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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둥지 기자단

KOREA, 에베레스트의 마지막 남은 미지의 길에 오른다.

 

 

글 / 이아영 (스포츠둥지 기자)

 

 

        2012년 8월 19일,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일 저지르는데 일가견이 있는 대한민국은 또 한번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핫뉴스를 발표했다. 그 것은 바로 강원대학교 산악회가 주축이 되어 구성된 “2012 에베레스트 동벽개척등반 평화원정대”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의 마지막 남은 미지의 루트에 도전하겠다고 한 것이다. 홍성욱 대장, 박봉하, 오영훈, 김진석, 안주환, 우석주, 김명래, 정진영, 최근영, 임일진 이렇게 총 10명으로 구성된 평화원정대는 이 날 대한민국 산악계의 주요 인사들과 지인들을 모시고 발대식을 가졌다. 이들은 8월 27일 월요일에 티벳으로 향한다. 약 11월경 에베레스트 정상 공격을 시도할 예정인데 당시 현지의 날씨 상황에 따라 성공여부가 가려질 전망이다. 현지의 포터와 셰르파를 포함한 20명의 인원이 두 달 반이라는 시간을 고산에서 생활할 것이며 11월 초 중순경 귀국할 예정이다. 이 중 오영훈 대원은 현재 지난해 실종된 故 박영석 대장, 신동민, 강기석 대원을 구조하는 2012 안나푸르나 수색대에 약 3주간 합류하여 수색을 벌이다 혼자만 어쩔 수 없이 이탈 하여 카트만두로 내려와 평화원정대에 합류할 준비를 하고 있다

 

2012 에베레스트 평화원정대의 발대식 모습 이아영

 

 

사람들 가슴에 불질러버린 에베레스트씨
에베레스트는 1848년에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발견 당시 그 산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지만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 산 이상 높은 곳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인도를 통치하던 영국인들은 등반이 목적이 아닌 측량과 정찰을 위한 여정을 떠났다가 파견 중 이 산이 세계최고봉임을 우연히 알아내었다. 에베레스트의 높이는 8840~8830m로 측량 때마다 다른 주장이 나왔지만 1999년 미국 등반대가 정상에 GPS 장치를 배치하여 8850m의 새로운 산출 수치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높이로 사용되고 있다.

 

티벳에서는 에베레스트를 ‘대지, 산, 눈, 여신의 어머니’ 이라는 뜻의 초모룽마라 부르고, 네팔에서는 ‘눈의 여신’, ‘천상의 산’이라는 뜻의 사가르마타라고 불렀다. 하지만 1865년 영국 런던 왕립지리학계가 처음에는 현지인들이 이 산을 부르는 명칭이 없다고 주장 하여 측량활동에 일생을 바친 ‘조지 에베레스트’의 이름을 따서 ‘MOUNT EVEREST’로 공식 확립하였다. 이는 기존 현지인들에게 불려졌던 ‘초모룽마’, ‘샤가르마타’보다 더 널리 사용되는 공식 명칭이 되었다. 조지 에베레스트씨가 일생을 바친 덕분에 지금의 에베레스트 산이 있고, 그가 발견한 그 최고봉은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일생을 바치게 하기도하였다.


 

지난 해 정찰 당시 촬영한 캉슝계곡 전경 - 에베레스트 로체와 판타지 릿지 전구간을 한 눈에 들어온다. Ⓒ평화원정대

 

 

에베레스트를 발견한 것도 영국인이었지만 그 최정상을 처음으로 오른 것도 영국인이었다. 1852년에 최고봉임을 알아낸 후 등정을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 했다. 하지만 근 100년에 걸친 도전 끝에 1953년에 마침내 영국의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최초 등정에 성공했다. 9차례나 집요하게 시도한 결과였다. 미국과 스위스 등에서 온 산악강국들이 세계최고봉을 두고 각축전을 벌였지만 끝내 영국의 승리였다.

