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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어느 한 운동선수의 삶과 그 의미(4)

 

 

 

글/ 김동현

 

 

        이 글은 “어느 한 운동선수의 삶과 그 의미”를 전제로 시작한 네 번째 이야기이다. 이 글에서는 가까스로 실업팀에 들어간 그의 경험을 토대로 그려진다.

 

 

 

 

 

실업선수에서 실업자가 된 나: 새로운 시작, 그리고 운동선수로서의 삶의 끝
실력으로 들어가기보다는 대학교 감독님과 코치님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실업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짧다고 하기에는 너무 길게 느껴진 1년 3개월을 보내게 되었다. 대학졸업 이후 바로 실업팀으로 들어갔던지라 나이도 가장 어렸고, 대학 4학년 최고 대장에서 다시 막내의 생활이 시작되었기에 더욱 그랬다. 실업팀에 가면 이런 위계질서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실업팀에는 학창시절 때와는 다른 위계질서가 존재하고 있었다. 학창시절에는 입학을 하면 3년이나 4년간 무난하게 생활할 수 있었지만, 실업팀은 당장 그 다음날에도 해고될 수 있었다. 아니 쫓겨날 수도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 실업팀에서 나의 직급은 계약직 8급이었기 때문이다. 팀의 모든 선수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반 이상이 계약직 8급이었다. 

 

나: 형, 계약직 8급이 뭐예요?
팀 선배: 그것도 모르냐? 한마디로 일용직이야. 그래서 우리 사원증에는 직급이 없는 거야. 좋은 말로 계약직 8급이지 알바 같은 거야,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말이지
나: 그런데 oo이 형 사원증에는 계약직 5급이라 적혀있던데요. 왜 우리랑 달라요?
팀 선배: oo이 형은 국가대표잖아. 메달도 많고, 너도 국가대표가 되거나 대표선발전 입상하면 계약직 될 수 있어. 그러니까 열심히 잘해. 제일 먼저 쫓겨나기 싫으면 감독이나 코치들한테도 잘 보이고.......   

 

실업팀에서의 또 다른 위계질서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당연히 시합에서 꾸준히 메달을 따는 사람들은 열외겠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언제든지 퇴사의 가능성을 가지고 운동선수로서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마치 약육강식이라는 위계질서에 따라 적자생존의 법칙이 존재하고 있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대학교에서 실업팀으로까지 올라갈수록 선발하는 인원이 줄어지듯이, 실업팀에 들어가고 나면 더욱 살아남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팀의 선전을 위해서는 잘하는 선수를 영입해야 하고, 잘하는 선수를 받기 위해서는 팀 내에서 제일 실력이 낮은 선수들을 해고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함께 입사한 두 명의 동기 중 한명은 3개월, 다른 한명은 10개월도 채 되지 않아서 권고사직을 당했다.


그러한 삶 속에서 나는 운동보다도 실업팀선수로서 삶의 지속여부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행동했다. 국가대표정도의 실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이 지도자들의 선택에 의해 해고냐 아니냐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운동시간에는 지도자들이 잘 보이는 곳에 가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부각시켰고, 운동 외에 시간에는 실업팀의 막내로서 청소, 빨래 등을 앞장서서 하면서 나의 성실함을 부각시켰다.

 

그렇게 나는 1년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1년 3개월이 되던 봄, 국가대표출신선수가 우리 팀에 들어올 수도 있다는 소문이 들렸고, 내가 나가야 될 때가 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몰라도 주위의 형들이나 지도자들의 반응도 평소와는 다르다고 느껴졌고, 나와의 거리를 두고 있음이 느껴졌다. 운동을 마치면 항상 나와 농담을 주고받던 형들은 나를 피하기 시작했고, 나에게 항상 빨래나 청소 등을 매일 지적하던 지도자는 그 선수가 들어온 이후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며칠 후, 지도자 중 한명이 나를 사무실로 불렀고, 테이블위에는 종이 한 장과 펜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 속에 뚜렷하다. 나는 펜을 들고 지도자가 불러주는 데로 적기 시작했다. 그것이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쓰게 된 ‘사직서’이다. 친구들이 이력서를 쓸 때에 나는 벌써 사직서라는 것을 접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운동선수로서 나의 삶은 10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았고, 나는 바로 짐을 싸서 숙소를 나왔다. 순간적으로 권고사직 당했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인생의 낙오자라는 기분도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동안 운동선수로서 살아온 내 삶에 대한 후회와 앞으로의 나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눈앞을 가렸다. 너무 갑작스러웠고, 사회초년생이었던 나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실업팀 숙소에서 나와서 내가 처음 찾아간 곳은 선배가 지도자로 있는 운동부기숙사였고, 그곳에서 며칠을 묵으면서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일어나서 다시 또 술을 마시고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냈다.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했지만, 생각처럼 되질 않았다.


“정신을 차려야지!”라고 마음을 먹을 때면 운동선수였던 시절의 기억이 주마등같이 지나갔고, 내가 운동을 그만뒀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그리고 내가 원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쫓겨났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그래도 내 미래에 대해 답을 찾기 위해서 은사님들도 찾아가고 교수님들도 찾아갔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해답을 제공해주지 못했다.


그렇다고 은사님이나 교수님들이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나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그들마저도 나를 인생의 낙오자로 만든 죄인들로 단정 지으며 원망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앞으로의 삶에 대한 불안과 걱정으로 살아갔고, 걱정이 커지는 만큼 운동선수로서 살아온 나의 10년에 대한 후회감은 더욱 커져갔다.


운동을 하지 말았어야 된다는 생각, 내가 운동을 왜 했을까 라는 생각, 운동을 안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나는 미래에 대해 방향을 잡기보다는 ‘운동’이라는 그것에 대해 원망하고 스스로 자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 이 글은 <김동현(2012). 나에게 운동은 무엇이었나?: 운동선수로서의 삶과 그 의미에 관한 내러티브 탐구. 체육과학연구, 23(2), 343-359.>의 내용을 발췌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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