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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대한민국은 일본에게 평생 라이벌이지만 선진기술은 좀 배워가겠습니다.

 

 

 

글 / 이아영 (스포츠둥지 기자)

 

 

        뜨거웠던 런던 올림픽의 열기를 뒤로한 채 폐막식을 하루 앞둔 2012년 8월 12일에 일본에서 손님들이 찾아왔다. 바로 이웃나라 일본의 와카야마현 역도 대표선수들이었다. 히가시 고등학교, 기호쿠 고등학교, 와카야마현청 실업팀 등 현대표선수로 구성된 일본 역도팀은 오래 전부터 눈 여겨왔던 경남 김해시의 유일한 역도 훈련장인 영운 중, 고등학교 역도훈련장을 찾았다. 국경을 넘어 전지훈련을 왔는데 대표팀도 아닌 일반 중, 고등학교 팀을 찾아오다니 이 학교에 무슨 비밀이 있나 궁금했다.

 

김해 국제공항에 모습을 나타낸 와카야마 일본 역도팀 이아영

 

한국을 찾은 이유를 묻자 히가시 고등학교의 감독은 “대한민국 역도는 전 세계적으로 알아준다. 역도에서의 세계 최강국을 꼽으라면 중국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중국 선수들은 경량급부터 중량급까지 대체적으로 선수들이 힘이 좋다. 반면 한국 선수들은 자세가 안정적이고 폼이 깔끔하다. 이러한 점에서 중국은 파워역도에 가깝고 한국은 기술역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체력적인 부분이야 단련하면 되지만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많은 부분을 배우고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대표팀이 아닌 일반 학생팀을 찾아 훈련 오게 된 계기는 김해 영운중학교가 창단 13년 이후 단 한번도 전국대회 메달을 놓친 적이 없는 역도 명문학교이기 때문이었다. 일본 지도자들은 특히 영재 양성에 관심이 많은데 클럽형식의 일본과는 달리 한국의 학생 선수들이 어린 시절부터 신기록을 수립하며 두각을 나타내는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아무래도 한국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해오던 시스템이라기 보다는 운동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왔기 때문에 주니어 시절부터 성적을 잘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와카야마현 대표 선수들과 지도자들은 역도 명문인 영운 중, 고등학교를 찾아 지도자들과 정보교류를 하고 선수들의 훈련 프로그램을 함께 공유하며 배우고자 했다.

 

체육관 안 만들어줬으면 학교 무너질 뻔
영운중학교 정수용 감독은 역도 선수 출신으로서 한국체육대학교까지 진학할 정도로 기량이 우수했다. 그는 2003년 경남 송계고등학교에서 체육교사로 부임하던 당시 역도부를 창설하여, 아들에게도 역도를 전수하고 선수로 길러낼 정도로 역도에 애정이 깊었다. 그 후 영운중학교로 부임하면서 역도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지금껏 쏟아오고 있다. 그는 처음으로 영운중학교에 왔을 때 깜짝 놀랐다고 했다. 역도장이라고 안내 받아 찾아간 곳이 일반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교실 중 어느 한 켠에 마련된 교실이었던 것이었다. 40여명을 수용하는 일반 교실에 책상을 모조리 치우고 역도 훈련대만 겨우 4개를 붙여서 역도장 형태만 갖추고 있었던 것이었다. 훈련의 특성상 무거운 기구가 하루에도 수 없이 땅으로 떨어지다 보니 잘못 튕겨나가서 콘크리크 벽이나 창문에 박살낸 자국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사실 영운중학교에 처음으로 역도부가 생긴 것은 학교가 생긴지 1년도 채 안 된 1999년이었다. 건물의 3, 4층이 채 완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1학년 생만 입학하여 1, 2층에서 수업을 할 수 있는 정도였으니 체육관을 기대하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고 했다. 교기로 선정되고 호기심에 몰려든 30명의 학생들은 역기도 들어보지 못한 채 체력훈련에 지레 겁먹고 하나 둘씩 빠져나갔고 결국 마지막까지 남은 선수는 고작 여자 선수 세 명이었다. 그 것이 영운중학교 역도부의 첫 시작이었다.

