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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학교폭력의 해독제, 하우스 매치



글/하남길(경상대학교 교수)

                                                      학교스포츠의 요람, 럭비스쿨


최근 학교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교과부나 여러 교육당국자들은 다양한 해결책을 찾고 있다
.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학교 폭력의 원인이 복잡한 사회 현상에 기인하기 때문에 뚜렷한 해결책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육의 역사를 보면 중요한 해결책 중 하나가 보인다. 학교 스포츠의 활성화이다. 19세기 잉글랜드 명문 사립중등학교에서는 학교 폭력이나 집단 괴롭힘과 같은 병적인 현상의 처방제로 기숙사 동별 운동경기, 하우스 매치(House Match)를 도입했고, 그러한 실험이 성공적이라는 평가에 따라 학교 스포츠 보급과 장려 운동이 시작되었으며, 그것이 곧 학교 스포츠의 역사이다.

학교 폭력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어느 시대 어느 학교나 존재했다. 19세기 이전부터 잉글랜드의 퍼블릭 스쿨(public School)로 불린 상류층 중등교육기관에도 학교 폭력, 폭동, 집단 따돌림 등이 문제였다. 오늘날 이튼, 해로우, 럭비, 웨스트민스터 등과 같은 명문 중등학교의 전신인 19세기의 퍼블릭 스쿨은 사실상 사립 체계로 된 독특한 교육기관이었으며, 대부분의 학생들은 기숙사(house) 생활을 하며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교육과정은 라틴, 그리스 고전(古典) 중심의 매우 경직(硬直)된 틀에 묶여있었다. 오늘날 입시교육에 시달리는 우리 학생들과 다를 바 없는 상황에서 교사들이 갖는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가 학생 생활지도였다. 욕구의 분출구를 찾지 못한 부잣집 아이들은 막강한 자치권을 확보하고 교사의 지시에 정면으로 도전했고, 학교 폭동까지 일으켰다.

퍼블릭 스쿨의 교장들은 학생 조교제도, 프리펙트 패깅 시스템(prefect-fagging system)을 가동하여 생활 지도를 했지만 학생들은 교사의 눈을 피하여 동료나 후배를 괴롭혔다. 그러한 상황에서 고민하던 교사들은 각종 스포츠의 참여가 난폭한 학생들의 정서 순화에 도움이 되리라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 19세기 초반까지 크리켓이나 축구의 참여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여가활동으로 교사들이 묵인하는 정도였으나 1840년대부터 말보로, 어핑엄과 같은 학교를 필두로 스포츠를 비행 청소년의 탈선을 방지하는 묘약으로 인식하고 장려하기 시작했다. 스포츠를 탈법적인 행동의 보상 기제, 즉 파괴주의의 해독제로 생각했던 것이다.

19세기 잉글랜드에서 학교에 스포츠를 도입하고 장려한 일은 토마스 휴즈의 자서전적 소설 톰 브라운의 학창시절을 통해 잘 엿볼 수 있다. 럭비 스쿨의 실존 인물을 배경으로 쓴 이 소설에는 크리켓, 풋볼 등의 하우스 매치가 등장한다. 럭비 스쿨의 교사 코튼(G. E. L. Cotton)선후배가 뒤섞인 기숙사 동별 팀을 구성해 경기에 참여시킴으로써 단체정신(team sprit)과 결속력을 이끌어내고, 책임, 협동, 희생, 봉사 등과 같은 엘리트의 자질 함양을 시도한다. 페어플레이, 정정당당한 승부 정신 등과 같은 신사정신도 길러주려 했다. 그것이 곧 스포츠맨십이었다. 그러한 역사를 통해 스포츠가 탄생되기도 했다. 럭비 스쿨의 축구가 오늘날의 럭비풋볼이며, 이튼, 해로우 스쿨 방식의 축구가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전해져 새롭게 탄생한 것이 케임브리지축구(Cambridge rule football)이며, 그것이 더 발전하여 오늘날의 축구(soccer)가 되었다.

19세기 잉글랜드 퍼블릭 스쿨의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교장들은 학교 스포츠의 활성화가 학생들의 파괴적인 경향성을 정화시켜줄 뿐만 아니라 건강 증진과 행복 지수 높이기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대교경기(對校競技)까지 장려하게 되었다. 교육자들은 책임감, 희생정신이 강한 남성상을 상징하는 강건한 기독교주의라는 교육 이데올로기를 숭상하며 학교 스포츠를 강화했고, 그러한 전통이 프랑스, 미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자연히 학교에 운동장이 생겨났고, 오늘날까지도 선진국에서는 학생들의 과외 스포츠 활동 인프라 구축에 많은 재원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현재 활성화되어 있는 선진국의 학교 스포츠 정책은 학교 폭력이나 집단 따돌림을 방지하기 위해 생겨난 하우스 매치에 기원을 두고 있는 셈이다. 스포츠가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학교 폭력 문제로 고민하는 교과부나 여러 교육당국자들이 이러한 잉글랜드 스포츠 교육사를 한번쯤 되새겨보면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을 법하다(hng5713@g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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