 

초창기에는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큰 도전이었다. 산을 좋아하는 전 세계의 수 많은 사람들은 에베레스트 최초 등정 기록이 깨진 이후에 무수히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 경신에 도전해왔다. 여성인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 세계 최초 무산소(산소통 없이 등반) 등정 도전, 무산소&단독 등정 도전, 에베레스트 신 루트 개척 등반,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 8000m급 14봉 완등 등 인간의 한계라고 생각해오던 일들을 이뤄내고 있었다.

 

에베레스트 정상 첫 시도자인 영국 원정대의 맬러니는 티벳쪽으로 접근하여 최난의 거벽으로 통하는 동벽인 캉슝벽을 발견하고는 “캉슝벽은 멍텅구리 같은 사람들이나 등반을 시도할 벽”이라고 말했다. 인간이 오르기에 너무나 위험하고 날카로운 릿지(산등성이)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이다. 에베레스트 첫 정찰대 맬러니의 평가가 영향을 끼쳤던 것인지 오랜 세월 동안 등반을 시도한 팀이라고는 고작 세 팀뿐이었다. 일본대가 메이지 산악회 13명을 구성해 20일이 넘도록 2개의 캠프를 설치하며 등반했지만 일명 ‘판타지릿지’라고 불리는 칼날 같은 동릉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처럼 동벽은 에베레스트 정상을 올라가는 루트 중에서도 최 난코스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 평화원정대가 개척등반 할 일명 ‘판타지릿지’로 불리는 동벽-동릉릿지는 에베레스트 등반이 시작되고 9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최고봉에 개척되지 않은 마지막 능선루트로 남아있다.

 

 

누구도 오르지 못했던 길, 판타지 릿지의 신루트 Ⓒ평화원정대

 

 

왜 하필 이름이 평화원정대?
강원대학교 산악회는 국내외 개척등반과 릿지등반을 추구하며 50년 넘게 산악운동을 선도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팡 동벽-남릉릿지를 17년간 세 차례에 걸친 끈질긴 도전 끝에 세계 최초로 신루트개척에 성공하였다. 신 루트 명칭은 “달과 여훈길”이라고 공식적으로 명명하였다. ‘달’은 루트 개척 당시 달빛이 너무 아름답다는 이유에서고, ‘여훈’은 2차 도전 당시 운명을 달리하고만 ‘김여훈’ 대원이 너무 많이 생각나서 그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강원대학교 산악회는 그 해 신 루트 개척을 기리는 뜻으로 대한민국산악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늘 그랬듯이 이번 원정은 이들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는 도전이다. 원정대 이름을 평화원정대라고 한 것은 바로 북한과의 함께 등반하려고 계획했기 때문이었다. 세계 유일 분단 국가인 남한과 북한이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의 마지막 남은 신 루트를 함께 개척하고 그 이름을 평화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명명하며 정상에 오르겠다는 목적이었다. 이들의 시도는 결코 무모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전 세계에서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일을 남한과 북한이 함께 도전해내고 싶었는데 정치적으로 심사숙고 해야만 하는 사항이었기에 끝내 아쉽게도 승인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홍성욱 원정대장은 처음의 목적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도였기에 북한 대원들이 합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평화”라는 이름을 뺄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이들의 도전은 “한반도 평화의 길”, “평창동계올림픽루트”를 개척하여 한국인의 기상을 높이고, 한민족의 도전정신을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깊은 뜻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이번 도전을 꼭 성공적으로 마쳐 다시 한번 ‘남-북 히말라야 평화원정대’를 추진하기 희망한다. 아무도 가 보지 못한 길을 가고자 하는 신 루트 개척정신으로 그들이 또 하나 희망하는 것이 하나 있다. 한반도를 잇고 있는 백두 대간을 북한까지 연결하여 걸어보는 것이다. 이들의 평화 염원 개척 등반이 무사히 이루어지길 고대해본다.

