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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학교체육 ]

체육과 교육과정의 이상과 현실

 

글/김기철(한국교육과정평가원)

 

Ⅰ. 패션쇼와 체육교육과정

나에게 그리 관심 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가끔씩 TV에서 볼 수 있는 유명 디자이너들의 패션쇼를 보고 있으면 다소 냉소적인 웃음이 나온다. "피, 저런 옷을 어떻게 입고 다니지..?" 세상 사람들에게 온갖 칭송과 찬사를 받는 옷이지만 누군가 나에게 '저런 옷들을 입고 거리에 나서보라'고 권한다면 손사래를 치며 도망을 칠 것 같다. 한 마디로 현실적이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다분히 미래지향적이고 시대를 급속하게 앞서나가는 옷들도 언젠가는 현실의 생활 속에서 입혀질 수 있다는 전제하에 만들어 진다고 하니 그리 유난법석을 떨 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실제로 요즘 유행하는 옷들도 불과 몇 년 전 어느 패션쇼에 등장했을 때 무척이나 쇼킹하고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법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 체육과 교육과정이 또 다시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볼 때 정식으로 공포된 것은 아니지만, 이곳 저곳 이런 내용 저런 내용들이 상당부분 많이 바뀌어 가고 있는 듯하다. 여러 차례 심의회와 공청회를 거치면서 다듬어 지고 있는 중이지만 현장에서 바라볼 때 실제적인 구현이 어렵다고 생각되는 극히 이상적인 점들도 다소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이번 개정 때뿐만 아니라 항상 새로운 교육과정의 개정이 이뤄지는 시점에서는 반복적으로 나왔던 논란이었던 것 같다. 즉, 체육교육학자들의 눈은 항상 우리 체육교육의 높은 이상(理想)을 지향한다. 그리고 다소 무리수가 있더라도 그것을 위해 이론을 정립하여 체계화하고 글을 적어 문서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교사들의 눈은 우리 체육교육의 현실을 수평적으로 바라본다. 때문에 현실에서 벗어난 또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교육과정을 바라보며 비판하려 하고 심한 경우는 철저하게 외면해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듯 심하게 벌어진 눈높이 차이로 인해 정상적인 체육교육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이내 양자간은 '타협과 절충'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고 결국 새로운 교육과정을 구현해 낸다.

이러한 흐름은 앞 부분서 말했던 패션쇼의 흐름과 비슷한 것 같다. 지극히 이상적이고 시대를 앞서 가는 듯 하지만, 그래서 현재의 상황에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어 지지만 종국에는 이것들이 미래의 패션계를 이끌고 갈 첨단의 유행상품이 되듯이, 교육과정의 개정 때마다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이라고 비판을 받으면서 등장하는 새로운 체육 교육과정들도 차후 우리 체육교육의 미래를 책임질 소망스런 아이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Ⅱ. 백조와 미운오리 새끼

비단 위에서 제시한 패션쇼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그것에 높은 비중을 두는 것 같다. 교육이라는 행위자체가 과거의 것을 기본으로 하여 새로운 것을 더해가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이것은 과거의 내용을 무조건 존속시키고 유지하라는 의미가 아니라고 본다. 즉, 과거의 것을 참고로 하여 항상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개선해 나가라는 의미일 것이다. 결국, 선현들이 강조했던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사상과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이 바로 교육행위의 근본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담당하는 체육교육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과거의 방법이 좋다고, 또는 과거의 내용이 좋았다고 무작정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비록 새로운 것이 낯설고 당장 적응하기가 어렵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조정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려는 참된 교육자적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체육 교육과정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이상(理想)적 내용들은 처음에는 자신이 갖고 있는 비 현실성과 낯설음 때문에 온갖 구박과 비판을 감수해야 하지만 결국 그것이 현장의 부단한 노력과 용기 있는 시도로 인하여 실제로 구현되었을 때,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백조의 실체를 간직한 미운오리 새끼'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이러한 어린 백조를 아름다운 백조로 키울 것인가, 아니면 그냥 미운오리 새끼로 오해하여 그대로 방치할 것인가는 바로 현장의 몫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Ⅲ. 숙성(熟成)된 기다림

이렇듯 체육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이상(理想)을 그저 막연함으로만 접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너무 쉬운 과정으로 경시해서도 아니 될 일이다. 그것은 바로 체육교육과정의 이상 구현은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이 공포된 즉시, 현장의 모든 교사들이 교육과정의 기본철학과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바람직한 수행을 행할 수 있다면 정말로 행복한 일이겠지만, 그것이야 말로 진실로 이상적인 것이기에 실현되기가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처음에는 너무나 낯설고 힘들어하며 온갖 시행착오를 겪어 나가는 것이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이러한 시련의 단계를 거치고서 조금씩 조금씩 다듬어지면서 단련되어 가는 진정으로 교육과정의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생각한다. '예부터 교육을 100년지 대계라 하지 않았던가' 적어도 한 세대는 자신의 세대에 헌신적으로 투자한 결실을 보지도 못한 채 이 세상을 떠 날 수 있다는 말이다. 결국 앞 세대의 이러한 헌신과 투자는 그 다음 세대에나 가서 성과로 거둬들일 수 있는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 바로 교육인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 너무 성급하게 모든 것을 판단하려 했던 것 같다. 교사의 입장에선 새로운 체육 교육과정이 등장하면, 제대로 된 적용을 위해 필요한 노력도 안 해보고 무작정 '비현실적이고 현장을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외면하려고만 하였고, 학자들의 입장에선 '교육과정이 바뀐 지 얼마나 되었는데 아직까지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을 못하는가'라는 조바심 섞인 원망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젠 조금 더 여유를 갖고 기다리면서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보다 '숙성(熟成)된 기다림'이 필요한 것이다.

Ⅳ. 수레의 양바퀴

그 동안 체육교육과정 문서가 추구하는 이상과 학교 현장의 괴리는 항상 좁혀질 수 없는 고질적이고 만성화 된 것 이라는 인식이 팽배하였다. 그리하여 그것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글들은 교육과정의 개정 시기 마다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음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과 질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체육교육과정은 계속해서 새로운 이상을 모색하고 추구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당장 실현 불가능한 것이어도 좋다. 또한 현장의 실태를 어느 정도 고려하지 못한 것이어도 상관없다. 오히려 그러한 이상적인 내용이 향후 우리의 체육교육 현장이 진정으로 추구해 나가야 하는 미래의 청사진 이라면 용기를 가지고 과감히 추구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한 새로움에 대한 추구와 용기가 없다면 우리 체육교육이 항상 똑 같은 수준을 답습하는 '제자리걸음'을 걸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현장에서 교육과정을 구현해 나가는 교사들 입장을 백 번 고려하여 충분한 기다림의 여유를 갖는다면 교육과정의 성공적인 구현을 위해 절대적인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체육교육과정이 갖고 있는 '이상'과 학교현장의 '현실'은 절대로 좁혀질 수 없는 고질적인 극간이 아니라, 미래의 학교체육을 위해 '앞에서 이끌고 뒤에서 밀어주며 함께 나가는 수레의 앞 뒤 바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Ⅴ. 글을 마치며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제 새로운 체육 교육과정이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오랜 시간 거듭되는 연구와 회의과정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인고(忍苦)의 산물이자, 또한 미래의 우리 학교체육이 추구해 나가야 할 모습이기에 무척이나 소망스럽고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체육학자들의 몫인 교육과정의 '이상(理想)' 추구는 이루어졌으니 이제 나머지는 꾸준한 기다림으로 이를 완성해 나가는 단계를 거쳐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장의 몫이자 책무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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