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성수 (스포츠둥지 기자)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 다양한 구기종목 선수들에게서 볼 수 있는 등번호. 초창기엔 선수들의 등번호는 단순히 포지션을 구분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축구를 예로 들면 1번은 골키퍼, 2번부터 4번까지는 수비수, 5번부터 9번까지는 미드필드, 10번과 11번은 공격수, 이런 형태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이 점차 약해지고 등번호에 대한 제약이 사라지면서 선수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등번호를 달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선수들은 자신들의 등번호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또 다른 동기부여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또 최고의 스타들의 등번호는 선수의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많은 팬들의 뇌리에 각인되기도 한다. 이렇듯 중요한 등번호. 그렇다면 선수들은 등번호를 정할 때 어떤 것들을 고려하는지 알아보자.
1. 자신이 존경하거나 롤모델로 삼고 있는 선수의 등번호를 따라하는 선수들
운동선수들은 보통 자신만의 롤모델이나 존경하는 선수가 한명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몇몇 선수들은 자신의 롤모델의 등번호를 따라하면서 존경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프랑스의 축구스타 티에리 앙리는 국가대표팀에서 12번을 달았는데 이는 자신이 존경하는 마르코 반바스텐의 등번호가 12번이어서 자신도 12번을 선택했다. 토고의 아데바요르는 나이지리아 출신의 공격수 은완코 카누의 열렬한 팬이라 카누가 국가대표팀에서 달았던 4번을 달고, 독일월드컵에서 우리나라와 맞붙기도 했다. 아데바요르는 아스날에서 뛴 적도 있는데, 그가 아스날 에서 달았던 25번은 과거 카누가 아스날 소속 시절 달았던 번호다. 메이저리그 유일의 400홈런-400도루를 달성한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강타자 배리 본즈는 24번을 좋아했다. 그가 어린 시절 자신의 대부인 전설적인 선수 윌리 메이스의 등번호가 24번이었기 때문이다. 배리 본즈는 리틀야구 때부터 24번을 달았고,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입단하며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을 때 7번을 배정받았지만, 당시 24번을 달고 있던 대니 곤잘레스의 번호를 반강제로 빼앗기도 했다. 그가 얼마나 24번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이적한 후에는 24번을 달 수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구단이 윌리 메이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4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한 탓이다. 결국 본즈는 25번을 달았고, 자신의 대부였던 윌리 메이스에 버금가는 활약을 보여줬다.
2. 과거 영광스러웠던 시절. 번호를 달고 뛰는 선수들
몇몇 선수들은 과거에 영광스러운 경험이나, 좋은 기억을 갖고 있던 시절의 등번호를 달고 뛰기도 한다. 현재 부산의 수비수인 박용호는 FC서울 소속 시절 15번을 달았는데, 이는 그가 부평고 시절 전국대회 3관왕을 거두었을 때 달았던 번호라 15번을 다시 선택했다. 그가 좋아하는 번호는 4번이고, FC서울에서 4번을 유지했지만, 팀의 우승을 위해 우승 기억이 있는 15번으로 바꾸었고, 결국 2010년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등번호 변경의 효과를 봤다. 두산베어스의 오재원도 2010년 등번호를 7번에서 53번으로 바꾸었다. 오재원의 53번은 야탑고 시절 달았던 번호로, 당시 13명에 불과했던 야구부를 이끌고 봉황대기 8강에 진출한 기적을 보인바 있어, 53번을 다시 선택했다.
3. 오랫동안 사용하다 보니 익숙해져서 계속 같은 등번호를 사용하는 선수들
모든 선수들이 등번호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등번호를 선택했고, 그 번호가 익숙하거나, 그 번호를 달고 플레이가 잘되었던 경험이 있다면, 특정 번호를 계속 유지하는 선수도 있다. 현재 볼튼원더러스에서 뛰고 있는 이청용은 27번을 달고 있는데, 이는 FC서울 소속시절에도 27번을 달고 좋은 모습을 보인 바 있어, 이 번호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사실 이청용도 27번엔 큰 의미가 없다고 했고, 27번도 축구선수에게 선호되는 번호는 아니지만, 이청용은 27번을 달고 FC서울을 준우승으로 이끈 적 있고, 당시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되었기에 27번을 유지중이다. FC서울의 왼쪽 수비수인 현영민도 프로에 들어와서 13번을 달고 줄곧 뛰었기에 현재도 13번을 뛰고 있고, 상주상무의 최효진 역시 같은 이유로 2번을 고수하고 있다. 코리언특급 박찬호도 LA다저스 입단 당시 어릴 때부터 달았던 16번을 원했지만, 투수코치가 16번을 달고 있어 16번을 뒤집은 61번을 선택했는데 그 번호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덕분에 박찬호 하면 61이라는 숫자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었다. 이렇게 같은 번호를 유지하는 건, 팬들에게 특정선수=특정번호 라는 공식이 성립될 수 있어, 팬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4. 기타. 등번호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선수들
첼시의 주장 존테리의 등번호 26번은 첼시의 전설적인 선수인 이탈리아 출신의 지안프랑코 졸라를 뛰어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졸라의 등번호가 25번이었기에 존테리는 그것보다 1이 더 높은 26번을 선택한 것이다. 프랑스 출신의 레프트백 비센테 리자라쥐는 바이에른 뮌헨 시절 69번을 선택했다. 이는 자신이 1969년생이고 169cm, 69kg여서 69가 자신의 운명의 숫자라고 생각한 탓이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FC서울에서 활약했던 포르투갈 출신의 미드필더 히칼도는 50번을 달고 뛰었는데 이는 자신의 두 아들의 생일의 일수인 27과 23을 합한 숫자라고 한다. 한때 NBA의 득점기계로 불렸던 앨런 아이버슨은 등번호 3번을 선호했다. 이유는 아이버슨이 굉장히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당시 첫 농구교습을 받았을 때, 3번이 적힌 셔츠를 받았고, 그때 불우했던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3번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등번호를 보면 이렇게 많은 사연이 숨어있다. 우리는 등번호를 통해 그 선수의 과거 모습이나, 번호에 얽힌 다양한 스토리를 살펴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팀 내에서 특정번호를 두고 선수들이 다툼을 벌이는 경우도 존재한다. 올해 피츠버그에 입단한 투수 AJ버넷은 자신이 원하는 34번을 대니얼 매커친이 달고 있자, 2만 달러를 주고 그 번호를 양보받기도 했다. 이는 선수들이 얼마나 등번호를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아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젠 등 뒤에 있는 단순한 번호가 아닌, 선수들의 스토리가 녹아 있는 등번호. 선수들의 등번호에 숨어있는 의미를 알아보는 것도 스포츠를 보는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 스포츠둥지
'스포츠둥지 기자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제는 말 할 수 있다: 제3공화국 스포츠-체육정책, 엘리트 스포츠의 비화!” (0) | 2012.07.27 |
---|---|
국가대표 음주파문, 태극마크의 무게가 가벼워졌을까? (2) | 2012.07.26 |
스포츠직업탐구 2편 - 경기장 지키미, 안전요원 (0) | 2012.07.25 |
스포츠 직업탐구 1편 – 응원단 북돌이 (0) | 2012.07.25 |
짜릿한 스파이크의 재미와 훈남 선수들이 한 자리에? (0) | 2012.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