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지성(한양대학교)
- Emirates Stadium과 San siro Stadium을 다녀와서 -
다사다난 했던 한해가 어느덧 저물어가고 있다. 올 한해를 되짚어 보면 즐거운 일도 많았고 아쉬운 일도 많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지난 여름은 뜨거운 날씨 만큼이나 가장 열정적으로 보낸 여름방학인것같다.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약 한 달간의 유럽 여행(7월 7일 ~ 8월 9일까지)을 위해 돈을 모았다.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루트를 짜고 여행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고단한 과정이었지만 여행을 다녀와서 돌이켜보면 자기 마음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며 계획을 짜던 그 때가 여행을 하던 순간만큼이나 행복했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외국의 명문축구클럽들이 실제로 위치해 있는 도시와 구장을 방문하는 것은 빼놓을 수 없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다시 가 보겠는가!하는 마음에 밤을 새워 웹사이트를 검색하고 안되는 영어를 해석했었다. 9월부터 5월까지 숨가쁜 일정으로 달려온 유럽의 축구리그들이 잠시 쉬어가는 여름, 클럽들이 어떻게 구장을 이용해서 수익을 내는지도 궁금했다. 여러 조건을 따져본 결과 영국 런던 북부에 위치한 Arsenal의 홈구장 Emirates Stadium과 이탈리아 밀라노에 위치한 San Siro Stadium을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TV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던 구장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영국, 프랑스, 스위스, 체코,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총 6개 나라를 거치는 여정에서 영국은 가장 처음으로 발을 내딛는 곳이었다. 인천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두바이를 거쳐 런던 히드로 공항에 내릴 때 지면과 점점 가까워지는 비행기 안에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축구장만 해도 여러 개였다.
내가 과연 축구의 본고장 영국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5일간의 영국 일정에서 Emirates Stadium을 찾은 것은 4일째, 프랑스로 떠나기 바로 전날이었다.
나는 티에리 앙리가 활약하던 중학생 때부터 아스날을 좋아해서 그 곳을 찾았지만, 시간에 여유가 있었다면 다른 구장도 둘러봤을 것이다. 런던에는 아스날 외에도 첼시, 토트넘, 웨스트햄, 풀럼 등 많은 명문클럽들이 소재해 있고 대중교통으로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곳에 구장들이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Emirates Stadium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가장 쉬운 방법은 지하철의 여러 노선 중에 피카딜리(Piccadilly) 라인을 타고 Holloway Road역에서 내리는 것이다. 한 정거장을 더 가면 Arsenal역이 있는데 여기서 내려도 찾아갈 수 있다. 원래 아스날의 홈구장이었던 Highbury Stadium이 Arsenal역에 가깝게 위치해 있어서 구단 이름을 따 역명을 Arsenal로 붙였는데 2006년부터 새 구장인 Emirates Stadium을 사용하게 되면서 Highbury Stadium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두 경기장은 걸어서 이동이 가능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고 찾아가기 쉽게 이정표도 잘 되어 있으니 아스날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정 모르겠으면 지나가는 사람들 중 아무나 잡고 물어보면 친절히, 매우 친절히 알려줄 것이다. 이 곳에 사는 사람들치고 아스날을 응원하지 않는 팬은 없을 것이다!
본래 나의 계획은 오후 2시 전까지 구장에 도착해 경기장 내부를 볼 수 있는 투어를 신청하고 여유롭게 구장 외관을 둘러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데다 초행길이니 당연히 헤멜 수밖에. 겨우겨우 Emirates Stadium에 입성하고 그 감격을 채 누릴 새도 없이 경비원을 찾았을 때가 2시 반이었다. 마지막 투어 시간은 3시!