 

 

 ‘이른 새벽 캉슝계곡의 운해’ 미지의 세계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듯 하다. Ⓒ평화원정대

 

 

한국사람이라 더 어려움이 많은 도전?
한국은 의, 식, 주 중에서 먹는 문화가 가장 독특한 것 같다. 식사에 앞서서 준비 해야 하는 일이 많아 까다로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조촐한 식사라 하더라도 밥과 국으로 식사를 다 챙겨먹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원들의 영양조절을 위해서 음식준비물만 해도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계란만해도 2000개 가량 준비하고 감자, 양파 등 무게가 많이 나가는 준비물이 꽤 많다. 등반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 챙기는 준비물도 많은데 식사 준비물과 등반 장비 무게를 모두 포함하면 이들이 가지고 올라가는 짐이 약 5톤에 달한다고 한다. 그 모든 것을 현지 야크 60마리, 야크를 관리하는 사람, 포터, 셰르파를 모두 합치면 사람만 스무 명이다. 이 모든 사람이 두 달 반 동안 함께 올라가 생활해야 하니 살림이 커도 보통 큰 것이 아닌 것 같다.

 

이제 홍성욱 원정대장은 외국인들이 식사하는걸 보면 너무 간단하게 먹어서 부러울 정도라고 했다. 어떤 등반가는 통 육포만 가져와서 매끼마다 칼로 잘라 먹으며 식사를 해결한다고 했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육포는 간식이지, 식사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먹고는 힘을 못쓴다. 거하게 차려먹는 습관 때문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도 밥을 차려야 하고 식사 후 설거지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신경 써야 하는 것이 많아서 사실 조금은 그 부분에 대해 걱정도 된다고 했다. 설거지 시에는 사람이 먹어도 될 만큼 무해한 천연세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근데 이마저도 다 짐 무게에 포함되기 때문에 챙겨야 하는 것이 한 두 개가 아니다. 고산 등반 시 쓰레기는 타지 않는 쓰레기 빼고는 웬만하면 다 소각한다. 자연은 인간의 발길이 닿기 시작하면서 오염이 되기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해서 쓰레기는 소각하고 혹시 미처 다 처리하지 못한 쓰레기를 수거하는 목적으로 관할에 예치금으로 약 4000불을 맡겨야 한다. 우리는 보통 근처로 여행가는 것도 신경 쓸 것이 많은데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그들은 오죽할까 싶은 생각이 든다. 원정대 내에서 장비를 담당하고 있는 김진석과 우석주 대원은 설령 장비의 무게가 예상했던 것과 맞지 않거나 수량이 빠지게 되는 사태가 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하는 것이 원정 준비에 가장 어려운 부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고산등반에서의 재미있는 에피소드
한국 사람들은 산에 올라가서도 밥을 지어먹는다. 요즘 기술이 좋아서 더 이상 밥 지을 때 냄비 위에 돌을 얹지 않아도 된다. 바로 등산용 압력밥솥이 나왔기 때문이다. 고산 등반을 하게 되면 등반을 하는 여러 국가 사람들이 서로 멀지 않은 영역 안에 베이스 캠프를 설치한다. 그렇기 때문에 쉬는 시간 동안 서로 친구가 되기도 하고 많은 정보들을 공유하기도 한다. 홍성욱 대장이 이끌었던 원정대는 예전에 베이스캠프에서 밥을 차려 먹기 위해 압력밥솥으로 밥을 지어먹다가 재미있는 해프닝이 벌어졌다고 했다. 밥이 다 되고 압력 밥솥에서 김이 빠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갑자기 예고 없이 “피-익” 소리가 나는데 이 소리에 익숙한 우리 귀에 비해서 외국인들에게는 큰 굉음으로 들렸던 것이었다. 굉음과 동시에 텐트에서 연기가 새어 나오기 시작하니 주변 외국인 텐트에서는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했고 무언가 폭발한 것이 틀림없다고 감지한 그들은 한국사람들을 빨리 구출해야 한다며 모든 사람들이 텐트로 몰려들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쳐들어와보니 한국 사람들은 연기가 자욱한 텐트에서 따뜻한 연기를 온 몸으로 느끼며 기분 좋게 밥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홍성욱 대장은 이야기를 전해주시면서 여전히 그 때의 상황이 잊혀지지 않으신지 웃음을 숨기지 못하였다. 이따금씩 한국 원정대는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외국인들을 캠프에 초대하면 그들은 어떻게 이 높은 곳까지 와서 이렇게 차려먹을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워하면서도 한국인들을 대단하게 여긴다고 한다. 나도 한국 사람인데도 한국인들은 정말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왠지 이번 도전, 성공할 것만 같다.

