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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김연아의 “값진 준우승”: 미디어를 통해 바라보다.

 

글/ 김동현

 

 

        최근 들어, 스포츠 뉴스기사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름이 있다. 바로 김연아다. 그 기사들은 지난 2011세계선수권대회 이후 약 20개월만인 그녀의 복귀무대를 주요논조로 다루었으며, 그녀의 복귀무대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연아(22, 고려대)의 실루엣이 안개 속에서 벗어나 점점 대중들의 시야에 들어오고 있다. (.......)피겨 전문가들도 김연아의 복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재 보도되고 있는 외신들은 '올림픽 챔피언'에 등극한 김연아의 복귀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김연아가 은반을 떠난 뒤 여자 싱글에서는 '명품 점프'와 '고난도 기술을 좀처럼 볼 수 없었다. 뛰어난 표현력은 물론 비거리가 뛰어난 트리플+트리플 점프를 구사하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갈증을 느끼고 있다(조영준, 2012.11.28).

 

한편, 이러한 기사들을 보면서 필자는 지난 2011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399일간의 공백을 깨고 그녀가 출전했던 2011세계피겨선수권대회의 경기결과와 관련된 미디어의 전개방식이었다. 그때의 분위기도 지금과 사뭇 다르지 않았다. 미디어의 관심도 지금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스포츠선수들의 경기결과를 다루는 미디어의 전개방식과 당시에 그녀의 경기결과를 다루는 전개방식은 전혀 달랐다. 그렇다면 과연 그녀의 경기와 다른 일반적인 선수들의 경기결과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미디어의 전개방식은 무엇이 어떻게 달랐을까?

 

 

ⓒ 대한체육회

 

 

스포츠와 미디어: 미디어에 의해 재평가되는 스포츠 스타
2011년 4월, 우리는 그토록 기다려왔던 김연아 선수의 복귀 무대를 볼 수 있었다. 화려한 정상으로의 복귀를 염원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녀의 준우승은 선수 개인적 측면뿐만 아니라 국가적 측면에서도 분명 아쉬운 결과였을 것이다. 비록 2010밴쿠버올림픽에서 큰 점수 차이로 우승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린 2010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 선수는 아사다 마오 선수에게 뒤쳐져 준우승에 머물게 되었고, ‘세계최고’의 자리를 일본선수에게 빼앗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는 반일(反日) 감정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맥락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이었을 것이며, 그녀에게도 매번 경기마다 라이벌로 상정되는 아사다 마오 선수에게 빼앗긴 세계최고의 자리기 때문에 이번 대회는 의미 있는 경기였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2011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 선수의 준우승은 더욱이 아쉬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디어가 바라보는 눈은 달랐다. 미디어는 그녀의 준우승을 여느 우승들보다도 값진 것으로 평가하여 보도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우승보다도 더 “값진 준우승”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이는 일반적으로 운동선수들의 활약을 미디어가 다루는 방식과는 사뭇 다른 전개방식이었다. 다음의 보도기사들은 미디어가 선수들을 다루는 전형적인 방식의 예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반 바퀴를 남겨놓고 이정수-성시백-이호석 순으로 한국 선수들이 금·은·동을 싹쓸이하는 분위기였지만, 3위였던 이호석이 인코스로 추월하려다 성시백과 부딪쳤다. 둘 다 넘어지며 펜스와 충돌 하는 사이 4·5위로 들어오던 아폴로 안톤 오노와 J R 셀스키(이상 미국)가 은·동메달을 가져갔다...이호석의 ‘추월’은 팀을 위해 개인을 희생해야 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받았다. 맏형으로서의 자세가 아니었다는 비판, “오노의 메달 도우미가 됐다”는 비난이 국내 네티즌 사이에 들끓었다...특히 이호석은 경기를 마친 뒤 인터넷을 통해 자신에 대한 비난 여론을 파악하고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김은진, 2010.02.16).