불안한 마음으로 매표소를 찾았으나 나를 맞이한 건 “Sold out(매진)”이라는 팻말뿐이었다. 동행한 친구와 나는 한참이나 스타디움을 쳐다보며 허탈해할 수밖에... 경비원에게 직접 확인한 바로는 일반인이 투어와 경기입장 외에 경기장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한다. 이런 봉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스날 공식 홈페이지에서 예약(http://www.arsenal.com/emirates-stadium/stadium-tour)을 미리 해 놓고 적어도 투어 시작 30분 전에 경기장에 도착하는 것이 좋겠다.
투어 시작시간이 가까워오자 곳곳에서 모여드는 관광객들 중 2/3은 중국, 일본 등 아시아계였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이 왜 동양인 선수 영입에 열을 올리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유럽을 넘어 아시아의 축구시장까지 개척해나가는 명문구단들의 수익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을 것이다.
경기장의 남문 쪽 출입구는 비시즌을 맞아 보강공사가 한창이었다. 스타디움 옆에 위치한 별도의 건물에는 선수들의 소장품, 트로피 등이 전시되어 있는 Museum이 있었다. 아스날의 100년이 넘는 역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는 곳이다. 박물관을 훑어보고 나는 스타디움 내에 위치한 공식 기념품점인 ‘The Armoury’로 발걸음을 옮겼다.
본래 아스날이라는 팀명은 ‘병기고’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만큼 아머리라는 명칭이 썩 잘 어울리는 기념품점이었다. 널찍한 매장 안에는 기본적인 남성 유니폼 외에도 여성, 아동용 유니폼과 바람막이, 티셔츠, 패딩 점퍼 등 다양한 컬렉션이 구비되어 있었다. 축구화, 축구공 등 축구와 관련된 용품 외에도 DVD, 볼펜, 인형, 열쇠고리, 쿠션 등 별별 용품에 아스날 로고를 박아 판매하고 있었다. 특히 선수들이 직접 사인한 유니폼은 프리미엄이 붙어 잘 보이는 곳에 진열되어 있었다. 정말 좋아하는 선수의 사인이 담겨있는 유니폼은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충분히 구매할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많은 상품들이 철저하게 구매자 중심으로 편리하게 진열되었다는 것이다. 손이 닿기 쉬운 곳에 상품들이 위치한 것은 물론 거울과 가격표의 배치에도 많은 신경을 쓴 것 같았다. 입구에는 선수들이 실제 착용한 사진을 실은 카탈로그와 상품들을 담을 수 있는 바구니가 있어 구매의 편의성을 높였다.
또한 구매한 상품을 안심하고 환불, 교환할 수 있다는 보증 절차가 크게 게시되어있었고 집이 먼 사람들이나 외국 관광객들을 위해 현장에서 우편접수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구매한 바람막이는 55파운드로 우리나라 돈으로 하면 9만원 정도인데 우리나라 매장에서는 15만원 정도로 가격이 차이가난다. 수입되는 과정에서 중간유통경로가 더해지기 때문에 자연히 가격이 올랐을 것이다. 영국의 높은 물가와 환율을 감안했을 때 이 정도 가격이면 적당한 가격이라고 여겨졌다.
안쪽에는 구매한 유니폼에 바로 선수들의 등번호와 이름을 마킹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특이한 것은 한국과는 정반대로 유니폼 가격보다 마킹 가격이 더 비싸다는 점이었다. 유니폼과 마킹을 따로 하는 가격보다 마킹이 이미 되어있는 상태로 판매하는 유니폼의 가격이 더 싼 것을 보아 재량껏 자유로운 마킹을 받을 수 있게 배치해야하는 점원들의 인건비가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추측했다.
지갑이 마구 열리려고 하는 것을 겨우 참고 밖으로 나설 때쯤 투어를 마친 관광객들이 쏟아져들어왔다. 투어가 한시간 반 가량이니 기념품점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하게 시간을 보낸 셈이다.
