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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스포츠의 테크놀로지화와 그 결과



                                                                                                  
                                                                                                     글/송형석 (계명대학교 교수)


스포츠는 근대화가 적극적으로 추진되던
19세기 초기에 영국에서 출현했다. 이 시기는 서구사회 전체가 진보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던 때였다. 근대유럽인은 테크놀로지를 진보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믿었기 때문에 테크놀로지는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힘입어 육체가 담당하던 역할이 대부분 기계에 의해 대치되었으며, 이에 비례하여 육체의 실용적 가치는 점차 평가절하 되었다. 이에 따라 기계적인 것만이 근대적이고 육체적인 것은 근대적이지 못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으며, 철저하게 육체 의존적 활동이었던 스포츠는 전근대적인 것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다.

스포츠는 바로 이 시점에서 진보의 이데올로기를 수용함으로써 전근대적인 것으로 평가받았던 육체를 근대의 영역에 편입시켰다. 이제 스포츠는 이중적인 입장에 처하게 된다. 한편으로 보다 빠르게, 보다 높이, 보다 강하게라는 근대올림픽모토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진보이데올로기를 표방함으로써 근대의 영역에 속할 수 있게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여전히 전근대적인 육체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전근대적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전근대적인 육체를 통해 근대의 진보이념을 실현하고자하는 스포츠의 노력은 그 출발점부터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다윈의 보고서가 보여주듯이 육체기능의 진화, 육체능력의 향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더디고 느리게 진행되는 육체의 진화, 가시화되지 못하는 육체능력의 진보만으로는 스포츠가 진보의 원리를 구현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 스스로 진보의 원리를 구현하고 있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가속화된 진보, 단시간 내에 가시화할 수 있는 진보의 증거가 필요하다. 즉 선수들의 육체기능, 다시말해 경기력을 인위적으로 가속화시켜주고 가시화시켜주어야 한다. 이러한 요청은 테크놀로지의 도입을 통해서 충족될 수 있었다.

경기력을 좌우하는 요인은 선천적 재능과 후천적 노력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 대개 보통 이상의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선수가 된다. 그러나 선수가 된 이후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재능만으로 부족하다. 다른 선수들 역시 재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경기력을 좌우하는 요인은 후천적 노력으로 전환되며, 선수들은 다른 선수보다 뛰어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식사를 조절해고, 인위적으로 계획된 강도 높은 훈련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예외 없이 정신 및 체력의 한계를 넘어설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선수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체력의 한계에 도달하는 순간이 오며,
불안, 초조, 긴장 등으로 집중력이 저하되는 경우도 생긴다.

장시간 강도 높게 진행된 훈련은 신체부상을 유발할 수 있고 심리적 스트레스를 가중시킬 수도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련은 계속되어야 한다. 선수로서 생명을 계속해서 유지하느냐 아니면 대열에서 낙오하느냐의 기로에 선 선수들은 훈련을 계속하기 위해 그리고 경기력 향상을 위해 가능한 모든 조처를 동원한다. 이 과정에서 테크놀로지, 특히 스포츠과학과 과학적 훈련의 도움은 절대적이다.


근대스포츠가 경기력향상을 위해 도입한 테크놀로지는 산업과 노동 영역에서 생산능력 향상을 위해 개발된 것이다
. 근대의 테크놀로지는 인간과 생산기계의 경계를 무너뜨림으로서 생산력향상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려고 노력해 왔다. 생산력 저하의 주요 원인은 피로, 졸음, 미숙 같은 정신 및 신체적 능력의 한계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로의 발달로 각성제와 강장제 같은 의약품이 개발되었으며, 이것들은 생산능력 향상을 위해 이용되었다. 이후 쾌감, 공격성증대, 슬럼프극복을 목적으로 하는 향정신성 의약품도 개발되었으며, 이것을 통해 인간과 기계의 거리가 더욱 좁혀졌다.

다음 단계는 도파민과 엔도르핀 같은 신경전달물질 또는 근육발달을 촉진시켜 주는 성장호르몬이나 성호르몬 같이 인체 내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되는 소량의 물질을 인위적으로 대량생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 이 물질들은 인체 내에서 우리가 원하는 만큼 충분하게 생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테크놀로지는 이것들을 인위적으로 대량생산하였으며, 그 결과 인간의 작업능력은 크게 향상되었다.

노동과 산업영역에서 작업능력향상을 위해 개발된 테크놀로지는 철저하게 목적합리적 성격을 띤다.
테크놀로지는 인간의 능력향상이라는 목적이 특정 가치에 부합하는지 아닌지의 여부는 고려하지 않고, 단지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최상의 수단, 가장 효율적인 방법의 개발에만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테크놀로지는 가치중립적이며, 탈도덕적 속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즉 테크놀로지는 인간의 능력향상과 관련하여 취해진 조처들이 선한지 악한지, 도덕적인지 비도덕적인지 판단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능력향상에 기여하는지 아닌지만 사실적으로 판단할 뿐이다. 무엇을 위한 진보인가는 묻지 않고 진보를 위한 수단의 증식에만 관심을 기울여 온 근대 테크놀로지와 마찬가지로 근대스포츠 역시 무엇을 위한 기록향상인가는 묻지 않고 기록 향상을 위한 수단증식에만 몰두해 왔다.

근대의 테크놀로지와 근대스포츠는 공통적으로 진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간능력의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각종 수단을 개발했으며
, 이에 힘입어 인간의 능력, 선수의 경기력은 크게 향상되었고 많은 신기록이 쏟아졌다
. 그러나 그에 따른 가치합리성의 퇴조와 목적합리성의 대두는 피할 수 없는 귀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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