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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어느 한 운동선수의 삶과 그 의미(2)

 

 

 

글/ 김동현

 

        이 글은 “어느 한 운동선수의 삶과 그 의미”를 전제로 시작한 두 번째 이야기이다. 이 글에서는 체육고등학교에 진학한 그의 경험을 토대로 그려진다. 

 

 

 

 

고등학교의 나: 대학진학을 위한 생활, 운동 또 운동
체육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지만, 고등학교 때 나의 모습도 중학교 때와 연일 다를 바는 없었고, 환경마저도 내가 운동만 하기를 도와주었다. 3년간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 부담되기도 했지만, 모든 것이 국가의 지원 아래 무상이었고, 그곳의 교실분위기는 나를 운동에만 매진하게 만들어 주었다. 학교의 건립 취지에 맞게 모두가 국가대표 운동선수를 꿈꾸며 공부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우리에게 수업시간은 새벽훈련으로 인한 피로를 푸는 시간이었으며, 오후운동을 준비하기 위한 휴식시간이었다. 그리고 선생님들도 우리들을 수업시간에 깨워가며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으셨다.


역시 운동만으로 대학에 가는 학생들이라 그랬던 것일까?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학업과 운동을 꿈꾸던 나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중학교 시절에 좋은 고등학교 진학을 꿈꾸듯이, 그때의 나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를 꿈꾸는 여러 운동선수 중의 한명이 된 것이다.


결국 나는 공부에는 손을 댈 수조차 없었다. 그곳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부끄러움이었기 때문이다. 그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다쳐서 운동을 못하는 학생이나, 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운동을 할 생각은 없이 높은 내신 성적을 노리고 들어온 학생들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모든 학교생활을 운동만을 위해서 노력했다.

 

한편,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찾아 온 변화는 나를 너무 힘들게 만들었다. 운동부내에서의 선후배 관계에 대해서 익히 이야기는 들어왔지만, 중학교시절 운동을 시작할 때는 2학년 말쯤이라 선배의 입장에서 학교생활을 해왔을 뿐, 후배로서의 생활은 감지하지 못한 채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탓에, 나는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특히 기숙사에서 합숙을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월요일 아침에 일주일간의 옷이나 기타 짐을 싸서 기숙사에 입사해서 토요일까지 일주일간 선배, 동기들과 동고동락했고, 그때의 3년은 내가 집에 있는 시간보다도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이 차지했다. 특히, 1학년 때의 생활은 나에게 너무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새벽 6시에 새벽운동을 나가기 위해 눈을 뜨자마자 선배들을 깨우고, 선배들의 운동복이나 운동화 등을 미리 대령해야 했고, 혹시라도 전날 밤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잠든 날이나, 선배를 깨우는 과정에서 선배의 심기를 건드리는 그날 하루는 꽤나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수업 틈틈이 쉬는 시간에는 선배들이 시키면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학교 앞 슈퍼마켓으로 달려가 각종 과자나 음료수를 사오는 첩보전을 치러야 했으며, 혹시라도 감독선생님에게 걸리게 되는 날에는 모두 내가 뒤집어 써야 했다. 감독선생님에게 혼나는 것보다도 선배들이 감독선생님에게 혼나 나에게 되돌아오는 화살이 더욱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동으로 지친 3학년 선배들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하여 스포츠마사지는 기본으로 할 줄 알아야 했고, 마사지를 하면서 선배들의 귀를 기분 좋게 해주는 아부는 센스 있는 후배로서의 기본 조건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 두 가지를 잘하는 후배는 각종 심부름, 청소 및 빨래 등에서 열외 되는 혜택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학교시절 후배생활을 접해보지 못했던 나에게 이러한 센스는 전혀 없었다. 그랬던 탓에 매일 저녁 심부름, 빨래, 청소 등은 내가 거의 다 맡아서 해야 했다.


야간운동이 끝나면 점호시간 전까지 선배들이 사오라고 시킨 간식들을 모두 사서 들어가야 했고, 이후에는 선배들의 방과 담당구역을 깨끗하게 청소해야 했다. 혹시라도 이 중 한 가지라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그날 저녁은 쉽게 잠들 수 없는 날이 되었고, 눈물 젖은 베개를 베면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때로는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나는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동기들과 함께 ‘무단이탈’을 감행하기도 했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나는 1학년이라는 딱지를 뗄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나는 대학진학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비록 운동을 시작하기 전, 나의 목표는 공부와 운동의 병행이었지만, 운동을 시작하면서 나는 단지 좋은 상급학교로의 진학이라는 단일목표로 변경하였다. 고등학교진학이라는 중학교 때 목표에 이어,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운동시간에는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고 오로지 운동에만 집중했고, 공부시간에는 운동시간에 운동을 더 열심히 할 수 있게 잠을 청하였으며, 학업을 포기한다는 것은 운동을 위한 선택이자, 좀 더 나은 상급학교진학을 바라는 나의 당연한 결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운동에만 매진했고, 남들이 자는 새벽시간까지 몰래 일어나서 경쟁자들을 이기기 위해서 개인운동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운동에만 매진했던 노력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나는 3학년 첫 전국대회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였고, 내가 가고 싶은 대학을 선택해서 갈 수 있는 권한까지 얻게 되었다. 그때의 심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노력에 대한 보답’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당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나는 대학진학을 위한 조건을 만족시켰다는 것에서 많은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더욱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내가 1학년에서 3학년까지 오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봐왔기 때문이다. 입학하자마자 유망주로 코치님들에게 관심을 받아왔으나 결국 메달이 없어서 대학진학을 포기한 선배, 대회 때마다 8강의 문턱에서 전전긍긍하던 선배, 그리고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메달이 없어서 자신이 원하던 대학에 갈 수 없게 된 선배까지 너무 많은 모습을 보았기에, 그때의 1등은 대학진학과 관련된 모든 고민을 떨쳐버릴 수 있게 해주었다. 그때의 1등은 나의 노력에 대한 보답이었고, 나는 그 보답으로 대학생으로의 생활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 이 글은 <김동현(2012). 나에게 운동은 무엇이었나?: 운동선수로서의 삶과 그 의미에 관한 내러티브 탐구. 체육과학연구, 23(2), 343-359.>의 내용을 발췌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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