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최진범 (스포츠둥지 기자)
‘스포츠 공화국’은 기본적으로 군사정권 체제 역량의 바탕아래 진행된 교육정책과 몇몇 핵심 지도자들의 스포츠와 관련된 일련의 경험, 체육관 등이 반영된 제3공화국 스포츠·체육 정책에 의해 탄생한다. 실제 당국(제3공화국)은 체육 행정의 개편 및 강화 방안을 마련하고, 국민체육진흥법을 공포하는 등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국가 엘리트 스포츠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한편, 몬트리올 올림픽 당시 레슬링 코치였던 본 재단의 정동구 이사장은 청와대 귀국보고회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엘리트 스포츠의 중요성과 체육대학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그 해 말 대통령령으로 한국체육대 설립근거가 마련됐다.
따라서 본 호에서는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 당시 ‘대표적인 체육 지도자’를 사례로 삼아 국가 및 사회체육에 마련된 제도와 기구에 대한 기원과 정착 과정을 살피는 한편, 그 역사적 의의와 한계까지도 면밀히 검토해 보고자 한다. 다음은 본 재단의 정동구 이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정동구 이사장이 전하는 그때 그 시절!>
체육인재육성재단 정동구 이사장 ⓒ 최진범
당시 제3공화국이 수립한 스포츠-체육 정책의 기본 요소들은 여러 방면에서 최근까지도 우리나라 스포츠-체육 정책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즉 ‘국가가 전적으로 관리하고 지원(과거~현재)’하는 엘리트 스포츠의 측면에서, 과거와 어떤 공통점 및 차이점이 있나요?
제3공화국에 들어와서 ‘체력은 국력이다’라는 마인드로 정부는 ‘국민체력 고취’를 위한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1963년 국민체육진흥법을 제정하여 직장체육, 학교체육, 엘리트체육 등 분야별 정책 및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획득했고, 엘리트 스포츠의 중요성과 체육대학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가운데, 그해 말 대통령령으로 한국체육대가 설립됐다.
한편, 그 당시 엘리트 스포츠는 일종의 ‘애국운동’이었으며 사실 이 같은 스포츠 애국정신은 해방 전후부터 이어져왔던 우리나라 특유의 민족성에 기인한다. 1936년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하며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됐고, 1947년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서 서윤복씨가 또 다시 우승하면서 당시 세계 각국의 UN대표들에게 대한민국을 각인시켰다. 이처럼 우리나라 스포츠·체육은 개개인의 건강과 행복추구에 앞서 국가와 조국을 위한 애국정신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물론, 제3공화국 시대에 시행된 스포츠-체육 정책과 구축된 제도가 정치 의존적 스포츠의 부정적 유산을 낳기도 했으나 최근 프로스포츠 승부조작 및 파벌싸움, 선수담합 등의 문제로 얼룩진 국가 스포츠의 현 상황에서, ‘제3공화국의 스포츠 애국정신’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의 첫 금메달.
무려 13년 만에 이룩한 쾌거인데, 당시 상황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알고 싶습니다.
‘무중생유(無中生有):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다!’
정부의 관련 인프라 지원이 매우 열악한 가운데, 4년 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여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4~5개 대학에서 훈련을 했고, 겨울에는 미국에서 훈련과 시합을 병행하는 등 선수 및 코치진 스카우트에서 외국교류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모든 과정을 독자적으로 수행해 나갔다.
한편, 세상일이란 것이 운도 있겠지만, 그에 따른 피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 당시의 일념은 이후 내 삶 가운데, 큰 원동력이 됐다. 즉, 아무리 어려운 여건이라도 포기하거나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시대는 바뀌었지만, 그때 그 정신만큼은 현재 국가체육인재육성을 위한 나의 확고한 신념이기도 하다.
엘리트 스포츠의 산실(産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그곳 ⓒ 최진범
무중생유(無中生有)에 기인한 스포츠 애국정신.
현재 우리 스포츠인들이 지녀야 할 스포츠 정신은 정확히 무엇인가요?
이는 곧 ‘스포츠맨십(Sportsmanship)’을 의미한다. 최선을 다하는 것, 정정당당해 지는 것, 심판 판정에 복종하는 것. 사실 스포츠맨십의 내용은 일반 시민사회의 덕이었던 ‘젠틀맨십(Gentlemanship)’과도 같은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건전한 스포츠 정신 함양은 체육인에서 체육인재로 도약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기재로 작용할 것이다.