 

...김남일은 한국 진영 페널티 지역 안에서 상대 공격수의 종아리를 뒤에서 걷어차는 태클로 경고를 받았다...김남일의 플레이에 실망한 네티즌들은 부인 김보민 아나운서의 미니홈피를 찾아 쓴 소리를 쏟아냈다. 미니홈피를 다녀간 네티즌은 23일 오후 3시까지 40만 여명에 달했고, 그 가운데 4만 여명은 비난 글을 방명록에 남겼다. 일부 네티즌은 ‘16강가서 또 그럴 거면 한국으로 돌아오지 마라’, ‘그런 곳에서 태클이라니… 초등학생도 하지 않는 실수다’는 등 악성 댓글을 달았다. 또 다른 네티즌은 ‘내가 뛰어도 그것보다 낫겠다. 이제 은퇴하라’는 글을 올렸다...(조국현, 2010.06.24).

 

위의 내용과 같이, 이호석 선수의 경우 단지 상위입상을 위한 한 선수의 욕심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용서받지 못할 행동으로써 외국선수(오노)에게 ‘메달 도우미’역할을 했다는 불명예까지 안겨주고 있다. 또한 김남일 선수의 경우에도 단지 수비에 열중하기 위하여 노력한 것이지만 그 결과는 처절했다. 한 번의 실수로 국가대표 축구선수로서의 명성은 처참히 무너졌고, 자신의 아내에게까지 비난이 쏟아지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이 두 가지의 사례는 스포츠 스타에 대한 평가와 그러한 평가결과를 보도하는 미디어에 의해 그 선수가 영웅이 되느냐 아니면 역적이 되느냐가 결정되는 미디어의 전형적인 전개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연아 선수는 어찌하여 “값진 준우승”이라는 수식을 얻을 수 있었을까?

 

 

ⓒ 대한체육회

 

 

김연아의 “값진 준우승”, 그 이유는?
쇼트프로그램이후, 김연아 선수가 1위를 유지하고 있을 때까지, 미디어가 김연아 선수의 경기결과를 다루는 방식은 다른 운동선수들을 다루는 방식과 다를 바가 없었다. 지젤이라는 작품을 통해 피겨선수로서 그녀의 표현력이 가미된 예술성을 부각시키며, 피겨선수로서 그녀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1만3000여 관중 모두가 숨을 죽였다.......빙판 위에는 피겨 선수가 아닌 사랑을 갈망하며 이루지 못한 사랑에 괴로워하는 여인 지젤만이 있었다.......사랑에 빠져 행복해하는 지젤, 신분 차이를 알고 괴로워하는 지젤, 실연의 아픔에 미쳐가는 지젤, 비록 죽었지만 사랑하는 남자를 지켜주는 지젤로 김연아는 다시 태어났다.......지젤의 격정적이면서도 순애보적인 사랑 연기가 끝나자 관중은 13개월 만에 귀환한 ‘피겨 여왕’과 김연아가 분한 ‘지젤’을 향해 기립박수를 보냈다.(김동욱, 2011.04.30).

 

하지만 프리스케이팅 경기 이후의 미디어는 김연아가 두 번의 실수로 인해 준우승을 했다는 사실을 주요 논조로 다루며, 그녀가 준우승에 머물게 된 사유와 시상식에서의 그녀의 눈물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진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미디어가 김연아 선수의 경기‘결과’가 아닌 ‘과정’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돌아온 여왕’ 김연아(21·고려대)의 눈물에 팬들의 가슴도 먹먹해졌다.......강심장으로 소문난 김연아의 눈물의 의미는 중첩돼 있다. 보통 정상에 오르면 선수들은 성취감과 함께 집중력이 떨어진다.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금메달 정점 뒤 김연아는 한동안 ‘의욕 상실증’에 빠졌다...스승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의 결별과 소속사 변경, 법정 소송도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 요인이다...13개월 만의 힘든 복귀 과정, 한국의 국가 브랜드를 염두에 둔 ‘오마주 투 코리아’ 선곡과 팬들의 사랑에 대한 보답 의욕, 프리스케이팅 점프에서 승패를 가를 가산점을 적게 받은 것들에 대한 아쉬움 등이 얽히고설켰을 것이다...한가지 분명한 것은 ‘다음번에는 절대 울지 않았으면 하는’ 팬들의 바람이다(김연기, 2011.05.02).


