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포츠둥지 기자단

왜 오직 야구? 국내 스포츠 중계의 '쏠림현상'

 

 

 

 

글 / 문영광 (스포츠둥지 기자)

 

          지난 4월 25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는 K리그 울산과 서울의 경기가 열렸다. 이날은 많은 양의 비가 내렸고 모든 프로야구 경기가 취소되었다. 프로축구 팬들은 K리그 상위팀 간의 경기를 모처럼 TV 생중계로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필자도 그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중계차를 파견한 방송국은 한 곳도 없었다.

 

울산의 열혈 팬인 서준혁(19) 씨는 한 인터넷카페에 “직접 중계를 하겠다“는 글을 남긴 채 자신의 장비를 들고 경기장을 향했다. 서준혁 씨가 중계하는 개인방송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중계 화면은 아니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축구해설가 서형욱 씨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눈물겹다’는 표현으로 아쉬움을 나눴다.

 

한 스포츠 전문채널에서 50시간 동안 오직 야구로만 편성표를 채운 지 불과 열흘 만에 벌어진 위 일화는 이미 기사화까지 되어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국내프로야구 중계는 그야말로 ‘틀면 나오는’ 수준이다. 이에 반해 국내 프로스포츠를 양분하고 있는 프로축구의 중계 비중이 현격히 적은 현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프로농구와 프로배구에도 못 미친다.

 

쏠림현상, 심해도 너~무 심해
2011년 스포츠 전문채널을 통해 중계된 K리그 방송 횟수를 보면 SBS ESPN 37회, MBC SPORTS+ 29회, KBSN SPORTS 19회에 그쳤다. 프로야구는 굳이 통계를 찾을 필요도 없이 전경기가 중계되고 있는 상황이다.

 

비단 야구와 축구 중계만을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다. 프로야구에 지나치게 편중된 ‘쏠림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런던올림픽 복싱 은메달리스트 한순철은 한 방송 인터뷰 도중 비인기 종목의 설움에 관한 질문에 "일단 중계부터 시작해서 안 나오는 것도 있고, 인기가 없다 보니 관심과 지원이 적어 훈련에 있어 힘들다"는 말로 답변을 시작했다. 런던올림픽의 경우 편성시간이 하루 평균 550분이었던 것에 비해 런던 장애인올림픽은 하루 46분 편성에 지나지 않았다.

 

 

국내 4대 프로스포츠의 경기당 중계율을 통해 프로야구로의 중계 쏠림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 문영광

 

 

이러한 국내 스포츠 중계의 쏠림현상의 여러 원인 중 가장 큰 것은 ‘돈’이다. 무한경쟁 시대인 현대 사회에서 적자생존의 원칙은 방송사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1984 LA올림픽 조직위원장이었던 피터 유버로스(Peter Ueberroth)는 “올림픽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큰 경기장을 짓느냐가 아니라 경기장에 몇 대의 TV 카메라를 설치할 수 있느냐이다”라는 명언과 함께 스포츠 미디어 시장에 큰 변혁을 가져왔다. 그로부터 약 30년, TV 중계권료 시장은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이 오가는 거대시장이 되었으며 방송사들은 돈이 되는 컨텐츠를 생산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야구는 돈이 되는 스포츠다. 이닝 교체 시는 물론이고 경기장 시설물이나 선수의 유니폼과 장비에도 손쉽게 광고효과를 줄 수 있다. 최근에는 가상광고(Virtual Advertising)의 발달로 시각적인 효과가 큰 가상광고들을 한 경기에도 수 십 회 이상 삽입할 수 있다. 이런 장점에 국내 프로야구의 인기가 부합하면서 중계차는 점점 더 야구장으로 쏠리고 말았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최근 발표된 한 연구자료에 의하면 프로야구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1조 1838억 원으로 국내 4대 프로리그 가운데 52.9%를 차지했다. 이것은 프로축구, 농구, 배구를 합친 것보다 많은 수치이다. 경제효과가 큰 구단 TOP10에도 프로야구 8개 구단은 모두 속해있다.

 

혹자는 이야기한다. “야구가 이만큼 인기가 많고 시청률이 높게 나오니 중계 편중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이다. 필자는 반문하고 싶다. “틀면 나오는 빈번한 TV 노출 없이 과연 프로야구 700만 시대(2012년 총 관중 715만 6,157명)가 가능했을까?”라고 말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듯이 ‘야구의 인기 덕에 중계가 쏠린 것이냐, 돈이 되는 야구 중계의 확대편성을 통해 야구가 덕을 본 것이냐’를 따져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이용대가 베이징에서 금메달을 딴 후에 TV 카메라에 대고 윙크를 하지 않았다면?’ 상대적으로 대중의 인지도가 낮은 비인기 종목의 입장에서는 한 명의 스타 선수에게 의존하여 그 영향력과 저변을 키워나간다. 수영의 박태환,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배드민턴의 이용대, 리듬체조의 손연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광고나 경기를 통해 하루에도 수차례 이상 대중에게 비쳐진다. 많이 비쳐질수록 대중들의 인지도는 올라가고 어린 아이들은 그들과 같이 되는 꿈을 꾼다. 이곳저곳에서 투자가 이어진다. 서서히 해당 종목의 저변은 확대되어 비인기 종목의 굴레를 벗게 된다. 이것이 바로 TV 노출의 엄청난 효과이다.

 

현재 프로야구의 인기 역시 빈번한 TV 노출로 인해 상당한 득을 보았다. 2006 WBC와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의 감동적인 선전과 맞물려 프로야구의 인기가 서서히 반등했다. 중계 효과를 감지한 방송사들은 적극적인 편성의 확대로 힘을 실어주었다.

 

비용손실을 비롯한 여러 위험을 감안할 때, 방송사 측에서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프로야구 노출 빈도를 높인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반등하던 프로야구 인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확실하다. 전경기 생중계와 함께 경쟁적으로 방송되는 하이라이트와 스토리 메이킹, PTS(투구추적시스템) 도입, 편파중계 등 다채로운 컨텐츠로 TV 앞의 시청자들을 야구장으로 이끌었다. 관중이 늘고 인기가 많아지자 구단 측에서는 경기력 향상, 스타 선수 영입, 다양한 이벤트 등을 통해 팬들을 만족시켰다.

 

 

다양한 프로야구 컨텐츠가 경쟁적으로 전파를 타면서 프로야구의 인기 상승에 큰 도움을 주었다.

(출처 : SBS방송캡쳐, http://blog.olleh.com)

 

 

스포츠의 핵심 제품은 분명 경기력이다. 경기가 재미있어야 해당 종목의 인기도 높아진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핵심 제품을 가졌더라도 누군가에게 선보일 기회가 없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스포츠에 대해 미디어가 갖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빈번한 TV 노출은 핵심 제품의 인기 상승에 분명한 도움을 줄 수 있다. 물론 방송국 차원에서도 제작비 충원이라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체육발전이라는 대의적인 사명을 갖고 있다면 공정한 편성 배분에 대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4년에 한 번씩 영웅이 되는 비인기 종목 선수들은 오늘도 텅 빈 경기장에서 홀로 싸우고 있다. 적어도 이 사실을 안다면 현실적인 문제를 토로하는 데 머물지 않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힘써야하지 않을까.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그들이라면 말이다.

 

 

 

 

 스포츠둥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