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투고

어느 한 운동선수의 삶과 그 의미(1)

 

 

글/ 김동현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한 중학교의 학생인 동시에, 수영종목의 국가대표선수인 한 어린 소녀가 있었다. 장희진이라는 이 소녀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시험공부를 해야 된다며 태릉선수촌 입촌을 미루었고, 결국 수영협회는 여자 자유형 50m 한국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그 소녀의 국가대표자격을 박탈하기에 이르렀다. 당시에 운동선수들에게 있어서 운동과 공부를 병행한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학교운동부와 관련된 문제는 체육계에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는데, 그중 가장 대두되는 것이 바로 학생선수의 학습권 및 인권과 관련된 사항들이다. 한마디로 학생선수들의 학습권은 잦은 시합출전으로 인한 수업결손으로 보장받지 못하였고, 그들의 인권은 우수한 경기실적을 위한 비인간적인 훈련으로 인해 간과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운동부에 만연해 있는 이러한 문제들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하여 어떠한 노력을 하며,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되어 왔을까?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의 당사자이자,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학생들의 입장은 어떠할까?

 

비록 이러한 의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 한 운동선수의 이야기를 통해 그 답을 대신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한 운동선수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학교운동부로의 입문에서부터 은퇴까지, 그 속에서 학생선수들은 어떠한 상황에 쳐하게 되고,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되어 왔는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의 삶을 통해 운동선수로서의 삶은 어떠한 의미로 해석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이 글에서 그의 삶은 학교운동부로의 입문에서부터 은퇴까지, 시간적 흐름에 따라 중학교 때의 나, 고등학교 때의 나, 대학교 때의 나, 그리고 실업선수에서 실업자가 된 나, 이 네 가지의 대주제로 범주화하여 이야기하고 있으며, 필자가 ‘나’로 표현되는 1인칭 관점에서 서술되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중학교 때의 나: 운동부 입문으로 인한 삶의 변화
나는 어렸을 때부터 생각이 조금 독특했었다.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보고 항상 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행동에 ‘왜’라는 의문을 가져보고는 했다. 그리고는 나라면 ‘어떻게’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했다.


이런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던 터라 나는 중학교 때의 짝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했었다. 그 친구의 수업시간 행동은 당시의 나에게는 너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 친구와 거리상으로는 가장 가까이 있는 친구였지만, 그 친구의 얼굴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그 친구는 아침 조례시간이 끝나면 슬그머니 들어와서는 걸상을 빼고 앉자마자 엎드려 자기 시작했다. 엉덩이가 걸상에 닿자마자 얼굴은 책상에 바싹 붙여 엎드린 채 쉬는 시간에도 일어나지 않았고, 4교시가 끝날 때까지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잠만 잤다. 그리고 4교시 종이 치면 항상 슬그머니 졸린 눈을 부비며 사라지곤 했다. 교실에서 나간 그 친구는 점심시간 이후에는 항상 창밖에서 뛰어 다니는 모습으로 나에게 기억되고 있었다.


그 친구는 내가 다니던 학교의 축구부 골키퍼였고, 나는 그런 친구를 볼 때 마다 궁금했다. 분명히 나와 같은 학생인데, 왜 수업시간에는 잠만 잘까? 오후에는 수업도 들어오지 않고 왜 운동장에서 운동을 할까? 그리고 수업시간에 자는 친구를 보고 왜 선생님들은 그 친구를 깨우지 않는 걸까? 그 친구에 대한 궁금증은 날이 갈수록 더해갔고, 나는 이상한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만약에 내가 그 친구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도 그랬을까?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하여 ‘나라면 공부도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학생이 될 수 있을 것인데’라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한 운동부지도자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 되었다. 내가 운동하던 장소에 우연히 방문하게 된 한 중학교 운동부 코치가 나의 운동실력은 보지도 않은 채, 키만 보고 운동선수해 볼 생각 없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중학교시절 키만 크고, 몸은 삐쩍 말라서 약간은 부실한 체격이었던 나를 염려하시는 부모님의 권유로 취미삼아 시작한 운동이었는데, 큰 키가 문제였다.


하지만 공부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학생이 되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는 너무 반가운 제안이었다. 이유야 어떠했던 간에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했던 것 같다.


