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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빈, 테오 엡스타인 단장- ‘머니볼’의 양 극단을 보여줬다.

#빌리 빈, 테오 엡스타인 단장- ‘머니볼’의 양 극단을 보여줬다.

#김민규기자



‘머니볼’ 용어를 만든 야구 신기술 세이버매트릭스. 그리고 세이버매트릭스를 사용한 두 단장. 시카고 컵스 테오 앱스타인 단장과 오클랜드 어슬렉틱스 빌리 빈 단장은 극과 극의 행보를 보였다.


엡스타인 단장은 3번 우승반지를 획득한 반면, 빌리 빈 단장은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염소의 저주를 깨고 108년 만에 메이저리그 우승을 차지한 시카고 컵스 사례를 통해 이 둘의 차이점을 살펴본다.





▲ (좌) 오클랜드 애슬래틱스 빌리 빈 단장 / (우) 시카고 컵스 테오 엡스타인 단장



2016년 MLB 전체 30개 구단 중 페이롤(Payroll) 14위를 기록한 시카고 컵스가 우승했다. 올해 시카고 컵스의 페이롤은 1억 1665만 달러이다. 이는 2억 2335만 달러를 지출한 1위 LA 다저스에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는 테오 엡스타인 단장이 세이버매트릭스를 사용하여 많은 비용을 쓰지 않고도 우승한 첫 사례이다.


이전에도 테오 엡스타인 단장은 세이버매트릭스를 활용하여 보스턴을 2004년, 2007년 두 번의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당시 보스턴은 양키스 다음으로 MLB 페이롤 전체 2위를 기록했다. 세이버매트릭스를 활용하긴 했지만 머니볼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 우승은 테오 엡스타인에게 더 의미가 있다.


둘의 배경을 한 번 살펴보자.


둘의 공통점은 학창시절 공부를 잘했다. 빌리 빈은 스탠퍼드 대학에 입학제안을 받았고 엡스타인은 예일대-샌디에이고 로스쿨 출신이다.

빌리 빈은 뉴욕 메츠 1라운드 23번째로 지목된 메이저리그 선수출신. 반면 테오 엡스타인은 고등학교 때 잠시 브루클린 고등학교 소속 야구팀에서 뛰어본 것이 전부다. 당시 엡스타인은 선수로서 뛴 것이 아닌 교내 체육활동으로 참여한 것이다.


빌리 빈은 은퇴 이후 스카우트 활동을 하면서 단장직에 올랐고, 테오 엡스타인은 샌디에이고 단장 밑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고 보스턴 단장으로 스카우트 되었다. 경로는 다르지만 둘 다 세이버매트릭스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했다.


그리고 이들은 남들과는 다른 구단운영을 시작한다. 하지만 빌리 빈은 적은 페이롤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고, 테오 엡스타인은 밤비노의 저주, 염소의 저주를 깨트리며 3번의 우승을 차지한다. 똑같이 세이버매트릭스를 기반으로 야구단을 운영한 둘의 차이점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 타자놀음Ⅰ - 수비지표



▲ 컵스 유격수 러셀의 수비장면



테오 엡스타인은 빌리 빈이 출루율을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수비를 신경 쓰지 않은 것이 큰 패인이라고 판단했다. 이번에 우승한 컵스의 경우 수비적인 부분에 있어서 최고의 팀이었다. 헤이워드의 눈부신 수비를 비롯하여 앤서니 릿조, 러셀, 바에즈, 로스까지 수비지표(Defensive Runs Saved)에서 15점 이상의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강정호의 동료 피츠버그 스탈린 마르테(LF)가 수비지표에서 19점을 기록하여 골든글러브를 수상받은 것을 감안한다면 시카고 컵스는 5명의 선수가 골든 글러브급 수비를 선보였다고 볼 수 있다. 감이 안 오는가? 2016시즌 강정호의 수비지표 점수는 -3점, 김현수의 수비지표는 -24점, 이대호는 -6점이다.


이런 차이가 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조 매든 감독의 라인업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조 매든 감독은 당일 선발투수에 따라 상대편 타자들의 라인업에 따라 다르게 수비포지션을 가동했다. 이 모든 결정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과정(Data-driven decision management)에 의해 이루어졌다.


■ 타자놀음Ⅱ - 베이스러닝



▲ 월드시리즈 7차전 홈승부를 펼친 크리스 브라이언트



빌리 빈은 무조건 출루율이 높은 선수를 데리고 왔다. 베이스러닝 능력과 타율보다 출루률만 따지다 보니 베이스러닝이 형편없는 선수들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득점이 필요할 때 과감하게 득점하지 못했다.


