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원준연
“젊음은 돈 주고 살 수 없어도, 젊은이는 헐값에 살 수 있다.”
케이블 TV tvn의 인기 프로그램 ‘SNL코리아’ 대본 작가인 유병재씨가 자신의 트위터에 우리나라에 만연하는 ‘열정페이’ 논란에 대해 촌철살인으로 표현한 경구이다.
열정페이란 열정과 페이(Pay)가 결합한 신조어이다. 원래는 좋아하는 일에 대한 경험을 돈을 주고 사겠다는 뜻이지만, 무급 또는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주 적은 월급을 주면서 청년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행태를 비꼬는 단어로 많이 쓰인다.
최근 신문이나 방송, SNS 등에서 열정페이라는 단어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돈을 적게 줘도 된다는 생각으로 기업이나 기관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좋은 경험이니 적은 월급
(혹은 무급)을 받아도 불만 가지지 마라.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다’라는 태도를 보일 때 이를 비꼬는 말이다.
< 사진 / Google >
젊은이들의 노력과 열정이 착취당하는 현상은 비단 한국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태평양을 건너 미국도 학생선수들에게 열정페이를 강요하고 있다. NCAA(미국대학스포츠협회)에 소속된 농구선수와 풋볼선수들은 보통 4년 동안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생활을 한다. 언뜻 보면 선수들이 특혜를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NCAA규정에 따르면, 선수들은 대학교 4년을 끝내야만 프로리그에 진출할 수 있고, 대학교에 소속되어있을 때는 어떠한 연봉을 받을 수도 없으며, 광고촬영이나 스폰서를 받을 수 없다.
이러한 조항들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NCAA Division 1 농구, 풋볼리그는 NBA나 NFL 못지않은 전국적인 인기를 누리며, 막대한 입장권 및 중계권 수입을 챙길 뿐만 아니라 대학교 팀들의 감독들도 엄청난 연봉을 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NCAA는 연간 TV 중계권료와 광고계약 등으로 약 10억 달러(1조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또한, 올해 NCAA 토너먼트 정상을 밟은 듀크대학교 농구팀의 마이크 슈셉스키 감독은 1000만 달러(약 110억원), 앨라바마대학교 풋볼팀을 이끄는 닉 사반 감독은 600만 달러(약 70억원)의 고액 연봉을 받고 있다. 이들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감독들도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으며 돈방석에 앉아 있다.
이에 반해, 학생들이 매년 받는 장학금 1만 3천 달러(약 1500만원, NCAA Division 1 대학교 학생선수 평균)는 보잘 것 없는 수준이다.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NCAA와 코치들과 비교해볼 때, NCAA 학생선수들은 ‘미국 판 열정페이‘의 피해자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 학생선수들을 상대로 열정페이를 요구하는 NCAA를 풍자하는 삽화들 / Google >
또한, 학생선수라는 제약 때문에 광고 및 라이센싱 계약을 할 수 없음으로써 생기는 피해도 많다. 실제로 스포츠 비디오게임회사인 EA스포츠는 수년전 UCLA대학교 소속이던 애드 오배넌 선수의 사진을 아무런 라이센싱 계약도 없이 게임CD 커버에 사용하였다. 이는 대학생선수들이 라이센싱 계약을 할 수 없다는 조항을 악용한 것으로, 이에 반발한 오배넌 및 다른 선수들은 오랜 법적공방을 끝에 승소, EA스포츠로부터 4000만 달러(440억원) 가량의 배상금을 지난 해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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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LA 농구팀의 애드 오배넌(왼쪽), 애드 오배넌을 모델로 사용한 비디오 게임(오른쪽) / Google >
대학선수들이 NCAA에 열정페이를 강요당하는 현상이 지속되자, 현재 미국에서는 선수들 및 전문가들이 언론을 통해 선수들이 열정페이의 피해자가 된 현실을 꼬집으며 “학생선수들은 장학금 이외에 금전적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사회의 젊은이들이 현실에서 좌절을 겪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는다면 사회의 미래는 암담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NCAA도 젊은이들과 선수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열정을 펼칠 수 있도록 대책마련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가까운 미래에 열정페이의 뜻이 ‘젊은이들의 열정이 적절하게 보상받는 것’으로 변하는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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