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스포츠 교류협력은 적대관계에 있는 진영간의 화해협력을 도모할 수 있는 유력한 분야로
일컬어져 왔다. 남북한이 사상 최초로 동반 진출에 성공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더욱 큰
관심과 기대가 모아지는 까닭이다. 월드컵 동반 진출의 의미와 이 속에 잉태되어 있는 기회는
한국은 7회 연속, 북한은 무려 44년 만에 본선 무대를 밟게 되었다는 ‘축구사적 의미’를 넘어선다.
남북관계의 화해협력 촉진이라는 ‘한반도 차원의 기회’, ‘전쟁과 분단’으로 각인된 한반도에
대한 국제사회의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국제적 기회’를 함께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 한국은 2022년 남북한 공동
개최를 타진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남아공 월드컵을 전후해 남북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다.
남북한 공동 개최를 유치할 경우, 그 자체로도 남북관계는 새로운 장이 열릴 뿐만 아니라,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남북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강력한 동기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미국-중국 간의 핑퐁외교를 통한 데탕트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핑퐁외교는 1971년 4월 중국이 미국 탁구대표팀을 초청하고 미국이 이를 수용하면서
시작됐다. 뒤이어 미국도 중국팀을 초청해 미국 주요 도시를 돌며 친선대회를 열었고, 언론에서는
이를 ‘핑퐁외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 미중간에는 외교관계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태평양을 넘나들은 핑퐁외교는 냉전 시대 최대 ‘지정학적’ 사건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었다. 이러한 화해 무드에 힘입어 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했고,
1979년에 이르러서는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2.5g의 가볍고 작은 탁구공이 “지구를
뒤흔든 것”이다.
그런데 미중간의 핑퐁외교는 양측의 철저한 준비와 계획에 따라 이뤄졌다기보다는 우연한
사건이 ‘나비 효과’를 연출하면서 양측의 정치지도자를 움직여 성사되었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미중 양국은 1960년대 말부터 관계 개선을 타진했지만, 쉽사리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런데
1971년 3월 28일부터 4월 7일까지 일본 나고야에서 열리는 제31회 세계탁구선수권 대회가 멍석을
깔아주었다. 일본은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중국을 초청했고, 중국은 일부 관료들과 캄보디아
망명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참가를 결심했다. 특히 캄보디아 ‘망명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중국 선수가 캄보디아 ‘괴뢰 정부’ 선수와 만나면 경기를 기권하기로 했다. 이러한 중재안을
바탕으로 저우언라이는 마오쩌둥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중국팀의 출국 예정 이틀 전에 일이다.
나고야에서 중국 선수단을 조우한 미국 선수단은 미국 국무부가 미국인의 중국 여행 제한을
해제하기로 했다는 입장을 전달하면서, 중국 탁구를 배우기 위해 양국의 교류전을 제안했다.
그러나 중국 외교부는 미국 대표팀 초청이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그런데 대회 막바지에
이른 4월 4일 맞아 극적인 반전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양국의 탁구 선수들이었다.
미국의 글렌 코완은 실수로 중국 대표팀이 탑승한 버스에 탔는데, 중국 대표팀의 에이스
주앙쩌둥이 중국의 명산인 황산이 그려진 수건을 코완에게 선물했다. 두 사람의 짧은 만남은
‘나비 효과’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내린 코완은 주앙쩌둥이 선물한 수건을 펼쳐 들면서 주앙쩌둥과 함께 사진을 찍었고,
이는 전세계에 타전됐다. 다음날 코완은 주앙쩌둥에게 답례로 평화를 상징하는 3가지 색깔로
장식된 티셔츠를 선물했다. 티셔츠에는 ‘Let it Be’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각국에서 몰려든
기자들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그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4월 6일 밤에 마오쩌둥이
코완과 주앙쩌둥의 선물 교환을 다룬 언론 보도를 접하고서는 “주앙쩌둥은 훌륭한 탁구 선수일
뿐만 아니라, 아주 유능한 외교관”이라고 칭찬하면서, 미국 대표팀을 중국에 초청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대회 폐막일인 4월 7일 나고야에 전달된 마오쩌둥의 긴급명령은 “미국 팀이 수차례에 걸쳐
우호적으로 방중을 요청한 것을 고려해, 중국은 이를 승인한다”는 것이었다. 본국의 갑작스러운
지시에 다급해진 중국 대표단은 미국 대표단 숙소에 찾아가 초청 의사를 전달했다. 이에 미국
임원들은 주일 미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지만, 아민 메이어 대사는 부재 중이었다.
주일 대사관의 중국통이었던 윌리엄 커닝햄 정치과장은 중국의 초청을 미중관계 개선의 중대한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미국 선수단에게 “초청 수락 여부는 여러분들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커닝햄은 당시 미중 양국의 화해 기류를 포착하고, 대사의 승인 없이 개인적 용단을 내린 것이다.
7일 저녁 커닝햄으로부터 이와 같은 사실을 통보 받은 메이어 대사는 본국에 이를 전달했고,
닉슨도 즉각 이에 동의하면서 역사적인 핑퐁 외교의 막이 오른 것이다. 미중 양국은 상호 교환
방문 경기를 가졌고, 이는 양국 사이의 적대감을 녹이는 데 혁혁히 기여했다.
오늘날의 남북관계와 남아공 월드컵 동반 진출을 당시 핑퐁외교를 비롯한 미중관계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수 있다. 미중관계는 핑퐁외교를 통해 처음으로 문이 열린 반면에,
남북관계는 길게는 1990년부터, 짧게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거치면서 스포츠를 포함한
교류협력의 물꼬를 터왔다.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환상의 나비
효과’를 연출할 수 있는 기회로 포착하는 것이다.
기실 2010년 6월은 ‘한반도가 미래로 가느냐, 과거로 회귀하느냐’는 중대한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남아공 월드컵 본선(6월 12일~7월 11일)은 물론이고, 6.15 공동선언 10주년과 한국전쟁
발발 60주년(6월 25일)이 조우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2010년 6월이 품고 있는 역사적 의미와
기회를 잘 살린다면, 남북한은 6월을 찍고 더욱 희망에 찬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반면 월드컵이
부여한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면, 한반도는 또 다시 ‘6.25 담론’이 지배하는 냉전 시대로 회귀하고
말 것이다. 그 선택의 몫은 우리에게 달렸다.
ⓒ 스포츠 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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