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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원

싱가폴 스페셜올림픽 어린이들에겐 한국 산타가 있었다

 

글 / 이철원

 

           지난 1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ISU(국제빙상경기대회) 스피드스케이팅 스프린트 세계선수권에서 대표팀 통역 겸 D 포털사이트 스포츠뉴스팀 통신원 자격으로 일했던 적이 있었다.

 

시합 전날, 훈련을 마친 모태범이 “형, 제가 1등으로 들어오면 사진이랑 인터뷰 좀 많이 잡아주세요”라는 요청을 해왔다. 이유를 묻자 “A사에서 무(無)조건적인 용품지원을 받고 있는데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1등해서 외부에 브랜드 노출시켜주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아서요”라고 답한다. 사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는 모태범이 용품지원을 받고 있음과 그것을 너무나도 감사히 여기는 이유가 궁금해 물으니 “용품을 사서 쓸 능력은 되죠. 그런데 온갖 운동용품을 다 자비로 사서 쓰려면 사실 부담이 만만치 않아요. 그리고 제가 지원을 받게 되면 후원을 받지 못해서 용품부족에 시달리는 후배들한테도 다시 나눠줄 수 있으니 좋죠”라며 웃었다.

 

한국에 돌아온 후 A사로부터 연락을 받게 됐다. 기사에 쓰인 모태범의 시합사진 원본 파일을 갖고 싶다고.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 될 거라면 사양하겠다고 답을 하자 A사 김윤수 대표가 직접 연락을 해와서 “절대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겠습니다. 단지 그 사진을 크게 인화해서 직원들 일하는 곳에 붙여두고 싶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에게 우리가 미약하나마 작은 힘을 보태고 있으니 다 같이 더 힘내자는 뜻을 직원들에게 전하고 싶었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김윤수 대표와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종종 연락을 주고받으며 선수 지원에 관한 의견을 나누며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 기부 받은 이너웨어를 입고 연습하는 스페셜올림픽 어린이들

 

 

석 달 전, 싱가폴체육과학연구원에서 일하게 되어 싱가폴로 오게 됐다. 마침 싱가폴 빙상연맹이 넉넉지 않은 재정 때문에 헤드코치 외에 다른 코치를 쓰고 있지 못하고 있어서 퇴근 후에 무급으로 그들을 도와주기로 했다. 연맹에서는 대표팀 외에도 스페셜올림픽 선수들의 지도를 요청했다. 내년 초 한국에서 열리는 평창 스페셜올림픽에 참가할 어린이들이었는데 제대로 된 슈트도 없이 청바지에 얇은 셔츠를 입고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스페셜올림픽 측 직원에게 두꺼운 이너웨어나 패딩은 잘 준비하고 있냐고 물어보니 “한국은 겨울에도 별로 안 춥지 않아? 그런 것들이 필요해?”라며 되물어본다. 한 겨울 강원도의 강추위를 설명해주자 놀라면서도 “하지만 우리는 기본 점퍼 외에는 딱히 추가 용품을 구입할 예산이 편성돼있지 않아”라고 한다.

 

연평균 온도가 30도를 훌쩍 넘는 싱가폴에서만 지내던 어린이들이 한겨울에 평창에서 얼마나 고생할지 걱정이 됐다. 문득 A사와 김윤수 대표가 떠올랐다. 한번 만나보지도 않은 사이에 불쑥 용품지원 문의를 한다는게 쉽지는 않았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안부인사 겸 어려운 환경의 스페셜올림픽 어린이들에 대한 내용을 이메일로 보내게 됐다. 그 다음날, 김윤수 대표로부터 “한국에 오는 코치와 어린이들이 몇 명인가요? 성별과 신체사이즈를 알려주세요. 바로 싱가폴로 보내 드리겠습니다”라는 답변을 받게 됐다. 그리고 일주일 후 커다란 박스가 체육과학연구원의 내 책상으로 배송됐다. 그에게 감사의 전화를 하자 그저 소소한 도움이었을 뿐이라며 “사이즈가 안 맞거나 모자란 것이 있으면 당장 알려주세요. 바로 보내 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수들을 위해 묵묵히 힘을 실어주고 있는 기업과 사람이 있다는 것을 꼭 알려주고 싶었다. 분명 A사 외에도 많은 기업과 사람들이 수많은 종목에서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는 선수들을 돕고 있을 것이다.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노력하는 선수들을 지원해줬으면 좋겠고, 그 선수들이 훗날 성공해서 후배들을 다시 돕게 됐으면 좋겠다. 어려운 환경 때문에 꿈을 쫓아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들리지 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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