 

학교도 완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역도부가 생겼으니 꾸려나가는 과정에서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훈련장이 없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 큰 문제는 역도부에게 역기가 없었던 것이었다. 주구장창 힘든 체력훈련만 하였으니 몰려든 학생들이 남아나는 것이 희한한 일이었다. 그러나 끝까지 남았던 3인의 여인은 이듬해 전국시합에 출전을 위해 시합 직전 2~3개월전에 기구를 중고로 구입할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체력훈련과 병행하며 기구가 없어서 바닥청소용 마대자루의 나무를 뽑아 자세 연습을 했었다. 어쨌거나 상황이 그러하다 보니 기초 체력훈련에 충실할 수 있었고 2~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의 역도 기술 훈련만으로 그들은 2학년이 되는 해에 3명 모두 전국대회 입상을 했고 3학년이 되던 해에는 전원이 중등부 전국 역도 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는 후문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첫 역도부 창단 그 후로도 약 5년 동안 후배 선수들은 체육관이 아닌 교실에서 훈련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수용 감독이 부임한 이후 훈련대가 4개 밖에 없었던 역도장은 교실로부터 벗어나 정식 역도훈련을 할 수 있는 체육관으로 이동했고 훈련대가 12개로 대폭 늘어났다. 열악한 초창기 당시에도 꾸준히 성적을 내오던 영운중학교는 창단 이래 단 한번도 전국대회 메달을 놓친 적이 없었다.

 

 

역도 명문 맞나요?
히가시 고등학교팀 감독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도 좋지만 일본 선수들이 주로 학생선수들이기 때문에 일부러 또래를 찾아 학교 팀을 찾았다고 밝혔다. 특히 전국 상위권 선수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는 영운 중, 고등학교 선수들은 추후에 상비군이나 국가대표로 선발될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다고 전했다. 특히 영운중학교는 올해 5월에 열렸던 소년체전에 참가하여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4개를 수확하며 소년체전 경기에서 창단 이래 역대 최고 성적을 내며 역도 명문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특히 여중부 69kg급에 출전한 김승현 선수는 인상 85kg, 용상 108kg, 합계 193kg으로 용상과 합계에서 한국중학생 신기록을 세우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중학생 선수의 이 대단한 기록은 사실 고등부나 일반부에서도 메달권을 기대해 볼 수 있는 기록이었다. 영운중학교 역도부는 개교 이래 많은 금메달을 획득하였지만 전국소년체전에서 한 선수가 3관왕에 오르고 가장 많은 메달을 획득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한국 역도의 유망주를 키워내는 땀의 산실, 영운중학교 중앙복도의 모습 이아영

 

 

교장 엄홍기는 인터뷰에서 “대회에 참가했던 학생들이 모두 두둑한 배짱과 열심히 훈련하는 성실성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나라 역도를 대표하는 훌륭한 선수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식신로드!
또한 한국을 찾은 이유 중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음식이라고 말했다. 특히 음식으로 유명한 지역도 아니지만 음식을 싱겁게 먹는 일본의 특성상 한국의 간이 잘 벤 음식은 중독성 있는 매력이 있을 것이다. 감독님은 예전에 한국 방문을 한 적이 있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맛이 좋은 김밥을 잊을 수 없었다고 했다. 한국인들에게는 흔한 음식이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스페셜 음식이었다. 또한 마트에서 피자를 주로 판매하는 일본과는 달리 전국 어디에서나 접근성이 쉬운 샐러드 바를 갖추고 있는 전문피자점 역시 그들에게는 신기한 문화였다. 어느 종목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역도선수들은 특히나 잘 먹어야 한다. 하루에 들었다 놨다 하는 에너지 소모량을 채우기 위해서는 식사로 상당히 많은 부분을 보충해줘야 한다. 하지만 물가가 한국에 비해서 비교적 높은 일본은 음식 가격이 한국처럼 많이 저렴하지는 않기 때문에 마음껏 먹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들은 한국을 찾아 4박 5일간의 여정 동안 고기 뷔페를 시작으로 김밥, 삼계탕, 피자, 통닭, 씨푸드 레스토랑, 낙지볶음, 라면 등 평소에 일본에서 흔히 배불리 맛보지 못하는 음식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푸짐하게 즐길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고 했다. 선수 중 2명의 남자 선수는 체중을 조절해야 하는 상황이라 한국 전지훈련이 좋으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조절해가며 먹어야 한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보이기도 했다.

