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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스포츠 면을 대폭 확장한 월스트리트저널, 그 이유는?

                                                                          글 / 권순용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교수)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은 스포츠 면을 대폭 확장하기로 결정했다.

왜일까? 왜 지난 1년간 주당 1회 주말 판에서만 볼 수 있었던 스포츠 뉴스를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매일 다루기로 했을까?


경기결과 보도가 아닌, 분석기사, 통계, 그림 이미지 등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여

보다 흥미 있는 “이야기” 거리를 전달해 독자와 광고주를 끌어들이려는 전략이다.

경제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에서 그동안 사소하게 여겼던 스포츠 보도를 중시하게 된 것을 보면,
현대 사회에서 스포츠가 대중의 이목과 관심을 끄는 마력을 무시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현대인들은 스포츠에 왜 이렇게 열광하는가?

스포츠 자체의 마력인가? 아니면 누군가 스포츠를 그렇게 만들고 있는가?
노버트 엘리아스라는 사회학자에 의하면 스포츠가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대리 충족시키기 때문
이라고 설명한다. 즉, 사회가 “문명화 과정(civilizing process)”을 거치면서 인간의 본능적 욕구,
예를 들어 공격성이나 폭력성 등을 대안적으로 만족시키는 기제로서 스포츠가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식욕, 성욕 등과 같이 “흥분(excitement)”은 인간의 원초적 욕구인데,
사회가 점점 조직화,
전문화되고 일상생활에서 매너, 에티켓, 배려 등의 가치가 중요시되면서 흥분욕구를
충족시켜 줄
용인된 창구로 스포츠만한 것이 없다
는 설명이다.


실제로 스포츠의 장은 카니발적인 요소를 듬뿍 담고 있다.
일견 스포츠는 마음 놓고 즐기는 것이다. 절정의 플레이, 환희와 격정의 순간,
일탈적 공격성 만족,
축제의 즐거움 등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고 매료될 수밖에 없는 흥분되고 열정적인 그 무엇이 있다.
이런 이유로 삶의 진지함이나 현실의 냉엄함을 무시하는 비생산적이고 허구적인 기분전환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맑스주의자들은 종교와 마찬가지로 스포츠는 현실의 모순과 질곡에서 오는 고통을
망각하게 하는 아편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였다.

대중들은 스포츠에 취해서 자신을 둘러싼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인식하지도 못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사회성원의 공격성, 폭력성 등 본원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기능을 담당한다고 볼 때,
문명화 과정으로서 스포츠에 대한 시각은 기능주의의 논리를 어느 정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요는 스포츠도 문명화 과정을 거치면서 그 본원적 공격성과 폭력성을 통제하고 규제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는 점이다. 근대 스포츠의 형성과 발전과정은 규칙과 제도를 통한 공격성의 순화와
안전성의
증거로 볼 수 있다.

스포츠의 문명화 과정은 앨런 거트만의 분석처럼 스포츠의 합리화, 계량화, 전문화, 관료화, 세속화 등
근대화 과정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엘리아스는 이러한 과정을 스포츠화(sportization)로 설명한다.

비정형적이고 폭력적이고 무질서했던 신체적 여가활동이 규칙과 제도를 갖춘 스포츠로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스포츠화의 문명화 과정에 걸맞지 않는 예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경기장 내외에서 선수나 관중에 의한 공격성 표출이나 폭력적 상황은 점차 증대되고 있으며,
격투기나 프로레슬링 같은 유사 스포츠에서는 아예 공격성과 폭력성을 만끽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있다.
위험 스포츠, 극한 스포츠 등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 증가는 어떤 면에서 흥분과
스릴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로 보인다. 스포츠는 탈문명화 또는 탈스포츠화 하고 있는 중인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그렇다면 누구에 의해 그렇게 되고 있는가?
호주출신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의 월스트리트저널이 “읽을 만한 스포츠 스토리” 전략으로
신문 및 매체와의 경쟁에서 독자와 광고주의 관심을 얻으려는 시도가 실효를 거두고 있는지 궁금하다.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경제기사 속에서 화려하고 컬러플한 그래픽으로 포장된 스포츠 기사가
주는 재미, 흥미, 그리고 흥분을 통한 월스트리트저널의 스포츠화(sportization)는 문명화 과정에
가까운가 아니면 탈문명화 과정에 더 가까운가?

앞으로 십년 후 월스트리트저널의 스포츠 면이 탈스포츠화될 수 있다는 가정은 억측에 불과한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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