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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생활체육 ]

축구공에 담긴 세상 이야기

                                                                                 글 / 이병진 (국민생활체육회 정보미디어부장)


남아공월드컵으로 지구촌이 떠들썩하다. 세상이 온통 축구공으로 보일 정도다. 눈을 뜨면 뉴스에서
축구이야기부터 시작한다. 회사에서도, 학교에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술좌석에서도 축구가 주 메뉴다.
도대체 축구가 뭐길래, 축구공이란 놈은 어떤 존재길래 우리를 이토록 흥분시키는가.



                                               콘텐츠출처: 오픈애즈(http://www.open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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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종교보다도 이데올로기보다도 강하다

축구공은 마법을 지니고 있다. 함께 뛰어 놀 땐 즐거운 놀이인데, 함께 응원할 땐 종교가 된다. 선수가
드리블하거나 트래핑 할 때면 주위의 모든 시선은 온통 공 하나에 쏠린다. 마치 블랙홀처럼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을 빨아들인다. 어떤 이는 독수리의 눈으로 공을 노려보고, 더러는 몽환의 세계에 빠져
감각을 잃는다. 질식이라도 한 듯이 호흡이 멈추고, 손과 발이 마취된다.

주사바늘로 약을 투여하지 않고도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일순간에 정지시킬 수 있다니. 정말이지
축구는 ‘발의 미학’이니 ‘그라운드의 예술’이라느니 이딴 표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의 묘약을
갖고 있다. 어느 종교가 이보다 더 강한 믿음을 갖게 하며, 또 어느 이데올로기가 이토록 강한 힘을
갖고 있으랴.

잠시 공 흐름이 바뀌고 한숨 돌린다. 그러다가 이내 다시 빨려 든다. 골이 들어갔다. 우리는 기뻤다.
박수로는 그 기쁨, 그 열광을 쏟아낼 수가 없어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 흘리고 감격했다.

한 골 먹었다. 순간 세상이 너무 슬퍼졌다. 그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은 너나 우리가 모두 비슷하다.
한없는 절망감에 빠졌다가, 이내 화가 치밀어 오르고, 야수처럼 난폭해진다. 다시 평정심을 찾으면
저마다 판사가 되어 선수 한 명 한 명에게 형량을 부가한다. 그렇게 쉼 없이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축구는 우리네 인생이다.


각본 없는 드라마, 우리는 숙명처럼 공을 찬다

축구공은 절대군주다. 녹색 잔디 위에 공 하나만 던져 놓으면 모두가 그 공을 따라 움직인다. 말이
필요 없다. 독재자는 총칼로 사람을 움직이지만, 축구공은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카리스마, 아니
권능을 갖고 있다. 축구경기장에서는 공이 굴러가는 대로 무조건 움직여야 한다. 언어와 인종, 종교
따윈 필요가 없다.

모두가 동일한 조건이다. 마치 잘 만들어진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선수들은 호흡을
맞춘다. 유명배우의 연기나 발레리나의 안무,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축구는 각본 없이 감동을
만들어 낸다. 넘어지고 무릎 깨어지고 가슴 터질 듯 뛰고, 거친 숨을 몰아 쉬고, 숙명처럼 공을 찬다.

월드컵축구대회와는 달리, 생활체육 현장에서 몸으로 느끼는 축구는 자못 진지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다소 느슨하다. 동네 아이들이나 어르신들, 여성축구도 그러하고,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의 표정에는
익살이 묻어나고, 작은 실수마저 기쁨이 된다. 아이들에게 있어 축구공은 날개 없는 천사다. 공을 차며
아이들은 쑥쑥 자란다. 여성들은 축구를 하면서 저마다 하나쯤 갖고 있을 상처를 달랜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이 땅의 아버지들은 축구장이 아니면 어디서 큰 소리 한번 쳐 보려나. 어르신들은
축구공 하나가 곧 희망의 끈이다. 놓치고 싶지 않은 세월, 되찾고 싶은 젊음을 고스란히 축구장에서
쏟아낸다.


축구든 인생이든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

축구공은 인생살이다. 우리는 둥글둥글한 세상을 꿈꾼다. 아무리 세게 부딪혀도 주눅 들지 않는 탄력
있고 옹골찬 삶을 꿈꾼다. 축구공은 둥근 세상, 야무진 삶을 가르쳐 주는 인생의 좌표다. 공을 몰고 쏜살
처럼 달려갈 땐 발끝에 달린 공이 희망이 되고 믿음이 된다. 이기고 있다고 해서 자만해서도 안 되지만
패색이 짙다고 해도 섣불리 좌절할 필요도 없다. 언제든 인터셉트를 해서 바람처럼 달려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골 먹으면 우리도 한 골 넣으면 되고, 패스를 잘못해 공을 빼앗기면 후방 수비수가 도와준다. 슈팅이
빗나갔다고 하더라도 기회는 얼마든지 다시 온다. 왼쪽 공격이 막히면 오른쪽에서 공격하고, 측면이
뚫리지 않으면 중앙으로 공격하면 된다. 상대편 수비수가 밀집해 있으면 과감하게 중거리 슛을 날려야
한다.

최종 수비수는 절대 안전하게 볼을 다뤄야 하고, 불행의 싹은 미드필드에서 아예 잘라버려야 한다.
학교공부도 마찬가지고, 기업경영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변화가 심해 정형화된 방법이 없다. 숱한
응용의 연속이다.

다만 몇 가지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페어플레이 해야 한다는 것, 합심 단결
해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 상대선수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 등. 이것들은 축구든 인생이든
공통으로 적용되는 불변의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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