최근 국민체육진흥공단(KSPO)에서는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금메달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대표팀의 경기력 향상과 사기 진작의 일환으로 은메달, 동메달리스트의 연금 점수를 대폭 올렸습니다. 한편, 제3공화국 당시에도 각 종목에서 업적을 이룬 선수들의 보상이 상당했는데, 국가 엘리트 스포츠 진흥에 있어 이러한 ‘체육연금 및 병역특례’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당시 혁명정부는 1973년 ‘병역의무의 특별규제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고, 대한체육회는 이듬해 국제 대회 입상 가능자의 병역 면제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또한 1974년부터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에 대한 ‘종신연금’ 계획을 확정하여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사실 그동안 엘리트 스포츠선수에 대한 연금 및 병역특례에 대해 상당히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영국이나 미국 같은 200년 역사의 민주주의 강국들과는 분명 다르다. 해방 직후 얼마 안 있어 민족전쟁을 치렀고, 이후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기 위해 국민 모두가 피나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 같은 제도와 관련해서 당시의 문화적·사회적 분위기는 한국 스포츠계에 커다란 애국적 동기를 불어넣어 사회 통합 및 국민의 용기를 고취하게 하는 실질적 계기가 됐다.
따라서 이러한 스포츠의 다양한 사회적·문화적인 영향의 여파가 현대 사회에서도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국위 선양에 기여한 사람들에 대한 대우는 당연한 것이다.
현재 엘리트 스포츠가 지향하는 스포츠·체육인의 인재상은 분명 과거와 다릅니다.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제3공화국 스포츠-체육정책은 대내적으로 국민 총화의 실현, 경제 발전을 위한 성장 동력을 마련하는 가운데 대외적으로는 국위 선양과 스포츠 외교를 지향했다. 이처럼 스포츠·체육 자체가 가지는 정치적·사회적 파급효과가 매우 컸기에 결과적으로 기록-성적만능주의를 생산했고, 그에 따른 경제적 보상과 사회적 명상이 스포츠의 순수한 이념과 정신이 비운 자리를 대체하는 수단이 됐다.
그러나 21세기 정보화 시대의 한국형 체육인재는 ‘공부하는 선수, 운동하는 일반학생’을 지향하는 가운데, 스포츠의 글로벌화를 인식하고 통합성에 기초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급격히 변화하는 스포츠 현상에 창조적으로 도전하며, 올바른 인성과 리더십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글로벌 역량의 체육인재를 의미한다.
한편, 이러한 의미에서 현대 스포츠의 흐름은 점차 ‘부국강병(나라가 부유하기 위해선 강한 군대가 필요하다)’정책에서 ‘건민부국(국민이 건강해야 나라가 부유하다)’정책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이는 곧 스포츠·체육의 전문화와 대중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엘리트 스포츠의 산실(産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그곳 ⓒ 최진범
긴 세월동안 엘리트 스포츠와 함께 격동의 역사를 지내오셨는데, 혹시 개인적으로 아쉽거나 후회되시는 부분이 있나요?
제3공화국의 스포츠-체육정책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스포츠·체육이 가지는 영향력은 실로 엄청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체육전공자들은 전문가 대접을 못 받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세계 속 스포츠 강국으로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체육인들이 전문가 그룹으로 대접받아야 할 것이다.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 문화의 재생과 부활’을 의미합니다.
본 재단이 지향하는 <스포츠 르네상스>의 의미는 정확히 무엇인가요?
기본적으로 르네상스란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에 일어난 문예부흥운동을 말한다. 여기서 문예부흥이란 구체적으로 14세기에서 시작하여 16세기 말에 유럽에서 일어난 문화, 예술 전반에 걸친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재인식과 재수용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르네상스는 혁명이나 쿠데타가 아니다. 즉, 이는 중세 암흑시대 동안 파괴됐던 인간의 존엄성을 고대 문화 재현을 통해 다시 회복하는 자연스러운 시대적 정신운동인 셈이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스포츠 르네상스>란 스포츠 강국에서 ‘스포츠 선진국’으로의 회복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단순한 메달 획득을 통한 국위선양을 넘어 스포츠·체육이 가지는 잠재력과 비전을 파악하고, 국민 모두가 스포츠·체육을 통해 건강한 심신을 단련하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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