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철원
지난 12월, 이틀간 태국 방콕에서 ‘King of Speed’라는 쇼트트랙 시합이 개최됐다.
ISU(국제빙상경기연맹) 레프리가 참석해 국제대회 규모로 진행된 이번 시합에는 태국과 말레이시아, 싱가폴 쇼트트랙 대표팀이 참가했으며, 헤드코치 썬단단과 싱가폴체육과학연구원에 근무하며 쇼트트랙 어시스턴트코치로 활동하는 필자가 이끄는 Team Singapore이 전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번 시합을 통해 얻게 된 것이 참 많다. 헤드코치의 감기몸살로 이번 대회에서는 필자가 임시로 헤드코치를 맡아 선수들을 지도하게 됐는데, 특히 코칭 현장에서의 ‘영어 회화’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사실, 세계선수권대회 통역을 두 차례 다녀온 후 코칭스텝과 선수들의 영어실력에 대한 중요성을 너무나 뼈저리게 깨닫게 됐다. 이후, 후배 선수들에게 영어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하는 입장이지만 선수와 코치 입장에서 느끼게 될 영어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을 해줄 때에는 딱히 마땅한 예시가 없어 난감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후배들에게 확실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경험을 쌓게 됐다.
싱가폴 쇼트트랙 대표팀의 에이스(Ace) 루카스가 1,000m 경기에 참가했을 때다. 코칭을 하고 있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한 바퀴가 남으면 심판들이 종을 쳐서 선수에게 알려줘야 하는데 종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선수가 9바퀴를 타고 경기를 끝낸 상황에서도 심판진은 경기를 끝내지 않고 있었다. 이상함을 느낀 루카스도 코치박스의 나를 쳐다보며 어찌할 줄 모르고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말레이시아와 태국 측 코치는 그저 ISU 레프리만 쳐다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심판들이 경기를 끝내지 않은 상황이기에 우선 계속해서 시합을 진행하고 있으라는 신호를 보낸 후 곧장 심판석으로 달려갔다. 태국 빙상연맹 측에서 나온 심판들에게 “마지막 바퀴를 남겨두고 종도 안쳤고, 이미 선수는 9바퀴를 탔는데 왜 계속해서 시합을 진행하고 있냐!”며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 태국 측에서 제대로 된 답변을 해주지 못하자 ISU 레프리가 달려왔다. 그는 나에게 “싱가폴 코치는 우선 돌아가 있어라. 내가 확인하겠다”라며 나를 제지했다. 이에 나는 “ISU 레프리와 태국 심판 4명이 있는데도 9바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확인 전에 당장 시합부터 끝내고 우리 선수를 밖으로 내보내 달라!”고 항의했다. 결국 ISU 레프리가 곧장 시합을 종료시키고 선수들을 내보낸 후 토의에 들어가게 됐다. 토의 끝에 루카스가 2등으로 판정되기에 “루카스가 다른 선수들을 한 바퀴 잡았는데 왜 2등이냐”고 다시 항의를 해서 순위를 수정받게 됐다. 루카스가 다른 선수들을 한 바퀴 따라잡자 심판에 익숙하지 않은 태국 측에서 선수를 헷갈렸던 것이다.
▲ 국제시합에서 헤드코치가 해야 할 역할은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다음날 시합이 진행될 때 아이싱에 문제가 생겨 시합이 지연되게 되자 태국 연맹 직원이 나에게 달려와 지연된 사정을 설명하며 정중히 사과를 했다. 또, 조 편성에서 문제가 생기자 곧장 달려와 사과를 하며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는 시합이 종료되는 그 순간까지도 잘못된 상황이나 변경된 상황이 있으면 Team Singapore에 가장 먼저 달려와 양해를 구했다. 제대로 된 항의 한 번에 팀(Team) 전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시합이 끝난 후 문득 ‘만약 그 상황에서 ISU 레프리와 태국 측에 제대로 된 항의를 하지 못했다면 루카스는 몇 바퀴를 더 돌았을까? 또 잘못된 결과가 나왔을 때 상황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판정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국제시합 현장에서의 코칭은 거창한 영어실력을 요하지 않는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내가 항의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만 전달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역할은 코치가 선수보호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인 것이다.
물론, 국제시합에서 심판의 판정을 존중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만, 결과에 잘못된 것이 있다고 느껴질 때는 정당하게 이의를 제기해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 이것 역시 코치의 필수덕목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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