이와 같이, 김연아 선수의 경기결과에 대한 평가과정은 다른 스포츠 스타들을 평가하는 미디어의 전개방식과는 사뭇 다른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일례로 2008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최초로 수영종목의 금메달을 획득한 박태환 선수가 다음해인 2009년 로마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부진하게 되자 “로마 무관”(김창금, 2009.08.03), “구경꾼”(김세훈, 2009.08.02), “처참한 실패”(허재원, 2009.07.31)로 그를 묘사하던 미디어의 전개방식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비단 그녀가 메달획득에 실패한 박태환 선수와는 달리, 준우승을 했다는 사실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준우승이 “값진” 것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김연아 선수가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으로 선보인 ‘오마주 투 코리아’(Hommage to Korea)라는 곡을 통해 재현되는 민족주의 정서의 맥락을 통해 이해되어진다. 그녀가 배경음악으로 선보인 ‘오마주 투 코리아’는 아리랑의 후렴 선율을 중심으로 한국 전통음악을 편곡한 곡으로써 한국적 정서로 세계피겨 팬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겠다는 김연아 선수의 목적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는 것이다(홍진수, 2011.04.28).

 

김연아는 프리스케이팅 연기 후 “어떻게 해야 세계인에게 (한국의) 이미지를 전달할지 고민했다”며 “한국 동작을 넣기보다는 음악과 함께 한국 팬들한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감정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김양희, 2011.05.02).

 

이러한 시도가 더욱 돋보이는 까닭은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음악을 선택한 것 자체가 새로운 도전”(김종석, 2011.05.02)이었고, 심판들을 비롯해 외국인에게는 한국음악자체가 생소하기 때문에 연기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질 수도 있으며, 세계인의 귀에 익숙한 곡이 아닌 한국음악을 택했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기 때문이다(김양희, 2011.05.02).
또한 이번 대회 전 “우리 전통음악을 편곡한 프리스케이팅은 그동안 제게 보내주셨던 관심과 응원에 대한 감사의 표시”(홍진수, 2011.04.23)라 했던 인터뷰내용에서 잘 드러나듯이 이번 대회에서 ‘오마주 투 코리아’는 자신의 경기결과보다도 국가와 국민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은 작품(성진혁. 2011.05.02)으로써 표현되었다.


다시 말해, ‘hommage’라는 뜻과 같이 그녀의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은 대중들에게 “조국에 바치는 경의”(양준호, 2011.05.02)를 표시한 작품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으며, 그녀가 시상식에서 흘린 눈물은 한국의 국가브랜드를 염두에 둔 ‘오마주 투 코리아’의 선곡과 팬들의 사랑에 대한 보답의 아쉬움 등이 얽히고설킨 것(김연기, 2011.05.02)으로 재해석되어 설명되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금메달은 아니지만 할 일을 다 끝내고 딴 은메달이라 만족한다."(성진혁, 2011.05.02)는 그녀의 발언은 이번 대회가 피겨선수로서 자신을 위한 도전이 아니라, “국가에 대한 경의를 표시하기 위한 도전”(양준호, 2011.05.02)으로 치환되고 있었다. 따라서 미디어는 김연아 선수에게 국가브랜드제고를 위해 자신의 경기를 희생할 줄 아는 민족적 영웅의 이미지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종합해보면, 미디어는 ‘준우승’이라는 그녀의 실증적인 결과물이 아닌, ‘준우승’을 둘러싼 내면적인 의미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계속적으로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개방식을 통해 그녀의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인 ‘오마주 투 코리아’는 한 선수의 도전이 아닌, ‘국가에 대한 경의’를 표현하기 위한 도전으로 치환되었고, 이에 따라 “김연아=민족적 영웅"이라는 공식을 성립시키게 되었다.

이와 같이 그녀를 통해 국가정체성을 투영시키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대중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민족주의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다시 말해, 피겨여왕으로서 그녀의 준우승은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이지만, 스포츠와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민족주의 정서를 불러일으키게 됨에 따라 그녀의 명사성은 더욱 공고해지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고, 이에 따라 값진 준우승, 아쉬운 준우승으로 순화되었을 개연성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미디어는 그녀가 시도한 ‘오마주 투 코리아’라는 프로그램과 국가정체성 간의 이데올로기적 연결고리로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김연아 선수에게 민족주의라는 특정한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는데 적극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이 글은 <김동현(2012). 김연아 선수의 '값진 준우승': 2011세계피겨선수권대회 관련 보도의 서사구조와 이데올로기. 체육과학연구. 23(1).. 9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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