 

폐가 터질 것 같아요……
이번 원정대가 도전하는 에베레스트의 높이는 8850m로서 해수면에서 생활하는 한국인이 도전하기에 참으로 어려운 과제다. 높은 지역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해수면에 비해 대기 중에 산소 농도가 점점 떨어지며 정상에 가까운 지역에는 산소 농도가 거의 3분의 1로 떨어지기 때문에 호흡이 곤란해진다. 그래서 폐활량이 좋아야 고산등반에 유리하다. 원정대는 어느 때 보다 힘든 훈련을 소화해내며 원정을 준비했다. 15차례에 달하는 국내에 험악한 산을 찾아 다니며 장기등반, 암벽등반, 빙벽등반 훈련 등을 소화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걷는 것도 이제 익숙해져서 여자 대원도 30키로짜리 배낭을 메는 것쯤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은 출국을 몇 일 밖에 앞두고 있지 않아서 그 간의 훈련에서 다듬어 왔던 근육을 유지할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폐활량을 유지시켜주는 수영, 런닝 등의 훈련을 제외하고는 몸을 혹사시키는 것은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심폐운동은 어느 때고 쉬웠던 적이 없다. 매번 트랙 20~30바퀴씩 뛰려고 하니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들이 오를 곳이 평범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심폐 운동을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며 훈련한다. 이렇게까지 힘들게 훈련한 적이 없다고 할 만큼 만발의 준비가 되어 있다. 대원들은 체력이 예전에 비해 많이 올라온 느낌이 든다고 한다.

 

 

폐활량 유지를 위해 매일 트랙 스무 바퀴는 기본 Ⓒ평화원정대

 

 

에베레스트 같이 고산에 오르다 보면 소위 말하는 ‘고산병’ 증세가 나타난다. 이는 부족한 산소 농도 때문에 뇌에 산소가 전달되는 것이 원활치 않게 되어 온 몸이 무기력해지거나 정신이 몽롱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산소가 많이 포화된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이 효과가 좋은데 갑작스럽게 호흡 곤란 증세가 찾아오는 응급 상황이 되면 약을 투여하거나 산소마스크를 통해 산소를 공급 받기도 한다. 고산병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등반을 하는 도중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거나 잠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쏟아진다거나 발걸음이 느려진다면 고산병을 의심해봐야 한다. 이처럼 고산은 인간이 신체환경을 유지하기에 까다로운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산 경험이 많은 동료들이 반드시 대원들을 시시각각으로 챙겨야 한다. 낮은 물에서도 익사 사고가 발생하는 것처럼 최정상이 아니더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곳이다. 인간은 그러한 고산을 신의 영역이라고도 칭하는데 그 만큼 생존하기에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두 눈 부릅뜨고 걸어야 한다.

