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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원

210 200 90 42 21 13, 숫자에 담긴 땀과 눈물




글/이철원(前 한경닷컴 엑스포츠뉴스 기자)




[체육인재육성재단, 테네시 = 이철원] 꽤 오래전, 대한체육회에서는 올림픽과 같은 메이저급 국제대회에서 입상이 유력한 종목을 우선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우선지원 대상으로 뽑힌 10여 개의 종목은 기존의 입촌 기간인 90일을 훌쩍 넘겨 210일까지 선수촌에서 훈련을 받을 수 있으며, 메달 유력 종목이 아닌 경우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면 올림픽을 앞두고 우선지원대상 종목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엘리트 스포츠가 세계정상권과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ep1. 대표팀 훈련 중 부상을 입고 선수촌에서 퇴촌한 유망주가 있다. 전문적인 재활치료를 받을 환경이 여의치 않아 무작정 선수촌 앞으로 와서 연맹 담당자에게 선수촌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연락을 했다. 연맹 담당자가 선수촌에 문의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현 국가대표가 아니기 때문에 안 됩니다."였다. 담당자가 "저희 유망주인데..."라며 부탁을 했더니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단다. 일단 추위에 떨며 무작정 기다리고 있는 선수를 숙소로 돌려보내고 다시 선수촌에 전화했더니 "그 종목은 런던 올림픽 티켓도 못 땄다면서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담당자가 유망주 선수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미안하다는 문자밖에 없었다. 정해진 훈련 일수가 삭감된 데 이어 남은 훈련일수마저 취소당했다는 그 종목.

ep2. 예전에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이 시즌 도중 선수촌에서 쫓겨나 인근 태릉장 이라는 허름한 모텔로 숙소를 옮긴 적이 있다. 다가오는 국제 시합을 앞두고 메달이 유력한 종목 선수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처사였다고 했다. 이규혁 선수 역시 태릉장에 짐을 풀었어야 했다. 그리고 그 허름한 모텔에는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게 될 이강석 선수와 나를 비롯한 주니어 선수들이 이미 합숙을 하고 있었다. 선수들은 매일 아침저녁 두 번씩 장비를 짊어진 채 태릉선수촌 국제빙상장까지 일반버스를 타고 이동했으며, 식사는 인근 식당에서 가격 제한이 걸려있는 메뉴로 끼니를 때웠다. 돌솥 비빔밥 한 그릇 정도 먹을 수 있었던 식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심지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빵빵' 따오던 쇼트트랙 대표팀에게 나오는 패딩점퍼까지 우리에겐 비교대상이었다.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에서 김윤만 선배가 은메달을 딴 이후 침체기였던 스피드스케이팅은 그렇게 차가운 겨울을 보냈어야 했다. 그때도 분명 대한빙상경기연맹의 직원 분들은 선수들에게 더 못해주는 안쓰러움에 가슴 아파하셨을 거다.

시간이 지나 2011, 그 누구도 스피드스케이팅을 홀대하지 않는다. 눈물 젖은 빵을 곱씹으며 올림픽 금메달을 3개나 따냈기 때문이다. 진작에 선수촌에서 좋은 대우를 해줬다면 우리 동료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는 시간이 단축되지 않았을까.

태릉선수촌에는 42개 종목 대표선수들의 입촌이 가능하다. 하지만, 훈련장은 21개 종목에만 한정되어 있다. 현실은 더욱 냉혹해서 현재 선수촌에 입촌해있는 종목은 13개 종목, 210여 명의 선수뿐이라고 한다.

가슴에 태극 마크를 달고 싶어 어린 시절부터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나머지 종목, 수백 명의 선수는 오늘도 배고픔을 곱씹으며 어딘가에서 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사진 (c) 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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