하지만 주위의 반대는 상상했던 그 이상이었다. 당시에 나름대로 상위권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냥저냥 공부를 하던 평범한 학생이 갑자기 운동선수를 하겠다고 한 말에 담임선생님은 반대하셨고, 애지중지 키워온 외아들이 갑자기 운동을 하겠다는 말에 부모님 역시 반대하셨다. 그리고 주위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반대가 거세지면 거세질수록 나는 운동부학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지고 있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할까? 나는 자신이 있었다. 다른 학생들이 운동부에 들어가게 되면 운동만 하고 공부는 하지 않지만, 나는 이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무작정 부모님을 설득시키려고 노력했고, 나의 의지를 꺾지 못하신 부모님은 반드시 운동과 공부를 같이 해야 한다는 말씀과 함께 어쩔 수 없이 허락해주셨다. 결국 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운동부학생으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시작된 나의 운동부생활은 어땠을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의 운동부생활은 첫날부터 마치 어디에 끌리듯이 운동부화 되어 가고 있었다. 운동부에 들어가기 전의 마음은 완전히 망각한 채, 나는 그렇게 다른 운동부학생처럼 동화되어 가고 있었다. 일반학생시절 축구부 친구들이 수업에 들어와 자던 모습을 의아해 하던 나는 온데간데없었고, 나는 오전 수업마저도 들어가지 않으며, 운동부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새벽운동이 끝나고 피곤할 때는 교실에 들어가서 잤고, 놀고 싶을 때는 운동부 친구들과 수업을 빠지고 근처 오락실이나 체육관에서 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행동에 대해서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고, 단지 코치님에게만 걸리지 않으면 됐었다. 그렇게 나에게 있어서 학업은 서서히 멀어져 갔고, 나의 삶은 운동과 그 외의 것들로 분류되었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서 나는 도시락을 2개씩 싸들고 학교로 가는 버스를 탔고, 7시부터는 학교운동장에서 1시간 반 동안 체력운동을 하면서 숨이 넘어가는 고통을 참아냈다. 그리고 씻고 아침밥을 먹고 교실이라는 곳, 그때의 나에게 어색한 곳이 되어 버린 교실에 들어가서 오전수업 내내 나는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시 체육관으로 내려와 점심밥을 먹고 또 다시 약간의 낮잠을 청하고 2시 반부터는 오후운동을 했다. 그리고 늦은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운동을 마치고 나는 만원 버스에 몸을 싣고 집을 향해 갔다. 저녁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집에 도착했고, 매일 거의 녹초가 된 상태로 잠이 들었으며, 다시 다음날 아침에 깨서 운동하러 가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내가 원하던 삶은 아니었지만, 나는 어느새 진짜 운동부(?)가 되었고,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겠다던 나의 허무맹랑했던 상상은 말 그대로 상상에 그쳐버렸다. 아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선생님들의 반응도 나를 변화시켰다. 수업시간에 자는 것은 물론이고, 시험시간이 되면 시험지의 문제를 보지도 않고 답안지에 마킹을 하고, 나는 계속 잠만 잤다. 그런 모습을 보고도 선생님들은 나에게 어떠한 꾸지람도 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이해해주시고, 일어나있으면 “왜 안자냐”는 말을 하시며, 오히려 내가 조용히 자기를 원하셨다.


처음에는 주위의 이러한 반응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학생이 공부를 하지 않는데도 아무런 꾸지람을 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도 마치 나를 위해서 그렇다는 듯이 내가 학업을 도외시하는 것을 인정해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 이유에 대해서 대충은 알게 되었다. 내가 운동부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에 다니는 선배 몇 명이 휴가를 받아 학교에 찾아 왔고, 선배들은 이름만 대면 아는 명문대학의 체육특기자들이었다. 나는 선배들에게 어떻게 그 대학에 들어갔냐고 부러운 듯이 물었다. 내가 공부를 했더라도 가기 힘들었던 그런 대학이기에 나의 관심은 더 컸다. 그 선배들의 대답은 하나 같이 똑같았다.

 

 “운동만 잘 하면 된다.”

 

그때서야 나는 운동만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에 보내주겠다고 하셨던 코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운동부학생들의 상급학교진학에는 공부가 전혀 필요치 않았고 운동경기실적만 있으면 됐었기 때문이다. 내가 확실히 공부에서 손을 때기 시작한 것이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결국 나는 공부를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조금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그리고 나의 미래를 위해 공부를 포기한 것이다. 공부를 포기한다는 것은 더 좋은 대학에 가기위한 희생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하기에도 적절한 이유였고, 더 이상 미련을 가지지 않고 운동에만 매진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운동을 시작하기 전의 꿈은 점점 잊어갔고, 학생이 아닌 운동선수가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목표로 꿈꾸던 체육고등학교에는 입학할 수 있다. 그때의 나는 그것만으로 만족했다.

 

 

 

 

◆ 이 글은 <김동현(2012). 나에게 운동은 무엇이었나?: 운동선수로서의 삶과 그 의미에 관한 내러티브 탐구. 체육과학연구, 23(2), 343-359.>의 내용을 발췌한 것임.

 

 

 

 

ⓒ 스포츠둥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