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아영 (스포츠둥지 기자)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처럼 기사가 술술 써진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스포츠 둥지 기자가 되기 전 나는 하루에도 몇 개의 포스팅을 하고도 글을 더 쓰고 싶어서 손이 간질간질 거렸다.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내가 가진 생각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나는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엉뚱하고도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살기 때문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공유하면 나 같이 엉뚱한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준다. 그런 기쁨이 내게 글쓰는 재미를 알려줬다. 그동안 나는 많은 사람들이 본다는 부담감과 형식적으로 쓰는 기사 형식을 추구하려고하다 보니 내 페이스북에서나 볼 수 있는 편안한 재미와 쫄깃쫄깃하고도 감질맛 나는 스토리는 빼놓고 있었다. 나의 마지막 남은 기자로서의 2개월의 스포츠 둥지 포스팅은 언제, 어디서든 부담 없이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페이스북처럼 편안한 아티클이 되려고 한다. 그래서 조금 전 포스팅했던 페이스북 포스팅을 그대로 가져와서 서문을 시작하려 한다.
2013 마무트컵 청송 전국 아이스클라이밍 선수권대회 경기장 ⓒ 이아영
아이스클라이밍 전국선수권 대회를 다녀왔다. 많은 선수들 중에서 첫 날 등록부터 내 시선을 사로 잡은 선수가 있었다. 수 많은 노스페이스 패딩 가운데 단연 돋보니던 EIDER 파카... 최근 유행하고 있는 노스 히말라야 보다 더 뽕신뽕신(?)한 패딩 때문에 눈이 먼저 간 것이 사실이었지만 뭔가 생기 넘치는 표정 때문에 눈이 갔었다. 올림픽 종목에도 없고 아시안 게임 경기에도 없을 뿐더러 여자 선수들은 전국체전 경기조차 없는 아이스 클라이밍...
나는 체육고등학교 체육대학교를 거치면서 봐온 종목들이 너무나도 대중적이고 올림픽 정식종목에 포함된 종목들이라 아이스클라이밍 종목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했고 관심 또한 없었다. 어쩌면 내게 그 종목을 알 수 있었던 노출의 기회가 없어서이기도 했던 것 같다. 난 14살에 운동을 정식으로 시작해서 어느덧 체육계에 횟수로 15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 내 주변에는 훌륭한 선수가 많았던 만큼 하기 싫은 운동 억지로 하는 선수들이 정말 많았다. 즉, 인생이 너무나도 무료하고 재미없는 선수들이 많았다. 요즘에도 은퇴를 위해... 은퇴 이후 삶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선수들이 여전히 많이 있다.
아이스 클라이밍 경기를 직접 보고 와서 난 정말 많은 반성을 했다. 그 종목에 큰 매력을 느꼈다. 경기 진행을 위해서 간 것이었지만 경기를 보는 내내 어떻게 하면 이 매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로 다 설명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기자 정신이 증발되지 않았나보다. 그래서 바쁜 이 와중에 펜 대신 손가락을 들었다. 선수와 인터뷰를 위해서 연맹에 협조 요청을 보냈고 마침내 내 기사 주인공의 번호를 받았다. 바로 내가 경기 첫날부터 시선이 갔던 그 선수였다. 경기 전엔 선수들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누가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몰랐다. 근데 내가 눈여겨봤던 그 선수가 이번 경기에서 우승을 했다.
나는 선수와의 인터뷰 후 전화를 끊고 그 기분 좋은 여운이 가시질 않아서 한 참이나 웃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21살의 어린 클라이머 송한나래 선수다. 4살 때부터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로 활약하다가 작년 겨울 처음으로 아이스 클라이밍 경기에 출전했고 1년 만에 속도, 난이도 부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일반적으로 나처럼 올림픽 정식 종목에 해당되는 선수들은 자기만 잘하면 대학이나 실업팀까지 진로가 수월하다. 그런 선수를 받아주는 학교가 있고 팀이 있기 때문이다. 근데 이런 선수들은 대학을 가는데 있어서 받아주는 곳도 없고 팀도 없었기 때문에 그 동안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좋아하는 클라이밍을 해왔지만 전국 상위권 입상 실적이 있어도 갈 곳이 없어서 많이도 실망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스포츠가 좋아서 막연히 느낀 애정 때문에 이끌려 스포츠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누구의 지원 없이도 시합장에 스스로 찾아가서 대회에 참여하는 클라이머들의 열정에 나는 정말 놀랐다. 내 선수시절 조금이라도 존재했었던 나태함과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되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 정말 맞는 말 같다. 자기가 좋아서 이끌려 온 경기장에서 그 선수는 내내 웃고 있었다. 그래서 내 시선을 뺏을 수밖에 없었고 난 이렇게 그녀의 스토리를 쓰기 시작하려고 한다.
