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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리비아 청년 아메드의 인생 제 2막

#리비아 청년 아메드의 인생 제 2막 은퇴 운동선수, 국제스포츠전문가가 되기까지

#유지은 기자

 

 

 

 

 

15년간 사이클 선수로써 수많은 챔피언십 메달과 올림픽 출전의 영광을 얻었던 리비아 청년 벨가셈 아메드. 은퇴 후, 인생 제 2막을 꿈꾸며 11개월 간의 iSR academy 프로그램을 통해 스포츠전문가로서의 능력을 키우고 있는 그를 만나보았다.

 

한국에서 9,629km 떨어진 북아프리카의 리비아에서 온 아메드는 약 20년간 사이클 선수로 활동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15세부터 사이클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그는 두각을 나타내었을까? 인터뷰 중 그는 부끄러운 듯이 웃으며 사실 사이클을 처음 시작하고 1~2년 정도는 뛰어난 선수로 꼽히지 못했다고 밝혔다. 역시 사이클 선수였던 그의 삼촌은 아메드가 훌륭한 사이클 선수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첫 출전한 대회에서 거의 꼴찌를 면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06년 리비아 챔피언십 동메달을 시작으로 그의 사이클 인생에도 빛이 들기 시작했다.

 

아메드의 발전 가능성을 알아본 리비아 사이클 연맹은 그를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보내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 후, 그는 아프리카 챔피언십, 아랍 챔피언십, 유럽 챔피언십 등 여러 대회에 출전하여 올림픽 출전을 위한 포인트를 쌓았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선수들과의 경쟁을 위해 스위스에서 머물며 훈련을 받기도 하였다. 그 결과 그는 2008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 당시를 회상하며 아메드는 “저는 겁을 먹은 상태였어요. 이름만 듣던 유명한 선수들과 함께 경기를 했으니까요. 그와 동시에 제 자신의 한계를 마주할 수 있었죠”라고 말했다. 2008년 8월 8일, 아직도 아메드는 올림픽 출전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 사이클 선수 시절의 아메드 (좌 측 사진 좌측에서 두 번째)

 

 

 

스스로 느꼈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아메드는 올림픽 이 후, 훈련에 매진하였고 이는 4개의 아랍 챔피언십 금메달과 아프리카 챔피언십 은,동메달을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또한 2012 런던 올림픽을 꿈꾸며 1년간 프랑스에 머물며 훈련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후 발발한 리비아 내전으로 인해 모든 국내 대회가 취소되며 아메드는 포인트를 얻을 수도, 훈련을 할 수도 없게 된다. 이렇게 1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하였음에도 그는 사이클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2013년에 학사 학위를 받고 아프리카 챔피언십 등 대회에 다시 출전하기 시작하며 제 2의 사이클 인생이 열리는 듯하였다. 하지만 리비아 챔피언십에 출전하여 경기 중 당한 부상이 그의 발목을 다시 붙잡았다. 왼쪽 골반과 허벅지 이상으로 찾은 병원에서 의사는 그에게 다시는 사이클을 타지 말라고 하였다. 15세 때부터 사이클이 인생에 전부였던 아메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의사의 경고를 무시한 채로 선수 생활을 이어나갔다. 2014년엔 아랍 챔피언십에서 동메달을 따기도 하였다. 하지만 너무 많은 훈련량 때문이었는지 그의 몸이 버티지 못했고 2014년 8월 15일, 결국 아메드는 사이클 선수로서 은퇴를 하게 된다.

 

은퇴 후, 마땅한 직업을 찾을 수 없던 아메드는 형의 가게에서 일손을 도우며 적은 봉급을 받고 삶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적성에도 맞지 않고 그의 경력을 전혀 활용할 수 없기에 그는 매일을 따분하게 살 수밖에 없었다. 당시 리비아는 계속되는 내전으로 모든 것이 불안정하던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리비아 사이클 연맹으로부터 한국에 있는 iSR academy에 대해 듣게 된 아메드는 두말할 것 없이 한국행을 결정한다.

