 이기지 못하고 일사병으로 목숨을 잃은 톰 심슨, 50초의 격차를 마지막 타임 트라이얼에서 따라잡은 르몽드, 내리막길에서 넘어져 목숨을 잃은 파비오 카사텔리와 같은 숱한 이야기거리를 남긴 투르 드 프랑스는 매년 7월 3주 동안 35억 명이 넘는 전 세계 시청자와 천 이백만 명이 넘는 관중을 끌어모으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스포츠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지로 디탈리아 (Giro d’Italia)

 

지로 이탈리아의 로고

 

 

  우승자를 기리는 분홍빛 상의로 널리 알려진 지로 디탈리아는 1909년 투르 드 프랑스의 성공을 보고 영감을 얻은 이탈리아의 스포츠 신문사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La Gazzetta dello Sport)>에서 개최하기 시작했다. 여덟 개 구간에 걸쳐 2,448km를 달리는 것으로 시작한 지로디탈리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투르에 이은 세계 최고의 대회 중 하나가 되었다.


지로디탈리아는 이탈리아인의 뜨거운 열정이 잘 배어난 로드 사이클 대회이다. 지로디탈리아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열정적인 팬들인 티포시(Tifosi)들은 지로의 출전하는 선수들의 등을 떠밀어 줄 정도로 적극적으로 알려져 있다.

 

티포시는 선수들 바로 옆에서 열정적인 응원을 보낸다. Ⓒ Bettini Photo

 

 

지로 디탈리아는 이탈리아인의 성질이 묻어나 투르와는 다르게 열정적이고 특이한 선수들이 종종 등장하곤 한다. 특히 이탈리아의 두 사이클 영웅 코피와 바탈리는 이런 열정을 라이벌 관계로 풀어낸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코피가 무명이었을 시절 바탈리는 코피를 자신의 팀 동료로 데려왔는데 두 사람은 이후 10여 년 동안 로드 사이클의 왕좌 자리를 두고 싸우며, 서로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을 정도까지 서로를 라이벌시했다.


  ‘사자왕’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던 치폴리니는 근육이 그려진 옷과 호랑이 무늬의 옷을 입는 등 언제나 화제를 불러 모으는 또 다른 지로의 슈퍼스타였다.

특이한 복장을 입고 지로에 출전한 치폴리니 ⒸTim de Waele/TDW Sport

 

 

부엘타 아 에스파냐 (Vuelta a España)

 

부엘타 아 에스파냐의 로고

 

 

그랑 투르 3개의 대회 중 가장 마지막으로 시작하였으며 가장 마지막으로 열리기도 하는 부엘타 아 에스파냐는 앞의 두 대회의 성공을 모방한 대회로 1935년 시작되었다.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총통의 독재 시대를 거치며 전쟁과 가난의 시대를 버텨낸 부엘타는 스페인의 산맥과 고원들을 바탕으로 그랑 투르의 당당한 세 번째 대회로 자리 잡았고, 수많은 선수들이 부엘타의 황금색 상의를 얻기 위해 매년 시에라 네바다 산맥과 메세타 고원의 험준한 코스를 달리고 있다.

 

 

랜스 암스트롱의 약물
  암을 극복하고 투르 드 프랑스 7연패를 달성했던 것으로 유명했던 랜스 암스트롱은 2012년 상습적인 불법 도핑이 확인됨으로써 1998년 이후 모든 우승 기록이 말소되고 사이클 역사에서 가장 빛났던 그의 전성기는 암흑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랜스 암스트롱은 기록을 위해 자신만이 도핑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팀 동료들에게도 약물을 강요하고 약물의 유통 및 배포에도 관여한 것으로 밝혀져 더욱 큰 충격을 불러왔고, 목격자와 증인에 대한 협박과 의혹에 대해 위증으로 일관한 점은 모든 사이클 선수들의 우상이었던 랜스 암스트롱을 사이클계에서 영구 제명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랜스 암스트롱의 투르 7연패는 투르의 치욕으로 남게 되었다

 

 

인간한계를 초월하는 스포츠: 사이클
  사이클에서의 약물 복용은 암스트롱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탈리아의 사이클 영웅 파우스트 코피는 상습적으로 암페타민을 복용했다고 시인하였으며, 지로의 영원한 산악왕이라 불렸던 마르코 판타니는 1999년 지로에서 금지 약물인 EPO 복용 혐의를 받아 중도 사퇴하기도 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야 하는 사이클의 특성은 많은 선수들을 도핑의 유혹에 빠뜨렸다.

 

 

일각에서는 20일이 넘는 기간 동안 수천 킬로미터를 달려야 하는 로드 사이클 대회의 험난함 때문에 약물 복용은 끊이지 않는 문제가 될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수많은 사이클리스트들이 약물의 도움 없이 그랑 투르에 도전하고 있다. 이런 사이클리스트들이 존재하는 한 그랑투르는 앞으로도 영원히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 이벤트로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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