 

 

청춘을 산에 걸고
이번 원정대 평균 연령은 32세, 그러나 10명의 대원 중 6명이 20대 초 중반의 청년들이다. 어쩌자고 그들은 자신의 청춘을 산에 걸었냐는 물음에 그냥 산이 좋아서라는 대답뿐 특별한 이유가 꼭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합숙을 시작했던 지난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속세와 단절한 채 산사람처럼 살았다. 원정을 떠나는 대원들은 각자에게 역할을 부여 받았다. 원정대의 모든 것을 총괄하는 대장부터 행정, 수송, 장비, 식량, 의료, 기록, 촬영 등 원정대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스스로가 해결해야 한다. 이번 원정에서 행정을 담당하고 있는 박봉하 대원은 올해로 나이가 42세이다. 그는 강원대학교 산악회 출신이면서 대한산악연맹의 차장으로 근무해왔다. 그런데 이번 원정을 앞두고 과감하게 직장을 그만두었다. 나이와 가정을 생각해서 다시 생각해보라는 주변의 권고 때문에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결국 그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버렸다. 에베레스트가 그를 불렀기 때문이다. 


 

 

미지의 세계로 달려들어갈 원정대의 프로필이다. Ⓒ평화원정대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지만 특히 의료를 담당하게 된 정진영 대원은 이번 원정대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막내이면서 유일한 여자 대원이다. 준비를 하면서 어려운 부분은 없는지 묻는 질문에 “의료 담당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라 말했다. 왜냐하면 특정 의료 기술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동료들의 부상이나 위급 상황이 자신의 손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니 혹시나 자신의 실수로 동료들이 피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원정대 의료 실습을 몇 번이고 교육받으며 근육주사나 혈관주사 놓는 방법을 이번 기회에 처음 배우게 되었다고 했다. 사람 몸에 직접 바늘을 꽂아 넣어야 하니 긴장도 많이 되었지만 선배들이 팔을 많이 빌려 주신 덕분에 연습을 많이 할 수 있다고 했다.

 

여자라서 불편한 점은 없는지 물어보니 “있죠, 당연히! 왜 없겠어요.”라며 혼자만 여자이기 때문에 생리적인 현상에 매번 신경을 써야 하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라며 수줍은 미소를 보였다. 남자들은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거리낌없이 해결할 수 있지만 여자는 많은 부분을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있어서 어려움이 많아 보였다. 여자라고 따로 텐트를 지어주지도 않는다. “큰 일을 성취해내기 위해서 여러모로 어려운 부분들이 많지만 이를 다 감내해내야 하는 일”이라 말하는 그녀는 나이는 비록 어리지만 이미 세상 경험 다 해본 사람처럼 어른스러웠고 또 존경스러웠다. 정진영 대원은 강원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면서 에베레스트 원정을 위해서 학교를 1년 동안 휴학하고 있는 상태이다.

 

 

청춘을 산에 건 정진영 대원 Ⓒ이아영

 

 

작년에는 미국 본토 최고봉인 휘트니산도 등정한 경험이 있는 강한 여자다. 정진영 대원에게 있어서 ‘한국청소년 오지탐사대’ 대원으로 선발되어 다녀왔던 휘트니산 등정 경험에는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당시 원정대에 대장으로 팀을 이끌었던 최오순 대장이었다. 그녀는 1993년에 대한민국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3인(지현옥, 김순주, 최오순)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당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 사건의 주인공인 것이다. 3인 중에서도 나이가 제일 어려서 최연소 등정자라고 이름이 알려져 있는 최오순 대장은 정진영 대원에게 있어서 삶에서 잊지 못할 경험이라고 했다. 에베레스트 원정 계획을 이미 가슴에 품은 상태에서 최오순 대장님을 만났기 때문에 미국 본토 최고봉을 오르는 20일 내내 오지에서 함께 먹고, 자고, 걸으며 에베레스트에 대한 알찬 정보를 얻은 것이 큰 행운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유일한 홍일점 정진영 대원은 이제 산에 다니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지만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산에 다니는 것을 극구 반대 하신다. 딸이기 때문에, 위험하기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되시는 것은 어느 가족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주고 있기 때문에 더 잘하고 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는 2012 에베레스트 평화원정대가 꼭 한반도 평화의 길이라는 이름을 명명하고 자랑스럽게 금의환향하길 기원해본다.


 

 

 

ⓒ 스포츠둥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