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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폴더/스포츠미디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멀리 하기엔 너무 가까운!



                                                                      

                                                                          글/유지호(연합뉴스, 영문뉴스부 스포츠 담당)



 

기자들은 본인 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상대할 경우가 많다. 20대 중반에 기자생활을 시작한 필자는 한 때 이 부분에 어려움을 겪었다. 산업부와 경제부 담당 시절 취재 대상 대부분은 기업이나 은행 임원들이었는데 아버지 뻘 정도 되는 사람들을 쪼아가며 (?) 이것 저것 캐내는 것이 초년 기자한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기자들은 기자보다 높은 사람은 없다고 교육을 받는다. (적어도 필자의 첫 직장에서는 그랬다.) 독자의 알 권리를 위해서라면 기업 사장이던 정부부처 장관이던 강하게 밀어부처야 한다는 거였다. 그 때문에 기자들 사이에선 고참 기자를 자가 빠진 그냥 선배라고 부르는 게 관행이다. 밖에 나가서 나이 많은 취재원에게 예의는 지키되 하면서 굽실거리지 말라는 취지에서다. 필자는 한 번 모 은행 간부와 통화하면서 부장님하고 불렀다가 혼난 적도 있다.


헌데 스포츠 기자는 조금 다른 것 같다. 각 구단 사무국과 코치진들이 있지만 대부분 취재원은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에 걸친 선수들이다. 특히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프로로 뛰어드는 선수가 많은 요즘, 20대 초반의 선수들이 주축이 되기도 한다. 다른 분야보다 취재원들이 어린 편이다.
(
아이돌 그룹을 취재하는 연예부를 빼면…)

그렇다면 문제는 스포츠 기자와 운동 선수 내지 지도자는 어떻게 관계를 유지해야 하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과는 너무 멀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가깝게 지내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며 막 대해도 안되지만 이들이 억대 연봉을 받는 스타라고 해서 너무 위축 될 필요도 없다.

선수와의 관계가 너무 멀어지면 생기는 문제는 따로 설명드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는 비단 운동 선수가 아니라 모든 취재원에게도 해당 되는 얘기다. 그런데 이들과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사이로 발전 한다면? 이는 지난 번 이 공간에서 간략히 소개했던 객관성 유지 문제와도 관계가 있다.
한 기자가 정말 친한 스타 급 농구 선수가 있다고 치자. 그런데 이 선수가 갑자기 슬럼프에 빠지면서 잘 나가던 팀도 연패에 허덕이는 상황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스포츠 언론의 역할은 단순히 연패를 보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원인을 분석하고 어떤 점들이 개선되어야 하는 지 짚어주는 것이다. 팀의 간판 선수가 부진 하다면 당연히 이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기자들이 자신과 특별히 친분이 있는 선수를 비판적으로 보는 데 망설여지게 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런 경우 괜히 미안해 지는 마음이 생긴다고 고민하는 기자들도 봤다.


이는 구단 직원들과도 마찬가지다
. 이들 역시 기자들과 학연, 지연 등이 엮여 친하게 지내기도 한다.
그런데 친했던 기자들이 소속팀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쓴 후 직원들과의 관계가 소원해 진 경우를 봤다. 일부가 기자들과의 개인적인 친분이 언론의 비난을 막을 수 있다는 오해를 하는 모양이다.

대부분 기자들 보다 연장자인 지도자들과의 관계는 어떨까? 앞서 기자는 손윗사람을 상대로 너무 자세를 낮추지 말라는 교육을 받는다고 적었다. 특히 젊은 기자의 경우 스스로가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 당하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다. 헌데 몇몇 선배기자들이 소위 말하는 요즘 어린 것들이 코치, 감독들에게 형님, 형님하면서 친한 척 (?) 하는 것을 보고 혀를 끌끌 찬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영어 표현 중에 “keep someone at arm’s length”라는 것이 있다. 직역을 하자면 누군가를 팔 길이 거리만큼 둔다는 얘기, 다시 말하면 특정인과 어느 정도 공간 내지 거리 (물리적인 것이 아닌) 를 둔다는 것을 뜻할 때 쓰이는 표현이다. 취재 기자와 취재원들 간의 관계를 설명할 때 매우 적합한 것 같다.

필자는 다른 국내 영자 매체들처럼 인력수급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일하다 보니 종합 일간지나 스포츠 전문 매체 기자들만큼 현장에 자주 나가지는 못한다. (영자매체의 취재환경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다룰 계획이다.) 그래도 친분을 유지하는 선수들은 있고 시즌이 끝나면 경기장 밖에서도 만나기도 한다. 주변에 알아보는 사람도 있는지라 시선이 신경 쓰이기도 하는데 그들은 오히려 그런 상황이 익숙한 듯 행동하는 반면 필자가 불편할 때가 있다.

이들과의 만남은 늘 조심스럽다. 기자 입장에선 주변의 시선도 시선이지만 선수들이 비시즌에 기자를 만나는 걸 부담스러워 할 까봐 걱정도 된다. (어느 정도 친분과 신뢰가 쌓이면 되겠지만) 한편으로 동생이 없는 필자는 어린 선수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학교 체육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이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고 한다. 기자에게 모든 취재원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소중한 자산이다. 소중할수록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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