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엄혁주(고려대학교 강사)
간혹 TV 드라마에서 나오는 연인 중 상대방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집착을 보이는 남자나 여자를 볼 수 있다. 집착을 보이는 이들은 상대방이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거나 보이지 않을 때 굉장히 두려워하기도 한다. 동시에 상대방은 그러한 요구를 죄책감이나 의무감으로 받아들여 마지못해 허락하는 경우가 있다. 시청자들은 “안 돼. 들어주면 안 되지.”, “아유 왜 이리 답답할까. 뻔히 알면서도 왜 허락하지.”라고 말하며 분통을 터트리거나 답답해한다. 하지만 이를 ‘협박의 심리학’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다음의 대화를 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넌 내가 사랑하니까 유학 가지 말고 나랑 같이 있으면 좋겠어!” “나 사랑하잖아. 그럼 내 부탁도 들어줄 수 있잖아.” “난 단지 널 사랑하기 때문에 너의 모든 것이 궁금한 거니까 나에게 전부 알려줘” |
위의 대화는 어찌 보면 사랑하는 사이에 흔히 할 수 있는 제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위의 대화는 상대방을 배려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요구나 생각을 강요하기 위해 사용된 ‘협박’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상대방을 협박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협박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면 좋겠다.”, “~~할 수 있잖아.” 등의 표현이 바로 대표적인 협박 자들의 방법이다. 협박 자들로 인해 상대방은 상처와 죄책감(요구를 들어주지 못한)으로 힘들어 하기도 한다. 마음에 내키지 않아도 자신은 거절을 어려워하는 성격이 아닌데도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승낙을 하고 만다. 특히, 상대를 향한 죄책감, 상대의 분노, 상대에 대한 의무감, 두려움 때문에 옳지 않은 요구라고 생각하면서도 승낙을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감정을 무기로 상대를 교묘하게 조종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감정적 협박’이다. 감정적 협박이 수평적인 관계일 때는 상대방이 단지 죄책감으로 요구를 들어주기도 하지만 수직적인 관계라면 요구를 받아들어야만 하는 상황으로 상대방의 상처와 강요는 훨씬 크게 느껴진다.
수잔 포워드(1998)는 감정적 협박의 유형을 4가지로 분류하였다. 처벌형, 자해형, 피해형, 보상형이 그것이다.
처벌형 협박자 |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으면 어떤 결과를 맞게 될지 명확히 알려주는 사람들 |
자해형 협박자 |
자기 마음대로 해주지 않으면 자신을 학대하겠다고 위협하는 사람들. |
피해형 협박자 |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으면 자기는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위협하는 사람들 |
보상형 협박자 |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주기만 하면 근사한 것을 주겠다는 약속을 내거는 사람들 |
자, 이젠 상황을 초등 학교 교실로 옮겨놓고 살펴보자.
초등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과목으로 부동의 1위는 ‘체육’이다. 뛰고, 달리고, 점프하는 등의 움직임에 대한 욕구가 가장 왕성한 때에 체육을 좋아한다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체육을 학생들에게 못하게 한다면 어떨까?
초등학교는 중․고등학교와 달리 담임교사가 전 교과를 가르치며 한 교실에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는 아직 미성숙의 시기인 어린 학생들의 기본생활 형성과 민주시민의 형성과 학습이라는 교육적 관점과 교육과정 운영 면에서 매우 효율적인 방법이다. 즉 담임교사는 교과 간 통합이나 부족한 교과시간을 다른 교과와 대체하여 연장하거나 융통성 있게 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대체과목으로 자주 사용되는 것이 ‘체육’이라는 점이다. 담임교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체육을 좋아하는 학생들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학생들의 잘못된 점과 행동 그리고 공부를 도구로 사용하여 통제하곤 한다. 물론 모든 초등 담임교사가 이러한 방법과 운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연구자 본인만의 사례일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명의 학생이라도 이를 통해 손해를 보거나 상처를 받거나 강요받는다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협박은 우리에게 자존심, 행복, 죄의식, 대인관계에 아주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를 알고 적절히 대처하거나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교사들이 체육을 통제수단으로 사용하는 예는 다음과 같다.