 

 

당당한 여자 역도선수들
이번 훈련에 함께 동행한 유일한 여자 선수 미츠카는 역도를 시작한지 이제 고작 1년 밖에 안 된 새내기였다. 집에 언니들이 있는데 다 역도를 해왔다고 했다. 특히 미츠카의 큰언니는 이번 런던올림픽 +75kg급에 출전할 정도로 기량이 우수하다고 했다. 비록 이번 대회에서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일본 내에서는 알아주는 유명한 역도선수라고 했다. 언니가 런던에서 직접 공수한 런던올림픽 공식 티셔츠를 입고 훈련하길 즐기는 미츠카는 언니와 같은 무제한급인 +75kg이다. 아직 전국대회에서 입상할 실력은 아니지만 처음 역도를 시작한 작년에 비해 기록이 무려 종목당 20kg씩 증량했으니 앞으로가 기대되는 선수이다. 한국의 역도 간판 장미란 선수는 일본에서도 유명하다고 했다. 전 세계에서 힘이 가장 센 여자라고 알려져 있기도 한 장미란 선수는 베이징 올림픽이 끝난 후 국가대표 선수들과 함께 영운중학교 역도 훈련장을 찾기도 했는데 그 흔적이 역도장 게시판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한국 역도의 간판 스타 장미란 선수의 친필사인의 흔적 이아영

 

 

장미란, 사재혁과 같은 스타 선수들이 급부상하기 전까지만 해도 역도는 대중들에게 흔히 알려져 인기 있는 종목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테네 올림픽을 기점으로 역도에 대한 인기와 관심이 늘어나면서 대한민국 역도 영재 양성에는 상당한 붐을 불러일으켰다. 타이즈 입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서 훈련하기를 거부하던 어린 소녀들이 많았던 예전에 비해, 요즘은 타이즈 입고 훈련하는 모습이 더 이상 친구들의 놀림감이 아니다.

 

 

 

김해 영운중학교 역도 훈련장에서 영운 중, 고등학교 팀과 일본 와카야마 팀의 모습 이아영

 

 

전지훈련 와줘서 감사합니다!
영운중학교 역도 선수들은 국내 전지훈련을 떠나기도 쉬운 일이 아닌데 이웃나라 일본에서 선수들이 직접 자신들의 훈련장까지 찾아와주어서 값진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선수들 중에는 와카야마현 실업팀 소속 남자 선수도 두 명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학생 선수들보다 중량을 다루는 무게가 확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에 학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와카야마현 실업선수의 훈련모습(기록도전 시 실패에 대비해 동료들이 보조를 위해 대기중이다.) ⓒ 이아영

 

 

영운 중, 고등학교 선수들은 훈련 중 쉬는 시간에 일본 선수들에게 눈을 향했고, 일본 선수들 역시 자신들이 쉬는 시간에 한국 선수들의 자세를 유심히 살피는데 시간을 보냈다.