비시즌에도 구장을 활용한 스포츠마케팅으로 쏠쏠한 부수입을 챙기는 아스날 구단이 부러웠다.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이탈리아 밀라노의 서쪽에 위치한 San Siro Stadium이다. 이 구장의 정식 명칭은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이탈리아어: Stadio Giuseppe Meazza)이지만 대부분의 팬들은 경기장이 위치한 지역의 이름을 따서 산 시로라고 부른다. 인터밀란 레전드의 이름을 따서 구장 이름을 지었기 때문에 인터밀란 팬들은 구장 이름을 그대로 부르고 AC밀란 팬들은 산 시로라고 부른다는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가 함께 사용하는 잠실야구장처럼 산 시로 스타디움도 한지붕 두가족이 사용하고 있다. AC밀란과 인터밀란이 바로 그 가족들인데, 항상 으르렁대는 두 팀간의 대결은 밀라노 더비로 불리며 세계 3대 더비로 손꼽힌다.
이탈리아는 유럽여행의 종착지이기도 하고 타는 듯한 태양이 작렬하는 기후이기 때문에 산 시로를 찾는 날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밀라노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M1라인에서 Lotto역에 하차하면 San siro로 향하는 이정표를 찾을 수 있다. 지하철역에서 경기장까지 꼬박 20분간을 걸어야했기 때문에 상당히 떨어져 있는 편이다.
경기장으로 향하는 길은 공사중이라 곳곳이 파헤쳐져 있고 먹다남은 맥주병이 뒹굴고 있는 길이었다. 담벼락을 채우고 있는 온갖 낙서의 뜻이 궁금해 사전을 찾아보니 음담패설과 욕설이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탈리아는 영국에 비해서 좋게 말하면 자유분방하고, 나쁘게 말하면 시민의식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도착한 산 시로. 엄청나게 큰 규모를 자랑하는 산 시로이지만 출구를 딱 한 곳만 열어놓아 한참을 돌아야 했다. 비시즌이라서 그런 듯 했다. 그나마 잔디공사로 입장은 불허하고 뮤지엄과 기념품점만 입장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투어를 예약할 수 있는 사이트(http://www.sansirotour.com/tour-eng.htm)를 방문해 보면 알겠지만 인터넷으로 예약이 불가능하고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서만 할 수 있어 외국인들이 이용하기엔 불편하다
남은 돈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아쉽지만 뮤지엄을 포기하고 기념품점을 돌아보았다. 내부에 들어서면 왼쪽은 인터밀란, 오른쪽은 AC밀란의 상품들이 놓여있는데 다 합쳐도 그 규모는 아스날 아머리의 1/5도 안 되었다. 상식적으로 두 팀의 기념품을 한 곳에서 판매한다면 단독으로 운영하는 곳보다는 커야 하지 않을까?
실망은 계속되었다. 상품들의 전시상태와 제품의 질, 가격 모두 형편없었고 직원들도 카운터에 자기들끼리 모여 잡담을 하고 있을 뿐 관람객을 안내하거나 흐트러진 상품을 재진열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산 시로만 이런 것인지 비시즌이라서 대충 운영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명문구단의 마케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산 시로를 나서면서 두 구단이 공동으로 운영하기에 책임있는 운영이 되지 않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단독으로 운영한다면 이것보단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산 시로 스타디움과 가까운 지하철역 곳곳에 있는 리어카들에서 파는 기념품들의 종류가 더 다양하고 정리도 잘 되어 있었다. 밀라노 다음에 찾은 나폴리, 로마에서도 마찬가지로 시내 곳곳에서 리어카와 사설 상점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공식 상점이 아니라고 해서 가격이 싼 건 아니니 주의해야 한다. 로마의 어떤 작은 상점에서 겉보기에도 어설픈 AS로마 유니폼이 80유로에 달하는 것을 보고 기겁했던 기억이 있다.
사정이 되면 로마에서 AS로마의 홈구장도 돌아보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학생으로서 유럽 현지에 가서 직접 보고 느낀 게 많다. 특히 우리 K-리그에서도 기념품 샵과 다양한
이벤트 행사들이 활성화되어 비시즌에도 축구 팬들에게 꾸준히 관심과 사랑받을수 있는 프로스포츠의 문화로 자리잡을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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