 

그는 “사실 그 당시에는 반드시 한국에 가야겠다는 생각보다도 리비아를 벗어나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었어요. 내전 때문에 리비아에서 직업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 마찬가지였거든요. 한국에 오기 위해 전화 인터뷰를 했는데 영어로 질문을 하더라고요. 짧은 영어로 자기소개도 하고 제가 왜 한국에 가고 싶은지 열심히 설명했죠.” 2015년 7월 한국 땅을 처음으로 밟은 아메드는 이후 iSR academy에서 영어실력, 컴퓨터 활용능력 그리고 스포츠와 관련된 각종 강의(스포츠마케팅, 국제스포츠행정, 코칭, 스포츠미디어 등)를 접할 수 있었다. 리비아에서 운동선수로 살다보니 컴퓨터조차도 쉽게 다룰 수 없던 그는 현재 프레젠테이션을 무리 없이 할 수 있을 정도로 관련 능력을 키웠다. 약 2시간 동안의 인터뷰 역시 영어로 진행하였지만 필자가 느끼기에 영어를 1년밖에 배우지 않은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 iSR academy 프로그램 참가하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한 아메드(가운데 하단)

 

 

 

현재는 1년 프로그램의 마지막 과정으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인턴십을 하고 있는 그에게 한국에서의 생활에서 가장 힘든 점을 물어보았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언어도, 공부도 아니에요. 바로 음식이었죠. 종교적인 이유로 할랄음식을 먹어야하는데 한국에서 할랄음식점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담당직원에게 정보를 얻어 할랄식품을 파는 곳에 가서 재료를 사다 직접 해먹고는 했어요. 평창에 살고 있는 지금도 점심은 도시락을 싸오고 저녁은 집에서 직접 요리해먹고 있어요. 만약 이런 상황을 담당직원이 미리 알고 있었다면 서로 당황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었겠죠.”

 

그렇다면 iSR academy을 통해 진행된 여러 프로그램에 대해 직접 경험한 그는 어떤 평을 할지 궁금했다. 그는 “우선 장기간 영어능력, 컴퓨터실력 그리고 다양한 종목의 다른 은퇴선수들과 함께 공부하고 생활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에 무척 감사합니다. 좋은 일도 힘든 일도 있었지만 모두 제 인생에 도움이 되는 소중한 경험이라고 믿어요.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딱히 불만은 없지만 영어 수업이 수준별로 진행되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영어를 잘 하는 친구도, 못하는 친구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수업을 듣기 때문이에요. 기초 영어부터 가르칠 거라면, 이미 그 수업이 필요 없는 사람은 한국어를 배우거나 다른 강의를 듣거나 해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 더 좋겠죠.”

 

 

 

* 평창 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는 아메드

 

 

 

아메드는 5월 말, 인턴십을 종료하고 올해 여름 본국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iSR academy를 통해 쿠웨이트의 사이클링 코치직에 지원하였으나 아직 답을 듣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뿐이라고 웃으며 말하는 아메드에게 미래의 꿈을 물었다. “지금까지 사이클링을 해왔고 앞으로도 사이클링을 떠나고 싶지는 않아요. 정세가 불안정적인 리비아에서였다면 사이클링 코치를 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겠죠. 그 전에는 다른 나라에서 살고 일하는 것은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한국 생활을 통해 자신감도 얻고 더 넓은 세계를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어요. 2018년에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는데 그 때 다시 한국을 찾아 제가 인턴으로써 배운 것들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평창에서 근무하며 마주친 아메드는 궂은 일이도 도맡아하는 적극적이고 친화력 좋은 청년이었다. 앞으로 그가 어디서 어떤 일을 하며 살게 될지는 모르지만 한국에서의 모든 경험이 그에게 자산이 될 것임을 확신하며 그의 앞길을 응원해본다.

 

 

 

<iSR academy란>

At the iSR Academy we aim to address such challenges by offering

an applied programme that gives retired or retiring athletes advice,

skills, experience and internships, to help them move from

competition to career, from the field of play to the field of work.

- Adam L.Pengilly (Director of iSR Acade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