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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한국형 육상 시스템을 도입하자.

 

 

 

글/ 이병진 (한양대학교)

 

 

           지난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대구에서 개최한 이후, 우리나라 육상계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지금도 수많은 실업팀들이 해체수순을 밝고 있으며, 이로 인해 선수들은 아무런 은퇴준비 없이 팀에서 방출되고 있다. 물론 필자의 선배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은 분명 우리나라 육상종목을 대표하는 선수였고, 지금도 뛰어난 능력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무직인 상태로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하여본다. 과연 ‘우리나라 육상대표선수들이 자국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국민들에게 실망스런 결과를 보이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한국 육상계가 어려운 상황을 경험하였을까?’ 무엇보다 분명한 점은 제2의 김연아와 박태환이 육상종목에서 배출되지 않는다면 지금의 현실과 크게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보다 나은 한국육상의 미래를 만들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한국형 육상시스템모델을 제안하고자 한다. 


엘리트 체육의 산실인 학교 운동부를 개편하라.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에 등록된 육상종목 수는 남자 24개, 여자 23개 총 47개 종목으로 대다수의 종목들이 경기장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일부 종목은 Road에서 진행되고 있음). 육상종목은 크게 Track, Field로 구분되는데 Field 종목은 다시 도약과 투척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종목특성을 가진 육상은 저마다 훈련법이 틀리며, 이로 인해 해당 종목에 대한 지도자의 전문성이 특히 요구된다.


하지만 국내 육상선수양성시스템을 살펴보면, 이러한 전문성을 강화하기 보다는 주어진 예산범위 내에서 한명의 학교운동부지도자에게 모든 종목들을 전담하게 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학교운동부 지도자들은 학생선수의 개인적 특성을 고려하기 보다는 자신이 지도하기 편한 특정 종목에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모습들을 나타내고 있다. 단적인 예로 S지역의 경우, 단거리와 장거리 종목을 지도하는 학교 수가 각각 6개, 4개로 집계되고 있다. 이는 해당 지역에서 육상종목을 특성화학교로 지정하고 있는 중학교 팀이 고작 12개 팀임을 감안한다면, 상당한 쏠림현상을 보이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도약과 투척은 해당 지역 체육고등학교만이 지도하고 있으며, 중거리 종목은 별도로 지도하는 학교가 없음).


그리하여 필자는 이러한 문제점을 토대로 독일의 ‘엘리트 슐레’정책을 모티브로 삼아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우선 지역별로 종목에 따른 육상지도자들을 고용하고, 이들을 통해 학생선수들을 지도하도록 한다. 여기서 학생선수들은 개별적으로 자신의 집 근방에 있는 학교에 다니며, 운동시간에만 예정된 훈련시설에 나와 정해진 훈련시간을 소화하면 된다. 그리고 지도자는 이러한 학생선수들을 자신이 담당하는 종목에 따라 지도하면 된다. 이는 그간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학교운동부지도자들에 대한 처우개선에도 상당한 일조(교육청이 아닌 시․도체육회에서 고용)를 할 것이라 사료되며, 이로 인해 해당 종목에 대한 전문성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사실 육상종목 학생선수 육성모델은 이미 오래전부터 경기 성남지역과 광주지역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경기 성남지역의 경우, 학교운동부지도자들의 소속이 초․중․고 학교단위별로 분류되어 있으나 지도자의 전문성에 따라 학생선수들을 관내 공설운동장에서 합동으로 지도하고 있다. 물론 이들에게 성적에 대한 초조함이나 고용불안은 찾아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모두가 함께 학생선수를 지도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설운동장 내에 있는 사무실에서 학생선수들의 훈련스케줄을 공동으로 계획하고 저마다 주어진 역할에 따라 학생선수를 지도한다. 한편 광주지역의 경우, 초-중-고-대학-실업팀이 연계하여 육상종목 학생선수들을 발굴․지도하고 있다. 이러한 결실은 과거 장재근, 김재다라는 육상 단거리 스타를 탄생시켰으며,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육상종목 강자 지역으로 손꼽히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육상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관내에 전문성 있는 지도자들을 고용하고, 중복된 지도자(종목에 따른)들은 과감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육상역사상 최초로 3관왕을 한 임춘애 선수. 그는 성남지역에서 선수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종목과 맡는 지도자에게 지도를 받았으며, 이러한 결실은 그가 고등학교 재학에 빛을 발하였다. 

 

 

개인으로 고용된 코치제로 개편하자.

김연아 선수이후, 개인으로 고용된 코치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수영의 박태환 선수와 골프의 신지애 선수를 통해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학교운동부가 전적으로 학생선수를 길러내고 있는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국가대표팀이 아니고서야 이러한 시스템을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오랜기간 육상선수로 활동하였던 필자의 견해로는 반드시 학교운동부가 아닌 개인코치제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능이 뛰어난 선수는 이러한 능력을 발굴해줄 수 있는 운동지도자를 만나야 한다. 단적인 예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류시앙이나 이신바예바의 경우, 대표팀 코치가 아닌 자신의 개인코치에게 지도를 받았다. 특히, 류시앙을 지도한 순하이펑 코치는 아무리 외국인 코치가 고용되어도 류시앙이 은퇴하는 순간까지 함께 하였으며, 15살부터 이신바예바를 지도한 트로피모프 코치도 변함없이 그를 지도하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지도의 연속성이 생겨나 학생선수에게 기술의 숙련도 및 완성도를 기대할 수 있다.

 

 

 

오랜기간 류사앙과 동거동락하였던 순하이펑 코치. 그는 류시앙 선수와 올림픽 금메달, 110mH 세계신기록을 달성하는 등 아시아인들도 육상 단거리 종목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실제 우리나라 110mH 선수인 박태경 선수, 이정준 선수도 그에게 기술을 전수받은 바 있다. 

 

 

 일부 학계에서는 스포츠강국에서 스포츠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초종목(육상, 수영, 체조)에서 성적이 나와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체조를 제외하고 육상, 수영종목은 아직 세계와 격차가 많이 벌어져 있다. 물론 수영은 박태환이라는 우리나라 수영계의 전무후무한 스포츠스타가 존재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국내 수영선수들의 수준은 아시아 내에서도 정상급이라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다른 기초종목과 달리 육상종목은 이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봉착해 있다. 어느 누구하나 자신의 자녀를 육상선수로 키우려 하는 이가 없으며, 지도자 및 선수들의 능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그래도 그나마 아시아권 내에서 정상을 지켜왔던 중거리 종목(800m, 1500m)은 이진일 선수 이후 금메달 맥이 끊긴 상태이고, 마라톤 종목은 이봉주 선수 이후 스타선수가 탄생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고자 한다. 우선 이전까지 지속되었던 학교운동부 시스템으로는 더 이상 재능이 있는 어린 육상 꿈나무들이 발굴․육성되기 어렵다. 장기적으로 저마다 해당 종목에 전문성(실업팀 출신, 학부 이상자)이 있는 지도자들이 현장에 배치되어야 적어도 아시아권 내에서 가능성 있는 선수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하여야 한다.


따라서 지도자 교육은 물론 선수육성시스템에도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국 육상의 미래가 있다는 점을 각 시․도연맹 및 교육당국이 인지하길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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