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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도 모르고 영문기자? 영문기자로 살아가는 법


                                                             
                                                                             
                                                                                 글/유지호(연합뉴스 영문뉴스부 스포츠담당)


필자가 그간 스포츠 둥지에 올린 글은 훈시에 가까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고지식한 기자의 취재 철학에 대해선 익히 아시리라 믿고 이번 기회에는 좀더 개인적인 취재 경험이나 필자가 일하는 환경에 대한 얘기를 나눌 까 한다.
아래 약력에서 보시다시피 필자는 영어로 기사를 쓰는 기자다. 여러분들께서 인터넷이나 지면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한글 매체와는 업무 여건과 환경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필자의 경험이 조금 새롭게 다가 오지 않을 까 하는 생각에 몇 자 적어 보겠다. 고등학교 시절 운 좋게 캐나다로 유학을 떠날 기회가 생겨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토론토에서 마치고 군 복무를 위해 귀국했다가 전역 후 영자 신문사에 취직했다. 그리고 작년 여름 현 직장으로 옮겨 지금까지 활동 중이다.


외신을 제외한 국내 영문 매체는
4. 가장 오래 된 영자신문인 코리아 타임스와 몇 년 뒤 창간한 코리아 헤럴드, 또 필자가 잠시 몸 담았던 후발주자 코리아 중앙 데일리가 있고, 현재 근무하고 있는 연합뉴스의 국제국 산하 영문뉴스부가 있다. (사내에선 일반 뉴스를 다루는 영문뉴스부와 경제 분야를 맡는 영문경제뉴스부가 나뉘어져 있으나 편의상 영문뉴스로 통일 시켜 부르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 각 언론사의 국제부가 외신에서 전하는 해외 소식을 한글로 정리해 국내 독자와 시청자에게 알리는 일을 한다면, 영문 매체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뉴스를 취재해 영어로 보도 하는 곳이다.

코리아 타임스와 코리아 헤럴드가 생긴 지 60년 가까이 되어가고 영어 교육에 대한 열의는 그 어느 곳 보다 뜨거운 우리 나라지만, 영자 매체는 아직 여러 사람에게 생소한 존재다. 다행히 수십 년 동안 여러 선배들이 고군분투 하시고 길을 닦아 주신 덕분에 정치나 경제 분야에서는 영문 매체의 입지가 어느 정도 다져진 편이다. 하지만 스포츠 분야는 아직 좀 부족한 듯한 느낌이다.

필자는 예전 모 선배가 영문도 모르고 영문기자 한다는 말이 기억에 남아 취재원과 초면에 이 말 한 마디를 던져 분위기를 띄우려 하기도 한다. 그러고 명함을 건네면 분명  영문뉴스부라고 적혀있건만 정말로 기사를 영어로 쓰시나요?’라는 질문도 종종 받는다. (‘그럼 영문뉴스부에서 한글로 씁니까라고 한 마디 쏘려다 참은 게 여러 번이다)


아무래도 외국에서 국내 프로야구나 축구 등에 갖는 관심은 국내 팬들의 관심도 보다 떨어 진다는 판단에서 인지 각 구단에서 영자 매체를 그리 주의 깊게 보지는 않는 편이다
. 게다가 영문 매체는 국문 매체만큼 많은 양의 기사를 생산해 내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고 해야 더 정확할 듯 하다. 이는 인력 수급과 직결된 문제다.


포털 사이트나 신문 지면을 통해 스포츠 기사를 열심히 챙겨 보시는 분들은 대충 어떤 기자가 어떤 종목이나 구단을 담당 하는지 파악 하실 수 있을 거다. 8개 프로야구 팀의 경우 매체에 따라 한 기자가 한 개 구단을 전담하는 경우도 있다.앞서 말씀 드린 네 곳의 영자매체에서 스포츠 분야를 취재하는 기자는 총 네 명에 불과하다. 매체당 한 명씩. 특정 구단을 전담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 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취재 현장에서 서로 만나면 동병상련(?)의 정으로 더 똘똘 뭉치게 된다.)

이 대목을 보시고 어떻게 한 명이 스포츠를 전담할 수 있나라는 의구심을 가지셨을 법 하다.
코리아 중앙 데일리와 연합뉴스, 두 곳에서 ‘1인 스포츠 담당을 해 온 필자 역시 많이 받는 질문이다.

필자를 포함한 네 명의 젊은 기자들은 차라리 다른 새가 될 지 언정 뱁새마냥 황새를 쫓으려다 가랑이를 찢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이 황새들이 잘 다루지 않는 영역이나 뭔가 새로운 주제를 개발해 나름의 틈새 시장을 노리려 한다.