- 운동장에 늦게 나오면 체육수업 안 해요. - 2교시 수학시간에 문제를 다 못 풀었으니 3교시 체육시간에 이어서 할 수 밖에 없어요. - 중간고사가 얼마 안 남았으니까 끝나고 체육 하는 건 어때? - 체육복 안 입고 오면 체육수업 못하는 거예요. |
위의 예에서 보듯이 몇몇 교사는 체육을 그냥 넘어가도 되는 교과, 주지교과를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하는 교과, 그리고 그냥 노는 수업이고 학생들이 좋아하니깐 통제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주된 원인은 첫째, 여교사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서 체육을 기피하려고 하는데 있다. 둘째, 과도한 과목수와 내용으로 인한 공부시간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셋째, 운동장의 부족으로 해당시간에 사용하는 학급수가 많아 체육수업 시간에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넷째, 생활지도에 대한 어려움으로 학생들을 통제하려 할 때 체육을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다섯째, 체육에 대한 낮은 인식에서 비롯된 생각의 전이로 발생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발생해서 안 되는 중요한 이유는 학생들의 움직임 욕구와 권리를 그 무슨 이유를 들어서라도 박탈하게 된다면 학생들의 심동적․인지적․정의적인 통합은 요원(遙遠)하고 몸과 마음이 바른 학생으로 성장시키는데 제약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체육수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학교 현장에서 협박의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관심이 학교체육의 활성화는 물론 학생들의 감정을 억압하거나 불신의 벽을 쌓거나 분노를 느끼지 않도록 하는 첩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교사들의 체육 기피 현상을 해소할 수 있는 즐겁고 재미있는 체육수업에 대한 전문 연수의 필요성이다. 특히, 학교 행정가와 관리자들은 체육보다 주지교과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체육은 주지교과 못지않게 인간의 평생을 좌우할 만큼 큰 역할을 담당한다. 심동적․인지적․정의적 영역을 한 교과에서 고루 다룰 수 있는 과목은 체육 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들은 게임을 통해 신체의 발달과 친구들과 함께하는 협동심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 등과 같은 인성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즐거운 체육수업이 될 수 있도록 현장의 교사를 위한 연수가 이루어져야 함과 동시에 체육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제고를 이끌어내야 하겠다.
둘째, 교육정책적인 면에서의 변혁이 필요하다. 현재 초등학생들은 과도한 교과목 수와 내용 그리고 사교육으로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이나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친구들과 함께 뛰놀고 즐기는 시간의 부족으로 아이들은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자꾸만 자신만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찾으려고 한다. 창의성은 여유에서 나온다. 인지적인 면을 강화한다고 창의성이 높아지는 것도 창출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셋째, ‘운동장 없는 학교’가 생겨나고 있다. 한 번도 말하지 않고 수업에 참여하는 국어, 영어시간을 생각해보자. 학생들 뿐 아니라 교사들도 답답해서 힘들어할 것이다. 운동장 없는 체육도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일 것이다. 학생들이 체육수업을 받고 뛰어 놀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체육수업 교구에 대한 확보로 즐겁고 의미 있는 체육수업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넷째, 체육이 생활지도의 통제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체육은 교과 자체로 신성한 과목이다. 이것이 생활지도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너희들 잘못하면 체육수업 안할 거다.”라는 식의 표현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좋은 체육수업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라는 형태의 발로가 체육수업의 활성화와 더불어 학생들의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첩경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도 체육수업을 잘 운영해 왔다. 이를 토대로 조금 더 노력한다면 더 좋은 체육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보다 미래를 보고, 학생들의 건강과 행복을 담보할 수 있는 교과로 우뚝 설 수 있는 시점이 바로 지금 교사의 인식 전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스포츠둥지
Susan Forward, D. F. (1998). Emotional Blackmail: When the People in Your Life Use Fear, Obligation, and Guilt to Manipulate You. NY: HarperCollins Publishers. 김경숙 역(2008). 협박의 심리학. 서울: 서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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