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체육에의 요구
물론 이 두 철학은 신체적, 정신적 가치를 모두 추구하지만, 주와 종, 선과 후가 무엇이냐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것이다. 학교체육의 가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이 두 철학의 사이를 오고가며 운동을 반복해왔다.
한 때는 신체적 가치를, 한 때는 정신적 가치를 더욱 강조하면서 지난 동안을 보내왔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신체를 통한 교육으로서의 체육이 강조되면서 전인교육의 통로로서 학교체육의 중요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부각시켜 왔지만, 가장 최근에는 사회가 변하고, 생활이 변하고, 모든 것이 급격히 바뀌게 되면서, 학교체육에 대한 변화의 요구가 급격히 번지고 있다.
활동적 생활스타일
최근 들어 가장 강력하게 요청되는 것은 학교체육이 성인이 되었을 때의 건강과 활기찬 삶을 위한 준비기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학계와 운동생리학 전문가들은 성인으로서의 삶이 의미있고 건강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생활의 스타일이 신체활동을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이끌어내야 한다고 한다. '활발한 생활방식'(active lifestyle)의 습관을 몸에 익히도록 해주어야 하고, 또한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은 바로 학령기라는 것이다.
최근의 이론에 따르면 활발한 생활방식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체력(physical fitness)보다는 활동(physical activity)이 더 근본적인 중요성을 갖는다고 한다. 그래서 근력과 지구력을 위한 엑서사이즈만이 강조되던 방식에서 벗어나, 일상생활 속에서 다양한 신체활동을 충분한 강도로 활달하게 지속적으로 행해주는 기초습관과 기술을 키워주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요구는 “신체의 교육” 철학의 가장 최근 버전이 분명하다. 신체적인 측면(이전에는 체력이었으나 지금은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학교체육에서 집중적으로 길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포츠 문화에의 입문
다른 한편으로, '신체를 통한 교육' 부류에 속하는 최근 주장도 당연히 있다. 이것은 학생들을
스포츠문화에 올바로 입문시키는 기회로 학교체육의 지향점을 삼는 것이다. 스포츠문화에의
입문이란 복합적인 의미가 들어있다. 스포츠문화는 스포츠라는 게임 활동이 만들어내는 직접적,
간접적 문화현상들을 모두 포함하여 말한다.
스포츠 게임만이 아니라 스포츠를 내용으로 하는 패션, 디자인, 영화, 음악, 미술, 건축, 문학, 종교 등
모든 문화 활동과 현상들을 총망라한다. 예를 들어, 축구에 입문한다는 것은, 축구게임 자체만을
잘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축구에 관련된 영화, 음악, 건축, 문학, 미술, 패션 등의 모든 문화
활동들을 다양하게 체험해봄으로써 축구를 입체적, 총체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문화로서의 스포츠 활동을 체험하고 그것에 입문해야하는 이유는 총체적으로 스포츠를 체험하는
것이야 말로 스포츠를 제대로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운동기능을 숙달하고 게임만을
잘 하는 것으로는 스포츠를 부분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알게 되는 것은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며, 제대로 아는 것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좋은
효과들을 모두 얻지 못하게 되는 부작용이 생긴다. 단순 게임 활동이 아닌 문화로서의 스포츠
활동에 입문하게 되면, 그 사람(학생)은 문화 활동 속에 담긴 좋은 것들을 습득하게 되며 그를
통하여 참 좋은 사람(전인, whole person)으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인 Alasdair McIntyre는 인간의 활동 가운데 '실천전통'(a practice)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부류의 것들이 있으며, 이 실천 활동들은 그 안에 내재된 가치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실천전통에 입문하는 것이 교육의 주된 목적이고, 입문한다는 것은 바로 그 내재된 가치들을
몸과 마음속에 체득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실천전통에 속하는 한 가지가 바로 스포츠 활동이며,
실천전통의 가장 가까운 형태로 우리 앞에 주어진 스포츠의 모습이 바로 문화 활동으로서의
스포츠인 것이다. 게임시합은 실천전통의 편린에 불과하다.
현대사회에서의 학교체육의 가치
현대사회 속에서 교육의 기회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온라인 교육이 일반화되고 대안 교육적
방안도 많고, 사회교육기관도 무수하며 학원도 부지기수이다. 배울 수 있는 통로가 무척이나
다변화되었다. 학교가 모든 학습의 최고 원천 역할을 하던 이전 시대와는 완전히 달라졌으며,
이런 상황 속에서 학교교육에 대한 기대는 점차로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학교체육의 현실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학교 안에서 제공되는 체육의 양과 질은 학교 밖에서
체험할 수 있는 체육의 양과 질에 비해서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교육과정에서 제시하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한정된 시간에 별로 흥미 없는 내용을 가지고
무서운 선생님이 가르치는 체육수업을 좋아할 학생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반면, 체육관이나 스포츠센터에서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다정한 강사선생님이 즐겁게 가르쳐주는
생활체육 활동은 너무도 하고 싶어진다.
학교체육은 사회의 변화, 생활스타일의 변화, 학생특성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그러한 변화는 물론 활발한 생활방식의 습관화를 위하는 것으로 초점이 잡혀야 할 것이다.
기존의 체력 단련과 기능훈련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방식, 즉 “신체의 교육”의 고전적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신체의 교육의 중요한 측면을 받아들여야만 하며, 새로운 시대적 요청에
맞도록 그 측면을 강조해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 학교체육은 스포츠문화에의 입문이라는 시대의 요구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스포츠 문화에의 올바른 입문을 통하여 보다 나은 사람, 보다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발견과 자아실현을 위한 중요한 매개체로서 학교체육의 역할을
강화시켜야 한다. 이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할 때, 학교체육은 교과의 하나로서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학생을 전인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교육의 주요 목적이라고 할 때, 체육교과는
신체활동을 통하여 그 일을 하는 교과이다. 그럼으로써 “신체를 통한 교육”으로서의 학교체육의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게 된다.
두 가치의 통합적 성취
지금 우리의 학교체육은 이 두 가지 어려운 일을 모두 해내야만 되는 힘겨운 상황에 놓여져 있다.
신체의 교육과 신체를 통한 교육, 이 두 지향점 모두를 성취해내야 하는 험난한 지경에 처해 있지만,
사실 이런 어려운 지경에 있었던 것이 이번만은 아니다.
가만히 되돌아보면, 학교체육은 기원전부터 바로 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실현해내야만 하는
어려운 일을 도맡았다. 때로는 성공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또 다시, 이 일을 명백히 해내야만 하는 그러한 시점에 와있다.
현대사회에서 학교체육이 당면하고 있는 분명한 당면과제이다. 활발한 생활방식과 스포츠문화에의
입문, 신체의 교육과 신체를 통한 교육, 이런 두 가지 학교체육의 가치를 통합적으로 성취해내는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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