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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어느 엘리트 선수 출신의 하소연

 

 

글/ 이병구 (영서초등학교)



       푹푹 찌는 날씨, 습기 가득한 공기까지...이번 더위가 무뎌지게 느낄 수 있었던 점은 단연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우리 선수들의 값진 메달 소식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와 같은 올림픽은 참가하는 선수에겐 참가 자체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이요, 일생의 최대 영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꿈의 무대에서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선수들은 국민들의 냉소적인 반응과 더불어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를 생각한 채 은퇴 후 삶을 준비한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에도 선수촌에 있는 대표선수들을 비롯한 수많은 유망주들은 조국의 명예와 더불어 개인의 안녕을 위하여 경기장 내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하지만 근래 논란이 되었던 김연아 선수의 교생실습 논란은 체육 현장에 종사하는 이들 모두에게 아쉬움이 남는다. 무엇보다 현장에 있는 체육계 인사들이 김연아 선수의 사태를 보고 마치 소 닭 보듯이 바라보았다는 부분이다. 어느 누구하나 김연아 선수를 대변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내려 하는 이가 단 한명도 없었다는 점은 체육계 전반에 반성을 요구한다.


물론 김연아 선수를 비롯한 대다수의 학생선수들이 학교 내에서 받고 있는 혜택들은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특혜(privilege)이다. 그러나 다른 스포츠 강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분명 국제무대에서 꾸준한 성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엘리트 체육정책은 ‘필요악’이라 사료된다.

 

 

 

 

한동안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황상민 교수와 김연아 선수. 김연아 선수의 고소로 인하여 양측은 잠시나마 법적공방이 있었으나 결국 김연아 선수의 취하로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남은 건 생채기뿐이었으며, 이러한 사태를 야기한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학생선수를 일반학생들과 동일한 잣대로 바라보는 그릇된 시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단적인 예로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국가인 일본의 사례를 살펴보면, 과거 70년대 일본은 더 이상 아시아 내에서는 적수가 없다고 판단되어, 당시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스포츠 정책 중 하나인 생활체육정책에 눈을 돌렸다. 그러나 일본 체육계의 예상과는 달리,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등 일부 아시아 국가들의 놀라운 성장으로 아시아 스포츠 강국이라 자평하였던 일본 엘리트 체육의 위상에 금이 가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오랜기간 일본 체육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국제 스포츠계에 거의 명함도 못 밀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매 국제대회마다 고배의 쓴잔을 마신 일본은 자연스럽게 스포츠 정책에도 변화를 도모하게 된다. 우선 일본은 스포츠기본법을 만들어 국제경기력 향상을 ‘국책’으로 규정하고 올림픽 선수단에 국가 예산을 투입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으로 일본은 지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5위 달성 이후, 국제무대에서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표 1. 한국과 일본의 올림픽 메달 현황 비교

 

 

* 1948년 런던 올림픽 일본 불참.
* 1980년 냉전시대에 따른 불참(두 국가 모두)
*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 획득 

 

 

물론 많은 이들이 지금의 일본은 운동만 하는 선수를 양성하지 않기 위하여 지정된 수업일수를 채우고, 학점을 관리하여 낙제를 받거나 5년 내에 졸업을 하지 못할 경우에는 운동부를 그만두게 할 정도로 학생들의 학업에도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이러한 정책들의 실효성을 거두기 위하여 장기간 체계적으로 자국 생활 스포츠에 대한 막대한 투자가 밑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망각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세계무대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어떻게 보면 대다수의 스포츠 강국들이 자국 엘리트 선수들의 경기력 보다는 양적·질적으로 스포츠 저변확대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선전할 수 있었다 판단한다. 그들은 분명 우리보다 뛰어난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경제력, 선수 인프라 그리고 해당 종목에 대한 장기간 쌓아온 노하우 등 어느 하나 우리와 비교하여 볼 때 부족한 면이 없다. 더구나 냉전이 사라진 지금, 많은 국가들이 이미 올림픽 메달을 통해 해당 국가의 국력을 하나의 지표로 삼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현행 엘리트 체육정책에 대한 재고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근거들을 토대로 체육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칫 일본과 동일한 돌이킬 수 없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간절히 바란다.


한편 기관이나 학계에서 진행 중인 학생선수들의 ‘최저학력제’도입에 대한 정책은 많은 논란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대다수의 학생선수들이나 학부모들이 바라는 점은 공부가 아닌 자신들이 하고 있는 운동 종목에서 성공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엘리트 선수의 길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이 진심으로 바라는 점은 올림픽 금메달이나 프로진출이다. 물론 학계에서 우려하는 중도탈락 선수들의 문제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그러나 상위권 대학 체육학과들의 입시정책이 학생선수들에게 불리하게 작용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정책이라 보인다. 이는 그간의 성적은 반영되지 못한 현실에서 체육계열에 지원하는 일반학생들과 동일한 잣대로 입학을 시키는 것은 자칫 이들에게 선수생활에 대한 회의감을 조성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체육계를 비롯한 우리 국민들이 명심하여야 될 점은 선진국의 좋은 정책이 결코 우리나라에서도 통용될 수 있다는 확신 즉,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나라 스포츠 정책을 부정하기 보다는 부족한 부분을 개선․보완하여 보다 현장에서 요구하는 엘리트 스포츠 정책이 도입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도 변함없이 대한민국 스포츠는 세계무대에서 스포츠 강국의 위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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