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유지호 (연합뉴스 영문뉴스부 스포츠담당)
기사만 안 쓰면 기자는 참 좋은 직업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각종 스포츠 경기를 취재증만 있으면
무료로 볼 수 있고 일 한다는 구실로 유명 선수들을 만날 수 있는 스포츠 기자는 특히 그런 것 같다.
스포츠 팬으로 자라온 필자 역시 여러 종목의 경기를 현장에서, 그것도 경기 전체가 가장 잘 보이는 기자석에서 보는 것을 큰 특권으로 여긴다. 덕분에 스포츠를 좋아하는 친구들부터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물론 이런 특권에는 책임감도 수반된다. 자고로 기자는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보도해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승자와 패자가 분명히 엇갈리는 스포츠 보도에서 객관성을 유지하는 게 그리 어렵겠냐는 의견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대부분 스포츠 기자들은 필자와 같이 어릴 적부터 스포츠를 접해왔고 연고 프로 구단이나 스타 선수들의 팬으로 자라온 경우가 많다. 이들이 소위 말하는 ‘팬심’을 버리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도 하는 것이 (이를 테면, 승자가 왜 승리했고 패자는 왜 졌는지를 가감 없이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
스포츠 기자의 책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지켜본 결과 이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이러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경기장 기자석에 존재하는 불문율이 있다. 경기 중 특정팀 이나 선수를 응원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는 다분히 우리보다 역사가 깊은 미국 스포츠 언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 스포츠 저널리즘의 ‘황금시대’라 불리는 20세기 초반 활동하던 기자들이 특히 이를 중요시 여겼고, 이들의 활약상을 그린 책은 그 제목마저 “No Cheering in the Press Box” (“기자석 응원 금지”)다. 이 불문율은 현재 까지도 지켜지고 있고, 실제로 메이저리그 야구
사무국은 기자석에서 응원하는 기자들의 구장 출입증을 뺏기도 한다.
올 2월 미국에서 열렸던 “데이토나 500” 자동차 경주에서 한 프리랜서는 기자석에서 대놓고 응원한 죄(?)로 유명 일간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 글을 실을 기회를 박탈 당했다. 이 사건 후 미국의 베테랑 기자들은 기자석에서 응원 하는 것이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고 기자석에서 열심히 일 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결례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고지식한 편에 속하는 필자는 매 경기 이를 지키려 한다. 메이저리그야구가 명시하듯 기자석은 “일하는 공간 (working space)”이지 경기를 보러 놀러 오는 자리는 아니다. 이게 기자석과 관중석의 큰 차이가 아닐까. 골이 들어갔을 때 득점 상황을 분석해야 하고, 홈런이 나왔을 때 투수가 어떤 구질의 공을 던졌고 어느 볼 카운트였는지를 기록해야 하는 게 스포츠 기자다. 정 응원을 하고 싶다면 경기를 TV로 보거나 관중석으로 가면 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필자는 언제부터 인가 딱히 응원하는 팀이나 선수가 없어졌다. 어린 시절 우상으로 생각하던 선수들이 현재 여러 종목에 걸쳐 감독 자리를 꿰차고 있는데 이들을 취재원으로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설레임도 사라진 지 오래다. 오히려 지금은 일이 없을 때 경기를 보면서도 누군가를 응원하는 게 더 어렵다. 일을 시작하고부터 그렇게 된 건지 아니면 은연 중에 기자 준비를 하면서 그렇게 변한 건지 잘 모르겠다.
경기 중 관중석을 가 본 적은 몇 번 있다. 일이 없는 날 마음 편히 경기를 보러 가거나 일 하는 중간중간 관중 들의 반응을 취재하러 들어가기도 했었다. 많은 팬들이 응원 문화를 즐기러 경기장을 찾지만, 필자에게는 음악에 맞춰 신명 나게 춤을 추는 야구장 치어리더나 끊임없이 북을 때려대는 축구 서포터스들이 오히려 경기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됐다. 아무래도 이 일이 천직인가 보다.
국내 경기에서 이 불문율은 대부분 지켜지는 편인데, 국가대표 축구 경기의 경우 사정이 다를 때가 있다. 성인 대표팀의 A매치나 23세 이하 올림픽 대표팀 경기에서는 한국 팀의 골에 환호하고 실점에 탄식하는 기자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기자들도 사람인지라 국가 대항전에서는 아무래도 자국에 응원을 보낼 수 밖에 없나 보다.
(게다가 대부분 필자보다 선배라 대놓고 응원하지 마라고 할 수도 없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국가 대항전에서만큼은 기자석에서 응원이 펼쳐져도 묵인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난 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대다수 중국 기자들은 자국 선수들의 활약상에 환호를 보내기도 했다.
8월말 대구세계육상선수권을 같이 취재하던 한 후배가 기자석에서 경기하는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곤 했다. 잔소리를 하기는 싫은 마음에 한 번은 웃으면서 “기자석에서 무슨 박수냐”고 한 마디 해줬더니 “그러면 안 됩니까?”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주변 선배들도 가만히 있던 상황이라, 괜히 스스로 “내가 시대에 뒤쳐져 사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봤다.
앞으로 경기장에 가셔서 기자석 옆 관중 석에 자리하시면 일하는 기자들을 한 번 관찰해 보시기 바란다. 멋진 플레이가 나와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수첩에 열심히 메모하거나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고 (물론 그 중에는 업무와 상관 없는 일을 하는 기자들도 더러 있겠지만) ‘저 들은 감정이 메마른 사람들이구나’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다. 이 글을 보시고 다음부터는 우리도 여러분 들과 마찬 가지로 그저 열심히 밥벌이를 하려는 사람들로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기자석이 우리들의 사무실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불문율이 깨진 유명한 해외 사례를 들어 마무리 하겠다. 2009년 오픈 챔피언십 골프 대회에서 환갑을 바라보던 노장 톰 왓슨은 3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렸고 24살이나 어린 스튜어트 싱크와 연장 접전 끝에 2위에 올랐다. 역대 메이저 최고령 우승자가 될 뻔 했던 왓슨의 선전은 싱크의 첫 메이저 우승만큼 큰 감동을 주었다. 대회 종료 후 왓슨이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자 안에 있던 취재진이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골프 기자들이 59세 노장의 투혼에 경의를 표한 것이다. 이 상황에서 기자석에서 응원한다고 핀잔을 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웬만큼 잘 하지 않고서는 감정이 메마른 (?) 기자들의 박수를 받을 수 없다는 걸 반증하는 예라고도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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