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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원

이상과 현실 사이에 갇힌 싱가폴 스포츠 발전모델(2)

 

 

글 / 이철원 (스포츠둥지 기자)

 

 

        사실, 이 외에도 Adrian에게 말하기 쉽지 않았던 부분이 더 있었다. 싱가폴 스포츠 발전이 힘든 이유로 두 가지를 더 꼽아 보겠다.

 

 

 

 

첫 번째로, 자국 선수 육성이 아닌 외국선수 귀화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런던 올림픽 여자탁구 단체전 3~4위 결정전에서 한국을 꺾고 동메달을 차지한 싱가폴 여자탁구 팀은 Team Singapore의 자랑이다. 또한 싱가폴은 여자탁구 개인전에서도 동메달을 차지했다. 싱가폴 체육회 건물에 이들의 사진이 커다랗게 프린팅 되어 있을 정도로 이들이 싱가폴 스포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싱가폴은 이들의 활약에 힘입어 지난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 두 개를 획득하며 역사상 최고의 성적(한 대회에서 두 개 이상의 메달)을 거두어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선수단이 귀국 후 도시에서 퍼레이드를 가질 정도였다. 하지만, 이 두 개의 동메달은 모두 중국에서 데려온 귀화선수들이 획득한 것이었다. 싱가폴에 와서 알게 된 현지인들에게 싱가폴 탁구가 대단하다고 말할 때마다 단 한명도 빼놓지 않고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싱가포리언이 획득한 메달이 아니다. 중국 선수들이 딴 메달이다.” 엊그제 택시를 탔다가 싱가폴 탁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봤는데 택시기사는 이런 말을 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중국이 딴 메달이지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는 스포츠를 수입(import)하고 있다.”

 

당장의 성과를 위해 국민들이 인정하지 않는 귀화정책을 펼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됐다.

두 번째로는 ‘체육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략종목 선택과 지원’부분에 관해 발표를 하던 도중 한국이 최근 들어 신체적 조건과 자연환경에서 자유로운 컬링 종목에 많이 투자하고 있다는 말을 했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컬링이 뭐지??”라며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간단히 설명을 했는데도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아프리카에서 온 스포츠심리학 연구원이 “나도 아는걸 너희가 왜 몰라?”라며 의아해할 정도였다. 명색이 한 국가의 체육회에서 일한다는 사람들이 국제경기 정식 종목조차 모르는 현실이 이해가 안 갔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업무 후 싱가폴 쇼트트랙 대표팀을 가르친다는 말을 했을 때 다수의 싱가폴체육회 직원들이 “싱가폴에 스케이트장 없는데?” 혹은 “싱가폴 스케이트 대표팀이 있어?”라는 반응을 보였었다. 싱가폴체육회의 지원을 받아 협회를 운영하고 각종 국제대회에 꾸준히 참가하는 자국 대표팀을 체육회 직원이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

 

이 상황을 쇼트트랙 대표 Dano에게 말하자 그녀는 “당연해. 우린 연구 분야 빼고는 제대로 된 체육관련 학과 자체가 없고, 그걸 전공하는 사람도 드물어. 싱가폴체육회 직원들 대다수가 그냥 취업해서 일하는 회사원 같은 개념이라 스포츠에 대한 지식과 이해도 자체가 거의 없어. 선수 입장에서 그들의 업무처리를 보면 답답할 때가 많아”라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싱가폴 쇼트트랙 대표팀 멤버 중에서도 스포츠를 전공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고, 고등학생 선수들 역시 체육을 전공할 마음이 없다고 말했다. 국가에서 청소년들에게 체육전공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싱가폴체육회에서는 전 세계의 스포츠 유명학자나 관계자를 초빙해 회의를 갖고 세미나를 가지는 프로그램을 상당히 많이 추진하고 있다. 나에게도 출근 첫 날 한국의 최고 스포츠과학 전문가가 누구인지, 그들의 개인 프로필과 논문 및 저서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스포츠 강국에 대한 관심이 많다. 가끔씩 그들의 계획에 깜짝 놀랄 때가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스포츠 강국이 되고 싶다면 스포츠 선진국의 시스템을 도입하기 전에 먼저 자국의 스포츠 인프라를 제대로 형성하는 것이 절실해 보였다.

 

 

 

 스포츠둥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