반면 컵스는 베이스러닝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을 앞세웠다. 사실 올해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한 컵스 선수는 세 명뿐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중요한 순간에 베이스러닝을 할 수 있는 선수들이었다. 특히 7차전에서 나온 세 번의 도루가 모두 득점으로 연결되면서 단기전에서 베이스러닝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었다.


■ 타자놀음Ⅲ -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픽은 무조건 타자



▲ 2011-2015 시카고 컵스 1라운드 지명선수들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임의 승패는 대부분 투수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말하고 이번 두산 베어스의 우승만 놓고 보더라도 야구가 투수놀음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하지만 테오 엡스타인은 ‘타자놀음’을 했다.

엡스타인 단장은 타자놀음을 위해 2011년부터 철저한 준비를 한다.


FA를 통해서 쿠바출신 외야수 호르헤 솔러(Jorge Soler)와 유격수 토레스(Gleyber Torres)를 데려왔다. 그리고 샌디에이고로부터 1루수 앤서니 릿조(Anthony Rizzo)를 데려오기 위해 강속구 투수 앤드류 캐쉬너(Andrew Cashner)와 2명의 마이너 유망주 투수 제프 사마자(Jeff Samardzija)와 제이슨 해멀스(Jason Hammels)까지 내줬다.


테오 엡스타인의 타자놀음은 트레이드와 FA뿐만 아니라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이어졌다. 2012년 외야수 알모라(Almora)를 1라운드에 뽑았으며, 이듬해 2013년 3루수 크리스 브라이언트(Kris Bryant)를 1라운드 픽으로 선발, 다음해 포수겸 외야수 카일 슈아버(Kyle Schwarber)를 1라운드 픽으로 지명한다.


앤서니 릿조 트레이드만 봐도 빌리 빈과 테오 엡스타인의 차이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빌리 빈이 수비 지표가 형편없었던 버려진 포수 스캇 해티버그(Scott Hatteberg)를 데려온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이다.


■ 타자놀음Ⅲ - 그리고 약간의 투수놀음


그렇다고 엡스타인 단장이 타자 보강에만 신경 쓴 것은 아니다. 타자 보강에 비해서는 상당히 미약한 투수보강을 감행한다.


최소 2명의 확실한 선발투수가 필요했다고 판단한 테오 엡스타인은 제이크 아리에타(Jake Arrieta)와 카일 핸드릭스(Kyle Hendricks)를 데려왔다. 하지만 당시 제이크 아리에타는 방어율 5.50에 제구가 들쑥날쑥한 그저 그런 투수였고, 카일 핸드릭스는 마이너리거 유망주였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타자놀음을 끝낸 엡스타인 단장은 2016년 두 명의 에이스 투수를 보강하고 팀 정비를 마무리한다. 바로 두 명의 FA선수 존 레스터(Jon Lester)와 존 레키(John Lackey).


■ 마침내 염소의 저주를 풀다 - 포스트 시즌을 위한 4대1 대형 트레이드


팀 정비를 마친 테오 엡스타인은 108년 동안 지속되어온 염소의 저주를 풀기 위한 시즌을 시작한다. 시즌 초반 연승을 달린 결과 지구 선두에 올라섰고 테오 엡스타인은 팀이 포스트 시즌에 확실히 진출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전 빌리 빈의 절차를 밟지 않기 위해 단기전을 위한 승부를 건다.


바로 팀 내 유망주 4명을 내주고 채프먼(Aroldis Chapman)을 양키스로부터 데려오는 초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한 것이다. 당시 핵터 론돈(Hector Rondon)이라는 걸출한 마무리 투수가 있었지만 단기전을 치르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 시즌 후반기와 포스트시즌을 위해 유망주 넷을 내주었다는 점에서 당시 엡스타인 단장은 팬들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지만 우승을 위해서는 필요한 트레이드였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를 우승으로 증명하며 비난을 잠재웠다.


테오 엡스타인 단장은 전적으로 타자놀음을 통해 팀을 보강했다. 이전 빌리 빈 단장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너무 돈을 아껴 쓰면서까지 선수를 영입하지도 않았다. 기초적인 토대는 값싼 선수들과 신인선수 육성으로 메우고 준비했지만 투수는 외부에서 데려오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준비했고 결국 우승을 이뤄냈다.


머니볼이 미국에서 출판된지 벌써 13년. 이제 세이버매트릭스는 어느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기법으로 전락했다. 구단 여건상 빌리 빈은 여전히 낮은 페이롤을 가지고 선수단을 운영한다. 하지만 테오 엡스타인은 세이버매트릭스를 한 단계 자신의 것으로 발전시켜 타자놀음을 통해 컵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앞으로 타자는 키우고 투수는 사서 쓰는 엡스타인 단장의 야구가 향후 10년을 이끌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우세하다. 앞으로 테오 엡스타인의 야구가 얼마나 이어질지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있는 요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