영어 매체는 정규 시즌 매 경기 상보를 쓰지는 않는다. 플레이오프에 접어들면 (신문의 경우) 마감 시간을 늦추면서도 결과를 반영하지만 정규 시즌 때는 매번 그럴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즌 중 경기에 소홀 하지는 않다. 필자는 신문사 근무 시절 야구 시즌 동안에는 매주 1회 야구 칼럼, 겨울에는 주 1회 농구 칼럼을 썼다. 경기가 없는 월요일에 작성해 주말 경기 정리 내지는 다가오는 한 주를 전망하고 순위표까지 친절하게 (?) 집어 넣었다.(이는 전적으로 이 두 종목을 좋아하는 필자의 결정이었다. 영문 스포츠 기자가 갖는 장점 중 하나는 종목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로운 취재가 가능하다는 거다. 또 스포츠 분야에 경험이 많은 부서장 급 고참들이 많이 없기 때문에 선배들도 일선 기자들에 결정권을 많이 위임하는 편이다.)


통신사로 옮긴 후 필자는 신속한 뉴스 전달에 더 집중하고 있지만 나머지 세 명의 영자 신문 기자들은 매일 경기를 챙기지 못하는 대신 시즌 중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기획기사를 써낸다
. 이들의 관심은 누가 몇 점차로 이겼냐를 넘어 어떤 일이 왜 일어 났는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영문 기자들이 다루는 기사로는 외국인 선수들의 인터뷰를 들 수 있겠다. 여자 프로 농구를 제외한 국내 주요 프로 스포츠 리그가 외국인 선수를 허용하고 있는 만큼 이들의 소식을 생생하게 전하기에는 영문 매체 만한 게 없다. 물론 국내 매체에서도 이들 인터뷰를 하지만 아무래도 영어로 한 말을 번역해서 실으면 느낌을 제대로 전달 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남자프로농구에서 활약하는 귀화 혼혈 선수들 역시 영어 매체에게는 좋은 취재 대상이다.


특히 예전과 달리 한국으로 오는 외국인 선수들의 경력도 더 화려하고 수준도 높아져서 외국에서 이들에 대해 갖는 관심이 올라가고 있다
. 메이저리그에서 뛰다 한국으로 넘어온 투수도 있고 미프로농구 (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지명을 받았던 선수도 있다. 필자는 이런 선수들에 관한 기사를 쓰고 이들 출신 지역의 기자들로부터 선수들의 동향을 묻는 이메일을 받은 적도 있다.

물론 영어 매체들이 외국인 선수만 상대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선수들의 해외 리그 활약상이 두드러지는 요즘 특히 외국의 야구와 축구 팀들이 국내 선수들에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마련이다. 구단 입장에서는 팀 스카우트들이 수집하는 정보도 중요하겠지만 자신들이 눈독 들이는 선수들이 자국 언론에서 어떻게 비쳐지는 지도 충분히 관심사가 될 수 있다.

영문 기자들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곳은 국제 스포츠 대회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F1 그랑프리나 세계육상선수권 등 굵직한 경기가 있었고 앞으로 아시안게임, 겨울올림픽도 예정되어 있다.

(여담이지만 영문 기자들은 국제 대회에서 통역 없이 영어로만 진행되는 인터뷰나 기자회견 후 국내 취재진에 둘러 쌓여 회견 내용을 번역해주기도 한다. 이렇듯 서비스 정신도 투철하다.)

좋은 기사는 언어에 상관 없이 읽히게 마련이다. 필자는 후배들의 단독 보도나 기발한 기획 기사에 무릎을 탁 칠 때가 많다. 이런 좋은 기사들이 좀 더 많은 독자들에게 전달 되고 더 큰 반향을 일으켰으면 하는 바람을 늘 갖고 있다.


영자 매체가 독자에게 접근성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 지면이나 인터넷 상으로 접할 수 있지만 영어 공부를 하는 학생이나 국내 거주하는 해외 주재원이 아니면 일부러 국내 소식을 영어로 접하려 들지 않는다. 필자도 유학 가기 전 영어 공부를 한다고 영자 신문을 구독했지만 요즘처럼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 자료가 무궁무진 한 세상에 굳이 신문을 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팬으로서 국내 스포츠 소식에 대한 색다른 시각을 찾는 다면 영어 매체를 감히 추천하고 싶다. 영어 공부도 되고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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