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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 체육이야기/[ 전문체육 ]

잔인한 검투사 경기, 그 진실을 파헤져 보았더니

글 / 하웅용(한국체육대학교 교수)

 

어제의 동료가 오늘은 적이 되어 죽고 죽일 수 있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전투!!
잔인하지만 로마인들에게는 최고의 대중스포츠였던 검투사 경기가 있었다.

오늘날에도 그 웅장함을 자랑하는 로마의 콜로세움(Colosseum)에서는 열광하는 5만 여명의
로마인 앞에서
검투사 경기가 열리곤 한다. 이곳에서는 두 사람, 혹은 그 이상의 검투사간의 결투,
검투사와 맹수간의
결투가 행해졌고, 죄수를 처형하기도 했다.

이러한 검투사 경기를 단편적이나마 소개했던 영화가 2000년에 개봉되었던 영화 ‘글라디에이터’ 였다.
영화를 보면서 줄곧 의문스러웠던 것은 “이 영화의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였다.
영화 속 검투사 경기와 관련된 진실을 역사 속에서 찾아보자.


첫째, 주인공 막시무스와 코모두스 황제는 정말 검투사 경기를 참가했을까?

우선 막시무스는 코모두스 황제의 부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에게 총애를 받은 장군이었지만,
검투사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코모두스 황제는 영화에서처럼 건장한 체격과 검투기술이 뛰어나
콜로세움에서 직접 칼솜씨를 선보였고 기록에 의하면 무려 735회나 경기를 가졌다고 한다.
이로 인해
“검투사 황제” 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출생조차도 그의 어머니가 유명 검투사 외도로
가졌다는 루머도
있었다고 한다. 코모두스는 검투사경기에만 너무 몰두하여 국정을 멀리했고,
결국 암살당하는 불운의
황제이기도 했다.


둘째, 거대한 콜로세움은 어떤 구조였을까?

검투사 전용경기장인 콜로세움은 기원전 183년에 목조로 세웠다가 서기 80년에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석조 건물로 재건축되었다. 많은 로마 시민들에 의해 콜로세움이 메워졌으며,
관람석 맨 위층은
노예에게도
개방되기도 하였다.
영화처럼 맹수의 극적인 등장을 위해 지하에 동물과 검투사의
우리와 올릴 수 있는
도루래와 같은
시설이 있었다. 방수시설도 완벽하여 콜로세움에 물을 가득히 받아
수전도 가졌다고 한다.

화려한 전용경기장인 콜로세움은 야간경기도 가졌다.
당시 로마인들은 해가 뜨면 일하고
어둠이 지면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었기에,
야간경기라는 것은
환상적인 일이었다.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콜로세움
전체를 환히 비추는 등불 아래에서 야간경기를 관전하며
제공된 술과 음식을 먹었으니 시민들에게 있어서는
환상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후대에 와서 ‘빵과 서커스‘ 라 비유되어 비난받지만, 어쨌든 배불리 먹고 마시며
경기도 공짜로
즐길 수 있다면 서민들로서는 나쁠 것이 없었다.


셋째, 검투사 경기의 프로그램은 어떠했을까?

대부분의 헐리웃 영화가 그러하듯이 검투사 경기 자체는 어느 정도 사실을 근거로 만들었다.
검투사 경기는
로마시를 물론 제국 각지에서 성행되었고 처음에는 1대1 시합이었으나,
차츰 프로그램이 다양화 되었다.
그래서 통상적으로 검투사 경기는 오전에는 맹수 사냥으로 시작하여 점심시간부터는 검투사
경기 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아무도 살아나 갈수 없는 경기(munera sine missione)'가 열렸다.

이 경기에는
범죄자들로만 구성되었는데 원형경기장에서 이들을 공개 단죄한다는 명분이 있었다.
두 명이 결투하여 한
사람이 쓰러지면 곧바로 다른 검투사가 나와 승자와 다시 대적하여 계속해서
전멸할 때까지 하는 것
이다.
당연히 경기 시간이 길어지고 하루 종일 경기를 치러야만 했다.

넷째, 민간 검투사 양성소가 있었을까?

영화에서는 막시무스는 민간 검투사 프로모션에게 스카웃되어 검투사가 된다.

그러나 코모두스 황제에
제위기간(180~192)에는 영화와는 달리 민간 검투사 양성소,
민간 검투사 프로모션 또는 검투사 프로팀은
없었다. 민간 검투사 양성소는 로마 초기에는 전역에
존재하였으나, 1세기에 이르러 검투사 경기를 국가에서
통제하면서 없어졌다.

민간 양성소가 없어진 이후, 수도 로마 근교에는 국가가 직접 4개의 검투사 양성소를 설립하여
직영하기
시작하였다. 그중의 한 곳인 루더스 마투티누스(Ludus Matutinus)는 클라우디우스
시기 이전부터 존재하였던
곳으로 맹수들과 경기를 갖는 검투사를 양성하는 곳이었다.
수도 로마이외에도 프리네스터(Praeneste),
카프아(Capua) 퍼가뭄(Pergamum),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와 함께 스페인에 가울(Gaul)과
바로셀로나
(Barcelona) 등지에
황제 직영의 검투사 양성소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로마인들은 검투사경기에 얼마나 열광하였을까?

영화에서 보듯이 검투사 경기는 로마 최고의 볼거리로 시민들은 열광하였다.

검투사 경기는 장례 풍습에서
비롯되어 로마 사회에서 급속하게 대중화되었으며,
저항할 수 없는 관습으로 변모한 것이다.
검투사 경기는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화하면서 쇠퇴하였지만 약 400년간은 로마 관중의 영혼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는
흥분을 자아냈다.
이러한 행사를 주관한 황제는 관중의 대단한 환호를 받을 수 있었기에 쉽게 검투사 경기를
저버리지는
못하였다. 관중의 환호를 잘 조정할 수 있는 황제는 여론의 흐름을 유도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콜로세움에서 벌어진 검투사 경기는 제정군 주제를 강화하는 가장 확실한 도구였던 셈이다.
대중이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거기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어가며 황제는 권력기반의
확고한
안정을 추구해 나갔던 것이다.


검투사 경기가 오늘날에 다시 부활될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검투사 경기의 부활은 이미 시작 되었다고 본다.
이종격투기의 경기장면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종격투기를 처음 보았을 때 무규칙과 경기의
잔인성으로 인해
스포츠 종목으로써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지금은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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