전화를 걸었다.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수화기 건너편으로 왠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목소리처럼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포털 사이트에 아이스 클라이밍을 쳤을 뿐인데 페이지는 온통 “송한나래 2관왕, 난이도-속도 1위, 송한나래 선수권 대회 우승”이라는 단어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미 많은 기자들에게 전화가 오지 않았을까? 내 전화 인터뷰가 부담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전화 드리는 점이 불편하지는 않으신지 묻자 손사레를 치며 “아유! 절대 아닙니다. 네네! 인터뷰 할 수 있습니다!”하면서 격하게 내 전화를 반겼다. 1초 만에 내 긴장된 심장을 스트레칭 시켜줬다.
사실 경기장에 간 것은 선수권 대회 장내 아나운서 역할을 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에 대회장에서 선수를 보고도 직접 취재할 여유가 없었다. 그렇지만 모든 경기를 진행하며 선수의 플레이를 다 봤기 때문에 많은 정보를 갖고 질문하는 것에 반가워했다. 사실 일반인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종목이기에 쓰여 지는 기사들이 형식적이고도 팩트를 중심으로 쓰는 기사가 대부분이기에 경기 내용과 상대방 선수의 경기 결과 그리고 자신의 선수 이력을 꿰뚫고 질문하는 기자는 드물다. 그래서 질문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그리고 내가 원하는 이상의 답변을 친절히 알려주는 모습에 이 선수의 애정이 얼마나 대단한 지 알 수 있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태릉에 방문했을 때 모선수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 종목의 대표선수로서 올림픽에 출전할 수준의 실력이면 많은 국민들도 나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는데 취재 나오는 기자가 나에 대한 정보가 없고, 심지어 내가 누군지 얼굴도 모르고 찾아오는 기자들이 많다. 정말 짜증나서 대답해주기가 싫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너무나도 공감이 되었고 기자가 취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그래서 매 순간 선수의 입장에서 취재를 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선수 출신 기자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앞으로 둥지에도 많은 선수 출신 기자가 투입되길 바란다.
21살의 어린 클라이머 송한나래 선수
송한나래 선수는 18년 전 아버지의 영향으로 스포츠 클라이밍에 입문했다. 전문산악인으로 오랫동안 활동하신 아버지 송석원씨의 영향이 컸다. 그는 이번 전국 아이스클라이밍 선수권 대회에도 참가해 딸과 나란히 경기에 참가한 유일한 아빠선수였다. 비록 순위권에는 들지 못했지만 딸과 함께 참가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주변인들의 따뜻한 격려를 받았다. 송한나래 선수는 시상식이 끝난 후 달려드는 뜨거운 취재 열기에 경기 우승 상품을 챙기고 뒷마무리를 하는 것은 모두 아빠의 몫이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두 사람의 움직임만으로도 경기장이 꽉 채워진 느낌이었다.
송한나래 선수는 아빠를 따라다니면서 스포츠 클라이밍을 시작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얼음위에서 펼쳐지는 아이스 클라이밍이라는 종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녀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아이스 클라이밍을 직접 본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우리 부모님들 세대만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 20대들은 성공을 위해, 아니 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취업의 문턱을 넘기 위해... 심지어 평범하게 살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가져야 하고 많은 스펙이 필요하다. 이런 구조 속에 살고 있는 먹고 살기 바쁜 대한민국 20대들이 이 땅에서 레져스포츠를 즐기기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그녀는 아버지로 인해 자연스레 이 종목을 알게 되었고 그저 막연하게 ‘언젠가는 나도 한 번쯤 해보고 싶다’는 생각만 가져봤지 정말 이렇게 선수로 활동을 할 줄은 몰랐다.
운동을 하기에 앞서 준비해야하는 장비들이 많고 또 쉽게 구입할 만큼 저렴한 가격은 아니기에 시작하기 쉽지가 않았다. 아이스 클라이밍을 처음으로 시작한 것은 1년 전 지금의 시합을 출전하기 위해서였다. 그 때는 준비기간도 짧았고 시합에 참여하기 위해 갖춰야 하는 장비들도 없었기에 빌려서 운동했고, 빌려서 경기에 출전했다. 너무 기초가 부족한 상태로 경기에 임했던지라 경기를 망치고 말았다. 근데 그런 굴욕감과 오기가 지금의 그녀를 만들었다.
송한나래는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로 활동을 하면서 2011년 제57회 대한체육회 체육상 경기부문 장려상, 2010년 스포츠클라이밍 코리안컵 시리즈 여자일반부 우승, 2009년 제3회 글로벌 인재상 등을 수상하며 스포츠 클라이밍계의 떠오르는 신예로 주목을 받았다. 스포츠 클라이밍을 하면서 문득 그녀는 겨울을 이용하여 아이스 클라이밍을 하면 트레이닝 방법에 변화도 되고 이런 기술들이 스포츠 클라이밍을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스포츠 클라이밍을 더 잘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 1년 만에 아이스 클라이밍 계에 정상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아이스 클라이밍은 도대체 어떤 종목일까?
