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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실리축구, 내용보다 결과를 가져오다

실리축구, 내용보다 결과를 가져오다

 

글/ 황인호(숭실대학교 경영학과)


   지난 16일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 결승전이 펼쳐졌다. 프랑스가 4 : 2로 크로아티아를 꺾으며 31일간의 장정을 마무리했다. 매 경기 각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로 구성된 대표팀은 국가의 자존심을 걸고 승리를 위해 뛰었다. 전 세계인들이 그들의 퍼포먼스에 몰입하여 울고 웃는 모습을 보면서, 월드컵이라는 축제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4년에 한번 열리는 월드컵은 현대 축구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이기도 하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난 것은 ‘실리축구’였다. 실리축구란 선 수비 후 역습의 형태를 말하는데 이번 월드컵에서는 조금 더 수비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2010년 스페인, 2014년 독일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었던 것은 ‘높은 점유율’을 기반으로 하는 전술이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서는 점유율 축구를 구사한 스페인, 독일은 고전한 반면, 실리에 기반한 플레이를 한 우승팀 프랑스를 비롯해 러시아, 잉글랜드, 스웨덴, 아이슬란드 등의 팀은 예상 성적을 뛰어넘는 결과를 가져왔다. 실리축구가 대세가 되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 효용성과 가치는 확실히 증명된 대회였다.

 

   이번 월드컵에서 실리축구는 각 팀마다 차이가 있지만 흔히 말하는 ‘버스 세우기’ 전술의 형태로 나타났다. 수비상황에서 미드필드 라인과 수비라인을 아군 진영 깊숙하게 촘촘히 위치시켰다. 위험지역에서의 실점확률을 확실하게 줄이고 세트 플레이나 상대가 많이 전진했을 때 역습으로 득점을 노리는 전략이었다. 단점은 수비적인 라인업으로 인해 실점할 경우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과 상대의 전진을 쉽게 허용한다는 것, 역습 시 공격 숫자 부족 등이 있다. 반면에 상대의 지공 상황에서 위험지역에 많은 선수들을 배치함으로써 위험지역 진입을 차단하고, 중거리 슛을 하더라도 수비에게 블로킹 되는 확률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수비시 이동범위를 줄임으로써 적은 스프린트 횟수로 체력을 아낄 수도 있다. 공격력이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장점 때문에 일반적으로 객관적인 전력이 상대적으로 열세인 팀들이 실리축구를 사용했다. 개최국 러시아를 비롯해, 아이슬란드, 대한민국 등의 나라들이 전력의 차이를 극복하고자 각각 스페인, 아르헨티나, 독일을 상대로 실리적인 전술을 사용하였다그 결과 스페인, 아르헨티나, 독일과 같은 객관적인 우승후보 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었다. 특히 러시아는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점유율 75:25로 압도적으로 밀렸지만 최전방 공격수까지 아군진영으로 내려서 수비하는 극단적인 전술을 사용하여 승리할 수 있었다. 상대의 결정적인 찬스를 최소화하고, 세트플레이 득점을 통해 승부차기로 승리하였다. 약팀뿐만 아니라 우승팀 프랑스의 경우에도 점유율보다는 안정적인 수비와 빠른 역습을 이용한 실리적인 전략을 구사하였다. 실제로 16강부터 결승까지 점유율로 앞선 경기가 한 경기도 없었지만 세트플레이 득점과 역습으로 인한 기회를 살리며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AT 마드리드의 모든 필드플레이어가 깊게 내려앉아 수비하는 모습/ 출처 :  Youtube)

 

   실리축구는 월드컵 이전부터 많이 나타났다. 조세 무리뉴, 시메오네 감독은 각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이끌면서 수비적인 축구를 구사해왔다. 축구팬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축구의 아름다움과 재미를 떨어뜨리는 ‘안티풋볼’, ‘텐백’, ‘버스 세우기’ 전술이라는 비난을 받아왔지만 그 속에서도 결과를 얻어내면서 비난을 잠재워왔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실리축구가 빛을 보면서 두 감독의 전술은 안티풋볼이라는 비난보다는 결과를 가져오기 위한 실리축구라는 말이 어울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축구팬들에게 이와 같은 변화는 달갑지 않다. 팬들은 보다 공격적이고 빠르고 화려한 축구를 원하기 때문이다. 실리축구는 축구를 느리게 만들고 공간을 좁게해 드리블을 어렵게 할뿐더러 중거리 슛은 통과되기 어렵기 만들어 재미없는 경기를 만든다. 박지성 해설위원도 한 인터뷰에서 “전체적으로 모든 선수가 수비에 가담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어떻게 보면 진화한다고 보지만 어떻게 보면 재미가 없어진다고 본다”라고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축구는 이기기 위한 스포츠이다. 응원하는 팀이 아무리 재미있는 축구를 하더라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다면 재미보다 결과를 찾게 될 것이다. 재미있는 축구를 하는 팀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규정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기기 위해 발전을 거듭하는 축구 전술, 실리축구를 타파할 보다 재미있는 새로운 전술이 나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