 

 

휴식 틈틈이 서로의 자세를 관찰하는 일본 고등부 선수들의 모습 ⓒ이아영

 

 

역도는 상대방과 겨루는 종목이 아니기 때문에 전지훈련이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정교한 기술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선수들마다 끊임 없는 기술 연구를 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운동 방식을 많이 보는 것이 성장에 유리하다. 기록이 늘지 않는 정체기가 찾아올 때면 다른 선수들이 시도하는 운동 방법을 자신에게 다양하게 적용해봄으로써 슬럼프를 극복해내는 선수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든 국외든 많은 선수들과 교류하며 훈련법이나 훈련 기술을 공유하는 것은 기량 향상에 상당한 도움을 주는 것이다. 역도부가 생긴지 이제 고작 13년 밖에 되지 않은 영운중학교의 창단을 시작으로 영운초등학교 클럽팀, 영운고등학교 역도부 창단 등 김해는 역도의 메카로 점점 자리매김 하고 있는듯하다. 창단 이해 첫 전국대회 출전서부터 메달 사냥에 성공했고 그 후 끊이지 않는 전국대회 입상 실적은 학교의 끊임 없는 지원과 우수한 코치진 덕분이었다. 1회 졸업생부터 영운중학교는 도내 신기록 갱신, 국가대표 상비군 3명, 국가대표 선수 1명, 국가대표 코치 1명(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지도자)를 배출한 전적이 있는 우수한 역도 명문학교이다.

 

 

결혼과 출산에도 떠나지 않는 여자 코치진
현재 영운중학교를 담당하고 있는 조혜정 코치와 영운고등학교를 담당하는 최은숙 코치는 오랜 세월 역도에 몸담아왔던 역도국가대표선수 출신이다. 두 사람은 중, 고, 대학, 실업팀 모두 같은 팀에서 생활한 선, 후배 사이인데 함께 영운 중, 고등학교 팀에서 선수들을 지도하며 결혼도 언니 먼저, 동생 다음으로 하게 되었다. 그런데 또 올해에는 두 코치 모두에게 득남 소식이 있었다. 이 또한 언니 먼저, 동생 다음 순서로 선, 후배 규율을 지키는 듯 했다. 일반 직장을 다니는 여성에게 있어서도 결혼과 출산은 직장 유지에 있어 쉽지 않은 부분인데 이 들은 현장에서 선수들을 지도하면서도 결혼과 출산이라는 장애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훈련장을 지켰다. 오랜 시간 동안 선수들과 호흡해 온 그 정은 마음만이 아닌 행동으로 연결된다. 조혜정 코치의 출산휴가 중인 지난 3개월 동안 영운중학교 코치자리는 1회 역도 졸업생이자 전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했던 김민희 코치에 의해 채워졌다. 아마 후배이자 제자인 선수들을 지도하는 마음이 남다를 것이다. 출산 휴가 중 일본팀의 전지훈련 소식을 듣고 아기와 함께 영운중학교를 찾은 조혜정 코치는 반가움에 달려드는 어린 선수들을 보고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니 명문이라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짧고도 길었던 훈련 시간 동안 일본 선수들은 한국 선수들이 실시하는 프로그램을 함께 소화했다. 무더운 여름 선수들이 죽어라 피하고 싶은 서킷트레이닝(여러 종목을 일정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돌아가면서 실시하는 트레이닝)을 가장 힘들었던 훈련으로 꼽았는데 가벼운 무게만으로도 금방 탈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평상시 자신들이 하던 훈련방식과는 조금 다른 패턴의 훈련을 하다 보니 사용하지 않았던 근육을 동원해서 피로를 많이 느꼈다. 기술적인 면에서나 훈련 프로그램적인 면에서나 이번 훈련을 통해서 얻어가는 부분이 크다고 느낀 와카야마 대표선수들은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한국을 자주 찾을 것이라 말했다. 비교적 낮은 물가 덕분에 맛 좋은 음식을 풍족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고, 특히 일본에서 인기가 많은 “김”을 대량으로 많이 사갈 수 있다는 점도 만족스러워했다. 일본, 우리에겐 숙명과도 같은 존재이지만 배울 건 배우러 오는 그들의 정신은 존중해주어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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