한국말로 하면 빙벽이라는 뜻의 아이스 클라이밍에서 난이도 경기는 인공빙벽 구조물에서 누가 빨리 빙벽을 오르냐를 가리는 경기인데 단순히 빙벽을 오르는 경기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아이스클라이밍 난이도 경기 모습 ⓒ UIAA 공식홈페이지
하지만 인간이 매달려 있기에 다소 어려운 각도로 구성된 인공 구조물에서 선수들은 극한의 근력과 정신력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사람은 물론 보는 사람들마저 피를 말리는 스릴 있는 경기라고 할 수 있다.
선수들은 경기에 앞서 어떤 경로로 올라갈 것인지 머릿속으로 구상할 수 있게끔 ‘루트파인딩(Route Finding)’시간을 가지게 된다. 모든 선수들이 공통적으로 정해진 루트파인딩 시간 외에는 설치된 루트를 미리 볼 수 없도록 현수막을 이용해 경기장 인공 벽을 가려놓는다. 경기에 앞서 일정 시간 동안에만 경기 루트를 보게 되고 자신이 경기에 직접 임하기 직전까지도 선수들은 심판으로부터 철저히 통제를 받고 자신의 차례가 되어서야 비로소 경기장 루트를 다시 볼 수 있다. 경기에 앞서 선수들은 다른 선수들이 올라가는 경로를 보거나 기술을 참고하여 자신의 경기에 더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빙벽등반에 쓰이는 장비인 크램폰, 아이스 툴, 빙벽화, 아이스 스크루, 로프, 안전벨트, 헬멧, 카라비너, 하강기 등 이 밖에 여러 가지 용구들을 이용하여 경기를 한다. 빙벽등반 기술은 프랑스식 기술, 독일식 기술, 미국식 기술 등 세 가지가 있는데 평평하게 발을 놓는 플랫 푸팅(flat-footing)이라고 불리는 프랑스식 기술은 완만한 경사의 얼음이나 단단한 눈을 오르는 데 가장 쉽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이 기술은 균형, 리듬, 발목 관절의 유연성을 필요로 한다. 독일식 기술은 동부 알프스의 험난한 눈과 얼음을 등반하기 위해 독일인과 오스트리아인에 의해 발전된 기술이다. 프런트 포인팅(front-pointing) 기술로 널리 알려진 이 기술은 가파른 빙벽을 오르는 데 가장 효과적인 기술이며, 오늘날 빙벽등반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기술이다. 크램폰의 앞 발톱을 얼음에 박아 딛고 일어서는 기술로, 설사면을 키킹 스텝(kicking step)으로 오르는 것과 유사하다. 크램폰 위에 체중을 잘 안배해 균형을 잡아야 한다. 미국식 기술은 독일식과 프랑스식을 절충한 혼합 기술이다. 한 발은 프런트 포인팅 다른 한 발은 플랫 푸팅을 하여 발의 피로를 최소화하는 기술이다. 이런 기술들은 눈과 얼음의 특성, 경사에 따라 적절하게 혼용한다.
아이스 클라이밍 종목에 또 다른 종목인 속도 경기는 두 명의 선수가 동시에 경기를 펼치는데 정해진 코스(A코스, B코스)를 각자 번갈아 가며 오르고 두 번의 경기 기록을 합산하거나 평균을 내는 것이 아닌 두 번의 기록 중 최고 기록으로 한 선수를 다음 라운드로 진출시키는 것이 방식이다. 재미있는 것은 각자 주어진 라운드에서 두 번의 시기에 도전하게 되는데 둘 중 한 번이라도 경기 코스에서 아이스바일(낫처럼 생겨서 선수가 빙벽 위를 오르도록 도와주는 손을 사용하여 쓰는 도구)과 선수의 몸 모두가 경기코스에서 이탈하게 되어도 나머지 한 번의 시기 기록으로도 경기 결과 평가가 가능하다. 속도 경기에서는 엄청난 속도의 현란한 키킹 스텝 기술을 볼 수 있다. 세계에서 제일 빠른 러시아 선수들은 8초대로 돌파를 한다고 하니... 얼마나 빠른지 궁금하다면 500원을 지참하고 이번 주 토, 일요일에 경북 청송 빙벽경기장을 찾는 것은 어떨까?
맛있는 전통음식들 ⓒ 이아영
맛있는 사과와 구운 가래떡 그리고 참숯에 구운 고구마 등 지역특산물이 무제한 제공되고 눈썰매 체험 등 재미난 놀이와 경기 그리고 먹거리를 즐기고 싶다면 가족들과 함께 경북 청송으로 떠나자. 청송 특산품인 청국장, 된장 그리고 청송 사과를 경기장을 방문한 방문객들에게 무한 퍼주는 것을 보니...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2편에서 계속...
ⓒ 스포츠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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