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철원 (스포츠둥지 기자)
지난 9일, 싱가폴체육과학연구원(이하 SSI) 동료들을 모아놓고 한국의 엘리트 스포츠 발전과정과 관리 시스템에 대해 발표할 기회를 갖게 됐다. 발표 하루 전날, 부서 간부인 Adrian(Senior Executive)이 내 프리젠테이션 자료에서 ‘엘리트 선수가 가진 생활체육저변 확산 파급력’ 관련 내용을 보다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런 시스템이 싱가폴에서도 가능할까?”
대부분의 스포츠 선진국에서는 생활체육을 활성화 시키고 그 가운데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을 발굴해내서 엘리트 선수로 육성해나가는 방법을 선호한다. 국민의 건강증진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엘리트 스포츠의 발전을 가져오는 이상적인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은 오랜 시간과 꾸준한 투자를 요한다. 싱가폴 같이 인구 자체가 적고(서울 인구의 절반수준), 국가에서 스포츠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사실 이런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리리라 생각됐다. 장시간 동안 꾸준한 투자를 장담할 수도 없을뿐더러, 오랜 시간이 걸려 생활체육 저변을 확산시킨다고 해도 인구 자체가 너무나 적기 때문에 세계무대에서 통할 엘리트 선수를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500만 정도의 인구가 있지만, 여기에서 싱가폴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과 노약자, 빈곤층 인구를 제외한다면 너무나도 적은 숫자가 계산된다).
이들은 캐나다와 호주 같은 생활체육 선진국의 스포츠 프로그램을 도입해 자국에 맞게 수정해나가고 있지만 이들로써도 ‘우린 언제쯤 올림픽 챔피언을 갖게 될까?’라는 고민에 잠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단, 나는 Adrian의 질문에 “현재의 싱가폴 스포츠 정책과는 별도로 소수의 어린 선수를 집중 육성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라는 답을 해줬다. 지금 싱가폴이 진행하고 있는 생활체육 시스템의 문제점 세 가지를 말해줬다.
첫 째, 일 년에 한 번 있는 싱가폴 전국체육대회를 제외하곤 제대로 된 스포츠 경기가 없다. 생활체육 저변을 확대하고 그 속에서 개인의 능력을 발휘하고 발전시키려면 많은 시합에 참가하는 것은 필수 사항이다. 종목 수 자체가 적은 전국체육대회와 각 종목별 국가대표 선발전 격인 전국대회를 빼면 생활체육인이든 선수든 시합에 참가해서 기량을 겨뤄볼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일 년에 한두 번 시합에 참가해서 어떻게 자신의 기량을 발전시키고 엘리트 선수로서의 꿈을 꿀 수 있겠는가?
두 번째, 싱가폴의 병역문제이다. 싱가폴 청년이라면 대부분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에 군대를 가야한다. 입대 연기나 면제는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한 예로, 싱가폴에서 처음으로 쇼트트랙을 시작한 Lucas라는 친구가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일을 하며 틈틈이 운동을 하던 그는 동계아시안게임에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내가 봤을 때에도 꽤 가능성이 있던 선수였다. 하지만, 곧장 군대를 가야했고 2년간의 복무 끝에 올해 빙상장으로 돌아왔지만 초보자나 다름없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신체적으로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은 가장 왕성한 힘을 뽐낼 수 있는 시기다. NCAP(코칭 라이센스) 스포츠 생리학 시간에서도 교수는 항상 “마이클 펠프스의 전성기였던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은 운동선수가 자신의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절정의 시기다”라고 말하곤 했다. 제 아무리 국가대표 선수라고 하더라도 한참의 나이 때에 2년간 공백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육정책과 운동시간의 문제를 지적했다. 싱가폴에서는 이유를 막론하고 학생은 무조건 모든 수업과 시험에 다 참석해야 한다. 이 때문에 선수들이 시즌 도중임에도 국제시합에 참석을 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다. 교육부는 “모두가 엘리트 선수가 될 수 없기에 그들의 미래를 위해서 철저히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방과 후 하루에 한두 시간 씩 운동해서 어떻게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학생선수’는 학업을 병행하는 운동선수지 운동을 병행하는 학생이 아니다. 필수적인 수업에는 참석을 시키되 부족한 부분은 미국처럼 추가 수업을 제공한다거나 개별 과제로 보충할 수 있는 유연성 있는 제도가 아쉬운 것이었다.
진지하게 내 의견을 듣고 있던 Adrian에게 나는 “물론, 시간과 금전적 여유만 있다면 지금 싱가폴이 추진하고 있는 방법이 최선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수십 년간 꾸준한 투자를 장담할 수 없다면 정부정책을 유연성 있게 변경해서 소수의 엘리트 선수를 먼저 키워보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해줬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 갇힌 싱가폴 스포츠 발전모델(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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